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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최종률 논설 고문|중앙일보 창간 24돌 김수환 추기경에 듣는다|"여건 허락되면 북한 가보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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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 명동성당은 한때「양심과 양식의 1번지」로 불릴 만큼 우리사회가 귀 기울이고 주목하는 장소였다. 바로 그 명동성당을 약간 비켜선 나지막한 곳에 자리한 3층 벽돌집은 김수환 추기경의 숙소이자 집무실이기도 하다. 이곳을 찾는 날 명동성당 구내는 부산했다. 무슨 데모가 있어서가 아니다. 교황의 방한을 앞두고 환경미화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그 환경 미화속에는 아이로니컬 하게도 명동성당 어귀에 굵은 철봉으로 가드레일을 설치하는 작업도 포함되어 있었다. 굳이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외부 데모꾼들의 무단출입을 차단하는 장치임엔 틀림없다. 추기경이 머무르는 주교관으로 가는 길도 전에는 없던 낯선 철문을 통과해 수위의 체크를 받아야 했다. 지금 우리 시국은 문익환 목사 이후 문규현 신부, 임수경 양의 잇단 방북과 함께 공안정국의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한편에선 전교조다, 학생들의과격시위다 해서 어느 때 없이 어수선한 상황에 있다. 김 추기경은 몇 차례나 인터뷰의 청을 댔지만 극구 사양했다. 그러나 중앙일보 창간기념을 위한 모처럼의 청까지 뿌리치지는 않았다.
최종률 논설고문=성체대회는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참석하는 등 가톨릭 최대의 행사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성체란 무엇을 뜻하는지요.
김수환 추기경=성체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바쳐 십자가에 못 박히고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갚았습니다.
그 몸을 다시금 우리 모두를 살리는 생명의 빵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실 뿐 아니라 우리의 밥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는 사랑으로 당신 자신을 주시고 또 주십니다. 이 영혼의 양식이 바로 성체지요.
따라서 성체대회는 그리스도의 이 사랑을 본받아 우리 모두가 희생과 봉사하는 마음으로 힘써 나아가면 이 세상에 평화가 오리라는 희망의 대회입니다.
-평화는 단순히 총성이 멎었다는 물리적 계념 이상의 함축적 의미를 갖는 듯 합니다. 자유·정의·인권 등 총체적인 삶의 질이 포함되어야겠지요. 평화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십니까.

<갈등의 벽을 허물자>
『그렇습니다. 신약 에페소서 2장14절에 보면「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당신 몸을 바쳐 갈라진 민족, 갈라진 이념, 모든 갈라진 것들이 서로를 용서하고 종국에는 하나되어 엮어지는 그런 평화의 기틀을 놓으셨습니다.
지금 세상의 평화는 참 평화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남·북한간이나 미소의 평화는 기실 힘의 균형일 뿐입니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평화지요.
용서와 화해, 정의와 사랑에 바탕 둘 때 분열의 담은 허물어지고 참 평화가 옵니다. 이런 말이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좀 공허한 관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진리란 순수한 마음에 기초하고 그 구체적 실천이 가난한 이, 병든 이에 대한봉사로 나타납니다.
가톨릭에서는 성체대회를 맞아「한마음 한 몸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장기기증·헌헐·입양·결연 등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코자 합니다.
또 해외로 많이 입양되고 있는 우리 어린이들을 우리가정에서 입양하고,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보호하고자 합니다.
이런 사랑의 운동만이 이 사회의 계층간·세대간 갈등을 해소해 사회를 하나로 만들고 남북문제도 이 맥락의 연장선에서 풀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성체대회가 우리 나라에서 열리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형식적으로는 한국 가톨릭이 요청한 걸로 되어있지만 그전에 로마의 권고가 있었습니다.
로마는 한국교회를 세계에 희망을 주는 교회로 보는 듯 합니다. 신자 수 증가를 보더라도 10년 전 1백20만 명에서 현재 2백50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이 같은 증가는 놀랄만한 일이죠. 참으로 은총입니다. 사제나 수도자를 지망하는 사람의 수는 아마 세계에서 제일 많을 겁니다.
어쨌든 분단된 이 땅에서, 세계의 이념·빈부·이해의 갈등을 첨예하게 상징하는 듯 한 이 땅에서 성체대회가 열리게 됨은 80년대를 마감하며 90년대의 희망을 여는 한 상징으로서도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하겠습니다』
-로마교황청은 한국 가톨릭의 현실, 나아가 한국의 현실을 어떻게 보는 걸로 생각합니까.
『6공화국이 오기까지의 많은 질곡이 있었고 아직도 그 질곡이 남아있지만 어쨌든 경제발전과 함께 민주화가 돼 가는 나라로 보는 듯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듯 지난해 올림픽 성공 등으로 한국사회에 대한 평가도 높아진 걸로 봅니다』
-우리사회의 전반적인 민주화노력이 평가받은 것이겠지요..『그렇습니다』

<순수한 뜻은 존중을>
-요즘 국민들 사이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통일에 대한 염원이 넓고 강하게 퍼져있습니다.
가톨릭은 선도적 입장에 서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교회의 통일론이 너무 감상적·구호적 차원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고 상대적으로 정부는 선언만 요란했지 실천의지가 안 보인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통일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어느 사회든 발전의 전 단계에는 갈등이 있습니다. 민주사회, 다원화 사회에서의 의견차이는 당연하지요. 여러 의견이 수렴되어 어떤 합의된 목소리를 낼 때 거기엔 강한 힘이 붙습니다. 갈등은 오히려 좋을수도 있지요. 우리를 대화·협력·일치로 유도하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갈등만 되풀이되면 곤란하고 배타가 아니라 존중이 필요합니다.
통일정책은 국민전체의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북한은 획일적 통제사회입니다.
종교나 문화 등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을 내걸지라도 북한이 내는 통일관은 똑같습니다. 그런점에서 남한이 북한에 공식적으로 대처할 때는 이른바 창구의 일원화가 필요합니다.
이 일원화는 정부의 창구·독점통일론 독점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정부가 다른 단체의 의견을 존중하고 지원해서 어떤 합의 된 의견을 받아들여 그것을 북한에 전달하는 그런 의미의 일원화입니다.
최근 몇몇 분들의 방북을 보면서 생각한 것은 그분들의 뜻은 소중하나 결과적으로는 남북관계를 경색 시켰고 또 이른바 공안정국을 불러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분들은 북에서도, 남에서도 극좌·극우·수구세력에 의해 이용만 당했구나 하는 느낌입니다』
-문규현 신부의 입북문제로 고뇌가 컸겠습니다.
『이 문제는 주교단회의서「유감」이라는 공식입장을 표명했고 거기에 더 이상 보탤 것은 없습니다. 다만 신부들의 뜻, 문익환 목사·임수경 양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위법 항위는 법으로 다루더라도 이분들의 선의, 순수한 뜻은 7·7선언에 따라 존중해야 하고 이걸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북한에 가보실 생각은 있습니까. 북한교회와 접촉이 된다면 어떤 의견을 말씀하겠습니까.
『여건이 허락되면 언제라도 가고 싶습니다. 이 허락은 북한이 받아 줄뿐만 아니라 우리정부의 동의도 필요합니다.
저는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사 목적 방문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참으로 막막한 상태이고 기도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그러나 연전부터 북한은 표면적으로는 변화하고 있지요. 재작년 북한이 비동맹국가 각료 회의 때 바티칸을 업저버로 초대한 것은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그때와 지난해 10월 바티칸에서 장익 신부 등을 파견했고 그 과정에서 밝힐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진전상황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밀입북사건과 공안정국으로 말미암아 접촉이 끊어진 상태입니다』
-북한에서 어떤 메시지를 받은 적은 있습니까.
『지난해인가 보도된 대로 몇 분과 함께 초대된 일이 있지요』
-북한은 해방 후 가톨릭을 무자비하게 박해했었습니다. 정치적 접촉과는 상관없이 원가 사과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교회는 나라와는 다릅니다. 지금 북한이 교회를 인정하고 있다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모르는 사이에 당신의 뜻을 이룹니다. 지금의 북한종교 정책은 선전수단일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기틀이 되어 북한은 변해가고, 또 북한자체를 위해서도 변화해야 할것입니다. 용서란 그런 차원에서 다뤄야합니다』

<학생 시위는 지나쳐>
-학생시위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높은 반면에 정부의 민주화조치가 미흡하고 또 민주화 과도기가 왜 이리 지루한가라는 불만도 높습니다. .
『학생들의 요구도, 국민들의 우려도 다 일리가 있습니다. 내 입장으로는 요즘 학생들의 시위는 너무 지나 치다고 봅니다. 또 방법이 적절치 않습니다.
민주화라는 좋은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말 스스로 민주적이어야 하고 또 평화적이고 합리적인 투쟁을 해야 여론을 조성하는 법인데 극단적으로 나가면 집권세력내의 수구세력에 빌미를 주고 정국을 경색시켜 반민주적 역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국민들도 평화적인 방법만을 공감할 것으로 봅니다』
-추기경께서 일관되게 말씀하는 화해와 일치란 어떤 것입니까.
『화해와 일치는 남을 받아주고 용서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용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원수까지 용서하신 그리스도는 모든 이에게 화해와 일치의 모델이 되어 주셨습니다.
잘못된 경우, 이를테면 광주사태의 경우는 가해자가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해자가 용서를 빌더라도 피해자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화해와 일치는 어렵겠지요』
-요즘 논란을 빚는 토지 공개념을 자본주의경제에 비춰 어떻게 생각합니까.
『현재의 자본주의경제 체제가 초기단계는 아니지요. 부의 균등한 분배 등 사회복지장치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자본주의 정신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권리도 존중해야합니다. 노동3권 인정이 자본주의와 배치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수정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토지공개념문제도 이런 맥락에서 풀어야겠지요. 아무튼 토지공개념은 복지사회건설을 위해 절대로 필요합니다』
-노사문제도 그 동안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일각에서는 분규가 계속되고, 이런 것이 수출이나 생산 등에 역작용을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점은 관점을 달리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은 과거처럼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노동집약적 산업구조만으로는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습니다. 첨단기술 개발로 질 좋은 상품읕 만들어 세계로 진출해야지요.
지금의 불황 때문에 의기 소침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회로 보아야 합니다. 즉 기업의 체질을 강화시키고 나아가 노사 모두의 삶의 길을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삼는 슬기가 필요합니다.
모든 선은 고통과 시련속에서 옵니다. 이는 개인과 나라가 마찬가지입니다..
역설적으로 깊어가는 밤은 새 날이 밝아옴을 뜻합니다. 때문에 희망의 새 날을 바라보며 오늘의 시련을 우리는 반드시 이겨내야지요. 이점 국민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줄 수 있는 언론의 책임이 무겁습니다』
-교회의 첨탑은 많은데 도덕적 타락은 점차 더해 가는 느낌입니다. 종교의 무기력, 교육의 무책임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교회가 사회윤리 향상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얼마 전 부산에 갔을 때 해변에 웬 술집이 그리 많은지 놀랐습니다. 인신매매가 그런데서 성황한다니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쉽게 번 돈이 향락과 퇴폐로 쏠리고, 또 그걸 보면서 사람들은 한탕주의의 망상에 빠집니다. 로마의 멸망은 부패와 향락이 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공자는「나라가 망하는 것은 군대가 없어서가 아니라 예가 없을 때」라고 말했습니다.
물질위주와 정책과 경쟁위주의 교육환경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공허할 때 교회와 술집 중 어느 곳이 빈 마음을 채워주겠습니까. 정직과 사랑같은 정신적 가치관이 정말 요구되는 시대지요』

<경쟁위주 교육 지양>
-전교조문제로 교육계가, 나아가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학부모, 학생, 교장과 교사, 또 교사간에 갈등이 거듭됩니다. 바람직한 교육풍토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현재의 교육풍토가 변화돼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합니다. 한 나라의 국민성, 국민의 의식구조를 가꾸는 주역은 교육입니다. 인간교육, 전인교육이 돼야지요.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교원노조는 시기로 봐서 맞지 않습니다. 몇 달 전 전교조가입교사들의 방문을 받고 이 문제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안 그래도 노사분규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운데 선생님들마저 노조를 만들면 국민들의 걱정이 크지 않겠는가. 참 교육의 뜻은 공감하지만 그 진솔한 뜻을 다른 수단을 통해 호소하면 국민들의 공감을 얻고 참 교육을 위한 성과도 더 있지 않겠는가」하고 말했습니다』
나도 구체적인 복안이야 없지만 학교간에서 교장·교사·학생들간에 등을 돌린다면 그런속에서 전교조 교사들이 바라는 참교육이 되겠습니까.
-6공 들어서의 한국언론을 어떻게 봅니까.
『전처럼 당국의 보도지침 같은 게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도 느끼지 못한 채 체제 속에 안주하는 경향에 젖어있지 않나 하는 느낌입니다.
언론의 공기적 성격 중 중요한 것은 시련기일수록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허황된 장미 빛 보도로 일관하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가장 사실에 충실한 또 진실에 입각해서 각계의 의견을 정확하게 전달하며 삶의 의미와 가치관을 심어주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리=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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