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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보다 더 사랑한 건 사람이었네 " 김녕만 '기억의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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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만, 전북 고창, 1976, Gelatin Silver Print, 59x89 cm. [사진 김녕만]

김녕만, 전북 고창, 1976, Gelatin Silver Print, 59x89 cm. [사진 김녕만]

넓은 신작로 길 위에 여인이 걸어간다. 머리 위에 짐을 올린 것으로도 모자라 토종닭 한 마리를 손에 꽉 움켜쥐고서. 저 멀리 달려가는 택시는 길 위에 먼지만 풀풀 피워올리고 있다. 이 길의 끝이 어디쯤일까. 오늘 해가 떨어지기 전에 그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여인은 씩씩하게 앞만 보고 걷는다.

김녕만 작가 사진이 전하는 것들 #70년대 촬영한 초기작 40점 공개 #스페이스22에서 21일까지 전시

김녕만 사진작가가 1976년 전북 고창에서 찍은 사진이다. 40여년 전 어느 날 장에 나섰던 우리네 어머니의 다부진 뒷모습이 세월을 거슬러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지난 오십여 년간 카메라를 메고 길 위에 있었던 김녕만(69) 작가의 개인전 '김녕만, 기억의 시작'이 서울 강남역 인근 미진플라자 22층 스페이스22에서 열리고 있다. 1970년대 중앙대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동아일보 사진기자와 잡지(사진예술) 발행인을 거쳐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초기 작품들을 조명하는 자리다. 1970년대에 촬영된 40점의 사진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김녕만, 전북 고창, 1977,Gelatin Silver Print, 45x30cm. [사진 김녕만]

김녕만, 전북 고창, 1977,Gelatin Silver Print, 45x30cm. [사진 김녕만]

한복을 입고 틀어올린 상투 튼 머리에 안경을 쓰고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노인의 모습은 1977년 작품이다. 단 한 사람의 초상 사진이지만 그 시대의 공기까지 우리에게 느끼게 하는 듯하다. 한복의 문양, 안경 렌즈 위에 비친 한자, 노인의 수염이 40여 년의 큰 시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다.

김녕만, 경북 금릉, 1983, Gelatin Silver Print, 30x45cm. [사진 김녕만]

김녕만, 경북 금릉, 1983, Gelatin Silver Print, 30x45cm. [사진 김녕만]

김녕만, 전북 부안, 1973, Gelatin Silver Print,30x45cm. [사진 김녕만]

김녕만, 전북 부안, 1973, Gelatin Silver Print,30x45cm. [사진 김녕만]

이번 전시에 나온 사진들엔 진한 땀 냄새 외에도 작가의 특별한 설렘이 배어 있다. 가난한 시골 청년이던 작가가 빌린 카메라로 공모전에 낼 사진을 찍고, 암실도 없이 한밤에 이불 속에서 현상한 필름으로 사진을 만들고, 그 상금으로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던 시절에 찍은 것들이다.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진한 사람 냄새에 이끌려 발품을 팔았던 청년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읽힌다.

예술기획자 신수진씨는 "김녕만의 초기 사진은 스승이었던 소재에서 임응식(1912~2001)의 생활 리얼리즘을 이어받고, 학생 시절 이후 인생의 멘토였던 이명동(1920~2019)으로부터 관찰 방식과 태도의 영향을 받았다"며 "결정적 사건 없이도 결정적 순간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너무도 흔하고 평범해 보였던 당시 생활 풍경에서 그 순간의 가치를 낚아 올렸던 작가의 감각이 탄성을 자아낸다. 전시는 2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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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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