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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AI의 만남, 올겨울 DDP에 꿈이 펼쳐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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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DDP 라이트에서 선보일 레픽 아나돌의 ‘서울 해몽’의 예상 이미지.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DDP 라이트에서 선보일 레픽 아나돌의 ‘서울 해몽’의 예상 이미지.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건물이 꿈을 꿀 수 있을까. 그 자리의 역사를 기억하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숨 쉬고, 자신이 꾸는 미래에 대한 꿈을 사람들에게 풀어놓을 수 있을까. 올겨울 서울 동대문에 자리한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선 사람들이 상상해보지 않던 독특한 풍경이 펼쳐질 예정이다.

내달 2주간 미디어 파사드 축제 #세계적 예술가 레픽 아나돌 참여 #서울의 역사·문화, 빛으로 표현 #“백남준에 대한 오마주도 담을 것”

12월 20일부터 내년 1월 3일까지 2주 동안 DDP는 거대한 빛의 캔버스로 변신한다.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이 올해 처음으로 여는 미디어 파사드 축제 ‘DDP 라이트(LIGHT)’가 이곳에서 열리는 것.

2018년 미국 LA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선보인 레픽의 작품. 백남준에 대한 오마주가 엿보인다. [사진 레픽 아나돌 스튜디오]

2018년 미국 LA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선보인 레픽의 작품. 백남준에 대한 오마주가 엿보인다. [사진 레픽 아나돌 스튜디오]

세계 미디어 디자인 분야의 스타 레픽 아나돌(34·Refik Anadol)이 ‘서울 해몽’을 주제로 DDP 외벽에 빛의 이야기를 펼치고 민세희 총감독이 연출을 맡는다.

터키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 아나돌은 지난해 가을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00주년 기념 작품을 선보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바 있다. 그가 연출한 것은 LA의 랜드마크인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의 금속 외벽에 펼친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의 꿈(WDHC Dreams)’. 당시 뉴욕타임스는 ‘콘서트홀이 테크노 꿈을 꾼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건물이 아나돌의 지휘로 첨단 테크놀로지로 공연했다”고 전했다.

레픽 아나돌, Melting Meomories, 2018. [사진 레픽 아나돌 스튜디오]

레픽 아나돌, Melting Meomories, 2018. [사진 레픽 아나돌 스튜디오]

아나돌은 미디어 아트를 건축과 접목하고, 그것을 머신러닝(Machine learning)과 같은 AI(인공지능) 기술로 풀어내 더욱 주목받았다.  최근 한국을 찾은 그는 “오랫동안 아시아 문화를 사랑하고 동경해 왔다”면서 “서울의 자연과 문화 등 모든 것이 경이롭다. 직접 와서 보니 ‘서울 해몽’을 풀어낼 AI에게 더 많은 내용을 학습시키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지난 7일 한국을 방문한 레픽 아나돌(왼쪽)과 민세희 총감독.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지난 7일 한국을 방문한 레픽 아나돌(왼쪽)과 민세희 총감독.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DDP를 직접 본 소감은.
“LA에서 작품을 준비하며 이미지는 수없이 봤지만 직접 본 것은 처음이다. 실제로 보니 말할 수 없을 만큼 좋다. 더구나 이 건물을 설계한 자하 하디드(1950~2016)는 내가 존경하는 ‘5인의 건축 영웅’ 중 한 사람이다. DDP는 그 자체로 캔버스로서 충분한 매력을 갖고 있다.”
어떤 매력인가.
“난 건축물 그 자체가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DDP는 미니멀 형태로 매우 현대적인 동시에 미래에 대한 소망을 담아낸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의 역사와 문화까지 담아내 ‘서울 해몽’을 만들 생각을 하니 설렌다.”
건축물을 캔버스로 쓰는 이유는.
“건축은 단지 건물이 아니라 그 자체가 문화다. 인간의 가장 높은 수준의 창의력이 필요한 일인 데다 그 나라의 환경과 역사를 응축해 드러낸다. 하지만 난 어릴 때부터 건축이 현실 속에 갇혀 있다는 게 싫다는 생각을 했다. 건축물에 새로운 재료와 방식으로 숨결을 불어넣고 싶었는데, 빛과 AI를 가지고 내가 하는 작업이 바로 그런 일인 것 같다.”

‘서울 해몽’은 아나돌이 표현한 대로 DDP를 캔버스로 이 건물의 기억(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각각 4분, 6분, 6분 등 총 16분량의 영상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그는 “AI를 통해서 마치 DDP가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건물이 캔버스이고, 빛이 물감이다. 그리고 붓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AI의 의식인 셈”이라며 “‘서울 해몽’은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탐구하는 여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작품은 수집한 데이터를 머신러닝을 통해 시각적으로 재구성 하는 것이다.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담기 위해 600만 개 정도 SNS 이미지와 3만5000개 정도 과거 이미지를 모았다”고 덧붙였다.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의 꿈’을 유튜브 영상으로 보니 백남준 작품이 떠오르더라.
“데이터를 가지고 사각 모양으로 구현한 이미지들은 백남준 작품에 대한 오마주였다. 백남준은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서울 해몽’에서도 그에 대한 오마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작업에 AI를 활용하게 된 계기는.
“구글 엔지니어 마이크 타이카(Myke Tyka)를 만나 그로부터 머신 러닝에 대해 배우며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내가 데이터를 재료로 작업한 것은 2011년부터이지만, 그것만으론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AI를 사용하면서 좀 더 작품이 심오해지고 다른 의미를 갖게 됐다.”
건축물을 재료로 쓰는 당신의 작품은 공연인 동시에 규모가 큰 미술 작품 같다. 공공 예술(public art) 작업에 집중한다고.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내 꿈이었다. 솔직히 나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작품 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야 작품을 만나는 그런 공간엔 오히려 편견이 개입된다. 문도 없고, 정해진 시작과 끝이 없다는 것, 이게 바로 공공 예술의 가장 큰 매력이다.”

아나돌은 “대중을 염두에 두고 작업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공 예술은 아티스트에게 훨씬 도전적”이라며 “하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도전이 좋다”고 말했다.

당신에게 ‘빛’은 어떤 재료인가.
“굉장히 신성한 재료다. 빛이 없으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빛에서 왔다. 종교에서도 빛의 의미는 매우 중요하고, 기계에도 중요하다. 빛은 무게가 없고 해가 없고 존중받아야 마땅한, 편견 없는 재료다. 상상력과 결합한 빛은 우리를 어디든 가게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빛은 아티스트로서 내가 쓸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멋진 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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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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