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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은화의 생활건축

거리의 파란등이 범죄를 예방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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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은화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의 한 골목길(사진)엔 해가 지면 파란색 등이 켜진다. 길 한복판에 작은 태양광 등이 일정 간격으로 박혀 있다. 마포구청이 ‘여성 안심 귀가길’ 사업의 일환으로 설치했다.

왜 파란색 등일까. 통상적으로 이를 설치하고 있다는 구청의 답에, 공간안전디자인을 연구하는 조영진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범죄예방환경연구센터장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는 “파란색 조명이 범죄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일본의 연구 결과를 인용한 건데 연구 모형 자체가 검증되지 않아 학계에서는 효과 없음으로 정리됐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시작한 혈액형 성격설과 비슷한 연구라고 했다. A형은 소심하다는 주장처럼, 파란색이 더 차분하게 만든다는 식이다. 조 센터장은 밤거리의 안전을 위해 조명을 밝히는 게 중요하지 색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파란등이 켜진 골목길의 모습은 다소 기괴하다.

생활건축 11/12

생활건축 11/12

범죄를 예방하는 공간 연구도 건축의 한 영역이다. 잘못 설계된 공간이 범죄를 일으킬 수도 있다. 195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지어진 프루이트 아이고(Pruitt-Igoe) 아파트 단지가 유명한 사례다. 슬럼가를 밀고 들어선 33개 동, 11층짜리 아파트는 당시 새로운 유토피아라 불리며 건축상까지 받았었다. 하지만 3년 만에 슬럼화가 됐다. 인구 감소, 거주민 통제 정책 등의 이유와 더불어 공간적 이유도 있다. 고층 아파트는 거리에 나와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던 흑인 거주민에게 불편한 집이었다. 건전하게 작동하던 ‘거리의 눈’이 사라진 아파트 단지는 범죄 소굴이 됐다. 결국 76년께 차례로 폭파·철거됐다.

이 아파트는 거주민을 고려한 범죄예방환경 설계의 계기가 됐다. 요즘에는 범죄 관련 빅데이터를 분석해 공간 설계에 반영하기도 하는데, 전문가들이 권하는 절도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문단속’이다. 절도범의 침입 루트 1위는 출입문이고, 이 중 절반이 그냥 열린 문을 열고 들어온단다.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