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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변신 진통인가 결말 조짐인가|미·불·일 3국 석학들의「위기」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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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사회주의 권이 흔들리고 있다. 그것도 어느 특정국가의 현상이 아니라 사회주의권 전체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은 페레스트로이카 추진과정에서 갖가지 모순이 한꺼번에 노출, 개혁의 성공여부는 물론 앞으로 그 장래가 불투명한 상태며 동유럽국가들은 정치·경제적 파국에 직면해 벼랑 끝에 선 듯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위기에 처한 사회주의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또 그 위기의 본질은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미국·프랑스·일본의 이 분야 권위학자 3인을 통해 사회주의 위기의 본질, 그리고 장래를 전망해본다. 【편집자주】
-20세기초 마르크시즘은 소위「절대진리」로서 마치 인류의 희망과 같았다.
그러나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을 앞둔 지금 공산주의는 파국에 직면해 있다.
공산주의는 지금 이데올로기로서 존립의 위기에 처해있는가.
▲하야시=20세기초 유럽대륙에는 노동운동·사회주의 운동이 크게 확대됐으며 특히 독일사회민주당의 경우 마르크시즘이 지배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선 마르크시즘 신봉자는 실제로 소수였다. 그것이 마치 절대 진리인양 간주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대전 중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국가가 탄생하면서부터다.
제 2차 대전 후 공산주의는 지구전체의 3분의1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전후 40년이 지난 오늘 공산주의국가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중대한 결함을 폭로하고 있다.
▲르사주=공산주의는 사회민주주의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20세기초 사회 민주주의가 둘로 분파되면서 그중 하나가 레닌의 공산주의로 변했다.
또 스탈린주의는 레닌주의의 두 가지 변형가운데 하나로, 오늘날 공산주의라고 하면 우선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스탈린주의다.
공산주의는 소위「행정명령」이란 방법으로 초기 얼마간은 경제적으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분화하면서 개인의 사회적 욕구에 대한 고려 없이는 동기유발이 불가능함이 드러났다.
문제는 공산주의가 이 위기를 과연 어떻게 벗어나 자신의 연원이면서도 70년간 떨어져있던 사회민주주의로 얼마나 순탄하게 복귀할 수 있느냐다.
▲세스타노비치=공산주의위기는 스탈린 사후부터 계속돼왔다. 그런 점에서 공산주의 위기에 관한 논의는 새삼스런 감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현재상황은 두 가지 점에서 새로운 것이다. 하나는 공산주의 통치가 한 두 나라가 아닌 전체에서 도전 받고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공산주의 지도부가 더 이상 자신들의 실패를 은폐할 수 없게된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사회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위로부터의 혁명」을 추진한 결과 지난4년간 특히 정치·외교에선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내정 특히 경제에선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악화되는 감 마저 있다. 그의 경제정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해결방법은 무엇인가.
▲르사주=소련의 경제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선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과거의행정 명령 체계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일이며, 또 새로운 체계를 움직이는데 필요한 이니셔티브를 유능한 인재들이 잡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아직 이 두 가지 전제조건 중 어느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제 소련은 정확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체제전환을 위한 구체적 방법을 모색해야할 단계에 왔다.
▲세스타노비치=고르바초프의 경제개혁이 직면하고 있는 최대 장애는 중앙통제 경제체제의제도적 권력이다.
소련경제와 국민복지에 큰 부담이며 비능률적인 이러한 기관들의 세력은 아주 강하다. 따라서 이러한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고르바초프는 개인기업이 더 많은 재량권을 가져야하고 손익기조에서 사업이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가 입을 정치적 손실도 크겠지만 경제적 비용은 훨씬 더 클 것이다.
▲하야시=공산주의 국가의 본질적 조건은 1당 독재, 국가에 의한 전면적 경제장악과 계획경제다. 고르바초프가 집권하면서 소련은 정책면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방안을 마련, 시행했지만 소련이란 사회의 본질은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의 자유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정보공개도 충돌을 회피, 힘의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었다.
지난번 탄광파업과 철도노동자 문제에 있어선 아예 처음부터 정면 충돌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하야시=소련의 취약점은 바로 연방제에 있다. 소련을 구성하는 15개 구성공화국은 각기 별개민족으로 이뤄져 이들 민족의 자치를 보강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자치는 허용되지 않았던 셈이다.
그 동안 강압적 통치하에선 이에 대한 비판이 허용되지 않았으나 개혁·개방정책에 따라 규제가 풀리면서 민족들의 자치독립요구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특히 제 2차 대전 중 독-소 밀약에 의해 병합된 발트해 3국들이 가장 격렬히 소련으로부터의 이탈을 요구하고있다.
이에 대해 연방정부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유지를 위해 아직 손을 대지 않고 있으나 그들의요구가 연방해체에까지 이를 경우엔 단호히 무력으로 대처할 것이 분명하다.
▲르사주=소련지도부는 현재 정치적으로 정치개혁과 민족문제라는 두 가지 난제에 봉착해있다.
우선 정치개혁은 이중적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그 동안 당이 장악해온 권력을 민주적 방식에 따라 구성된 인민대회에 점차 이양한다는 것이며 둘째, 그러나 정치의 중추적 역할만은 당이 계속 갖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권력이양이란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며 새로운 제도가 인민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 중재하는데 즉각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다음으로 민족문제는 그 동안 간과돼 왔던 문제인데 이제 정치무대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발트해 3국의 경우 소련지도부는 독립을 수용할 준비가 안돼 있는 만큼 정치·경제·군사적 방법을 사용, 현 체제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소련지도부는 각 구성공화국에 권력의 일부를 이양하고 소수민족에 대한 사회·문화적 유화정책을 통해 현지의 고조된 민족감정을 해소해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동유럽국가들이 분열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개혁과 반 개혁의 상반된 2개 국가그룹으로 분열, 서로 반목하고 있다. 동유럽블록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또 이를 바라보는 소련의 입장은.
▲하야시=동유럽국가들의 경우는 소련 내 구성 공화국과는 입장이 다르다. 비록 소련의 위성국으로서 그 영향하에 있긴 하지만 엄연한 독립국이다.
고르바초프가 서방을 향해 사회주의국가의 제한 주권론을 부정한다고 공언한 이상 동유럽국가에 대해서도 종래의 무력간섭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폴란드·헝가리는 언젠가는 동유럽 사회주의 권을 벗어나 복수정당제에 의한 의회제국가가 될 것이다. 동독·체코 등은 이에 반대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나 이들 나라 국민은 반소적이며 사회주의체제에도 염증을 느끼고 있으므로 장차 개혁적 입장으로 돌아설 것이다.
동유럽국가들은 날로 변하고있으며 비록 소련이라도 이를 막을 힘은 없다고 본다.
▲르사주=45년 동유럽이 공산화할 때 동유럽 각국은 서로 다른 정치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지난 40년간 공산정권도 이러한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56년 헝가리 사태이후 헝가리 공산당은 지식인들을 대거 당에 끌어 들였으며 비당원들과도 협력했다. 폴란드에선 일부 공산당원들은 당을 떠나 가톨릭·자유노조로 갔다.
이 같은 동유럽 정치체제의 다양성에 대해 소련은 두 가지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 동유럽정권에 대해 동정적 태도를 보이며 내적 변화에 대해 공식 판단을 자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넘어선 안될 한계를 분명히 그어주는 것이다.
안보는 소련의 기본적 관심사항이므로 현재의 동서간 군사균형을 대신할 다른 대체체제가 없는 한 동유럽국가 중 어느 나라라도 바르샤바 조약기구에서 탈퇴하도록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한계를 넘지만 않는다면 소련은 상당한 자율권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세스타노비치=동유럽 국가들 사이의 부화는 소련 블록을 약화시키고 있다. 루마니아와 헝가리, 헝가리와 동독간에 문제가 발생,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마찰을 지나치게 과장해선 안 된다. 최소한 현재 까진 동유럽국가들은 개혁추진이거나 반 개혁이거나 간에-소련에 대한 그들의 외교정책을. 변경할 의도가 없음을 소련이 믿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브레즈네프 독트린이 약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소련의 안보적 이해에 대해 도전하려는 나라는 동유럽에 아직은 없다.
바로 이점 때문에 고르바초프는 비록 장기적으로는 동유럽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이 약화될지라도 아직은 안심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이 같은 심적 안도를 바탕으로 소련내부개혁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이다.
-부시 미대통령은 폴란드·헝가리 방문 때『동서냉전은 끝났다』고 선언, 이들 두 나라의 정치민주화 노력을 찬양했다.
현재 사회주의 진영에서 일고 있는 변화에 대한 서방세계의 입장은 어떤 것이며,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서방측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르사주=공산국가들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 서방세계가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동기는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은 라이벌인 소련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고, 서독은 독일통일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측면에서, 프랑스는 인권차원에서 공산권의 변화를 보고 있다.
공산국가에 대한 서방의 경제원조는 그들이 경제구조를 진정으로 개혁해야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동유럽 국가의 경제개혁에 필수적인 두 가지 분야, 즉 인력양성과 체제전환의 구체적 방법에 있어 서방측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한가지 예로 미래의 기업경영자들의 양성을 지원, 그들로 하여금 서방세계의 경제현실에 눈뜨도록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세스타노비치=부시 미 대통령이 얄타체제를 고수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미국은 동서 양 진영의 신뢰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얄타체제를 변화시키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 버논 월터스 주 서독 미 대사는 최근 독일통일에 대한미국의 입장을 밝힌바 있다. 이는 얄타체제를 극복해야한다는 서방측의 의사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하야시=서방측이 공산진영의 새로운 변화를 환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방측이 개입하는 듯한 태도로 나온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이다.
사태변화에 대해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얄타체제는 굳이 밖에서 허물지 않아도 안에서부터 붕괴되고 말 것이다.
일본은 패전 후 전쟁포기를 명시한 소위 평화헌법을 갖게됐다. 이 때문에 일본은 국제문제와 관련, 경제원조 이에 외는 거의 영향력이 없다. <정리=추자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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