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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45. 새생명 찾아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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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새생명 만남의 밤' 행사 때 수술받은 어린이의 손을 잡고 활짝 웃고 있는 필자(右).

"수술만 하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데도 가정 형편이 어려워 꺼져가는 생명들이 적지 않습니다."

1990년 어느 봄날 인천의 각계 기관단체장과 유지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분이 말했다. 의료보험 혜택이 전 국민으로 확대되면서, 돈 때문에 치료를 못 받는 환자가 더 이상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천시민들이 나서서 이런 사람들을 도와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나왔다.

다행히 주변에는 숭고한 뜻을 가진 독지가(篤志家)가 적지 않았다. 이들과 환자를 이어주는 사업을 펼치고, 치료는 내가 도와주겠다고 즉석에서 제안했다.

'새생명찾아주기운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이것을 인천지역 사회운동으로 펼쳐야겠다고 생각하고 90년 8월부터 지역 언론사를 포함한 주요 기관.단체와 손을 잡고 범시민운동본부를 발족시켰다.

"적어도 인천에서는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고 숨지는 환자는 없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문병하(작고) 인천일보 사장, 박종우 인천시장과 신홍균 인천시 교육감, 이기성(작고) 영진공사 회장, 심명구 선광공사 회장 등 학계.의료계.재계 등에서 10여 명의 대표가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나는 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 대표를 맡기로 하고, 1억원의 기금을 출연했다.

'커피 한 잔' '담배 한 갑' 가격인 1000원을 후원회비 1계좌로 정하고, 후원금 모금에 나섰다. 모인 성금은 인천시와 지역 언론사가 공동으로 관리하고, 무료수술 대상자 선정은 인천시 보건과에서 맡기로 했다.

본부가 발족한 뒤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인천 지역 봉사단체를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스티커와 전단 5만부, 그리고 달력을 나눠주며 시민들에게 동참을 호소했다. 효율적인 진료를 위해 인천의 9개 병원과 진료지원 협약도 맺었다.

인천 지역의 기관.단체 및 기업체 직원들의 동참이 이어졌다. 초등학생의 고사리 손에서부터 중.고등학교, 군 장병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참여가 활발하게 전개됐다. 우리 병원 직원들도 전원 후원회원이 됐다. 크고 작은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익명의 독지가도 많았다. 92년 첫 해에 2375명이 가입, 2억1200만 원의 실적을 올렸다. 현재는 16억4000여만 원의 기금이 적립돼 있다.

자선 바자회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조수미 콘서트 등 각종 연주회를 여는가 하면 새생명 찾아주기 마라톤대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면서 모금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갔다. 후원자들과 수혜자, 그 가족들을 '새생명 만남의 밤'에 초청, 서로 격려하고 감사하는 자리도 매년 마련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의 결실로 현재까지 심장질환, 파킨슨씨병 같은 중증환자 3800여 명에게 무료수술을 해줄 수 있었다. 이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됐고, 몽골.베트남.중국 등 외국으로 그 혜택 범위를 넓혀갔다.

요즘 나는 수술을 받은 환자의 부모들과 각국 대사 등이 보내 온 감사의 편지가 산더미같이 쌓이는 것을 보면서 한없는 보람을 느낀다.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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