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환자에게 절실한 것은 아름다운 환경" 풍경디자이너 젠크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한민국 제1호 국가정원이 된 순천만정원 전경.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풍경 디자이너인 찰스 젠크스가 설계한 호수정원이 보인다. [사진제공=순천시]

대한민국 제1호 국가정원이 된 순천만정원 전경.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풍경 디자이너인 찰스 젠크스가 설계한 호수정원이 보인다. [사진제공=순천시]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풍경 디자이너, 건축 이론가이자 비평가였던 찰스 젠크스(Charles Jencks)가 지난 13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0세.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풍경 디자이너 찰스 젠크스 별세 #순천만 호수공원 설계자, 매기 암 치료센터 공동설립자 #"정원은 우주의 축소판" 남다른 철학 펼쳐

영국왕립건축사협회(RIBA) 저널은 15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그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RIBA는 "우리는 찰스 젠크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알게 돼 유감"이라며 "찰스는 매기 암 치료 센터 등 선구적인 작업을 이어간 건축학의 위대한 해석가이자 이론가 중 한 명이었다"고 소개했다.

순천의 랜드마크 '호수정원'  

순천만국제정원 풍경. [사진 중앙포토]

순천만국제정원 풍경. [사진 중앙포토]

국내에서 젠크스는 2013년 순천국제정원박람회 당시 박람회 공간의 메인 작품이 된 순천 호수정원을 설계한 인물로 친숙하다. 순천 호수정원은 그가 순천의 지형과 물길 흐름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호수와 총 6개의 언덕으로 만들어진 호수정원은 정상에 봉화산을 상징하는 언덕이 자리잡고 있다. 16m 높이에 이르는 이 언덕에 가기 위해서는 호수를 가로지르는 데크를 거쳐야 하는데, 이 데크길은 젠크스가 순천의 순천시의 동천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 이론가 

찰스 젠크스의 저서. [사진 Amazon]

찰스 젠크스의 저서. [사진 Amazon]

1939년 6월 21일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젠크스는 하버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하버드 디자인대학원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고 영국 런던대(UCL)에서 건축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생전에 30여 권의 책을 썼고, 특히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로 명성을 떨쳤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과 경관 건축에 대한 비평적 논의를 이끈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언어』(1977), 『비판적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디로 가는가?』(2007),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이야기: 아이러니, 아이콘, 비판의 50년』등이 있다. 이밖에도 『우주적 사유의 정원』(2005)과 『랜드스케이프에 나타난 우주』(2011)등도 남겼다.

찰스 켄크스의 저서. [사진 현실문화]

찰스 켄크스의 저서. [사진 현실문화]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미국 뉴올리언스의 이탈리아 광장(1979), 매기 암 치료 센터(2002~2003), 우치 베이징 숲공원(2008), 순천 호수정원(2011~2013) 등이 있다.

암환자를 위한 병원 

 "Above all, what matters is not to lose the joy of living in the fear of dying"  (매기 케스윅 젠크스)

((암 환자에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도 살아가는 기쁨을 잃지 않는 것이다.)

젠크스는 특히 매기 암 치료 센터(Maggie's Cancer Care Centre)의 설계자 겸 공동 설립자로 유명하다. 1995년 사망한 그의 두 번째 아내 매기의 이름을 딴 이 치료센터는 "잘 설계된 환경을 통해 불치병 환자의 치료 결과가 현저하게 개선될 수 있다"는 그녀의 생각에 따라 설계됐다. 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기쁨을 누리게 해주는 환경이라는 얘기다.

암 환자들이 종종 지난한 투병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이곳은 큰 병원 옆에 자리한 매력적인 환경이 환자들에게 존엄성을 줄 수 있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매기 암 치료 센터는 후에 프랭크 게리, 자하 하디드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설계로 세계 곳곳에서 지어졌다.

"정원은 우주의 축소판" 

찰스 젠크스가 설계한 순천만 호수정원. [사진 프리랜서 오종찬]

찰스 젠크스가 설계한 순천만 호수정원. [사진 프리랜서 오종찬]

젠크스는 스코틀랜드에서 자택과 정원을 디자인하며 이곳에서 풍경 디자인의 탐험을 시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탐험의 결과로 DNA 정원, 쿼크워크, 프랙탈 테라스 등 우주적 사유(Cosmic Speculation)를 담은 20여 개의 정원이 탄생했다. 그의 이런 철학을 담아 디자인된 풍경은 에든버러, 밀라노, 롱아일랜드, 뉴욕, 캠브리지 등에 만들어졌으며, 순천의 호수 정원도 이와 같은 작업의 하나로 평가된다.

젠크스가 부분적으로 설계하고 1988년에 시작된 '우주적 사유 정원(Garden of Cosmic Speculation)'은 젠크스의 고 매기 케스윅 젠크스에게 헌정됐다. 이 정원은 자연을 기념하면서도 현대과학에서 나온 요소들을 디자인에 접목하고, 정원에는 과수를 포함해 다양한 식물을 심은 것이 특징이다.

과학이 아름다움의 패턴을 보여준다 

젠크스는 새로운 도구와 재료를 사용해 우주의 풍경을 향상하는 데 특히 관심이 많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정원이 우주와 닮았으며, 디자인은 현대 세계의 우주적이고 문화적인 진화를 상징한다고 보았다. "정원을 거닐면서 우리는 우주의 축소판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

젠크스는 또 현대과학이 창조성의 위대한 원동력이라고 믿었다. 과학이 우리에게 우주의 방식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고 아름다움의 패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다. 그의 저서 『The Universe in the Landscape』(풍경 속의 우주·2011)에서 그는 많은 지형은 정원(gardens), 풍경(landscape), 도시주의(urbanism), 건축(architecture), 조각(sculpture) 등이 결합한 '급진적 하이브리드'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철학을 바탕으로 복잡한 상징성을 담아내 그가 설계한 풍경은 관람객이 크고 작은 규모의 풍경을 해석하도록 자극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련기사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