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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버스서 내리니 새벽 4시…앗, 숙소예약을 안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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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남대의 예순에 떠나는 배낭여행(5)

5일 차, 베트남 사파 여행

닌빈에서 출발한 침대 버스는 11시간 30분을 달려 새벽 4시 반에 베트남 북단인 사파 정류장에 도착했다. 예정보다 1시간 반이 늦었다. 중간에 한참 동안 정차한 때문인 것 같다. 차라리 버스가 늦게 도착한 것이 다행이다. 예정대로 3시에 도착했다면 더 오래 기다릴 뻔했다.

새벽 공기가 쌀쌀하다. 버스에서 내리자 택시 운전사가 몰려들어 어디로 갈 것인지 묻는다. 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이 하나둘 갈 곳을 찾아 흩어진다. 우리는 숙소를 정하지 않아 갈 곳이 없다. 이 새벽에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것도 곤란하다. 좀 처량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로변 광장 한 귀퉁이에 있는 포장마차로 들어가 모닥불을 쬐며 커피를 한잔씩 시켜 마셨다.

새벽 사파 시장에서 추위를 피하기 위해 피워 놓은 모닥불. [사진 조남대]

새벽 사파 시장에서 추위를 피하기 위해 피워 놓은 모닥불. [사진 조남대]

조금 지나자 모닥불을 피우는 나무가 모두 타 사그라져 주변을 다니며 나무 조각을 찾아다녔지만 허사였다. 결국 노점상이 지난밤에 장사하고 버린 나무젓가락을 주워 와 불을 지폈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나뭇조각을 이렇게 애타게 찾아다니기는 처음이다.

모닥불의 온기를 느끼며 기다리다 날이 좀 밝아지자 우리는 짐을 지키고 양 팀장과 광표 씨는 숙소를 구하러 주변을 돌아보았다. 마땅한 곳을 구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좀 쉬다가 양 팀장과 내가 주변을 다시 돌아보았지만, 호텔 문이 모두 잠겨 있었다. 문을 두드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숙소를 예약했으면 이런 불편함이 없었을 텐데.

다시 광장으로 돌아와 모닥불을 쬐며 기다리는데 양 팀장이 숙소를 구했다며 기쁜 표정으로 달려온다. 50m의 거리인데도 호텔 주인이 리무진 차를 몰고 마중 나왔다. 방 2개에 70만 동을 주고 오늘 아침과 저녁까지 지내기로 하고 방으로 들어갔더니 그동안 다닌 숙소 중 최고의 시설이다. 다들 샤워도 하지 않은 채 이불 속으로 들어가더니 금방 잠이 든다.

60 넘은 사람들이 밤새 털털거리는 침대 버스를 타고 11시간 30분을 달려 새벽 4시 반에 도착했으니 피곤도 하겠지. 나는 침대 버스에서 잠을 좀 잔 데다 호텔에 들어와 1시간 정도 눈을 붙였더니 훨씬 개운하다. 강행군하느라 뭉쳤던 왼쪽 다리가 좀 풀리는 것 같다. 배낭여행 중에 잘 견뎌야 할 텐데 은근히 걱정된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혼자라도 배낭여행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것이다. 5일 정도 지나니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전에 충분히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련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것도 좋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부딪쳐 보는 것이다. 주변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하는 것에 너무 현혹되어서도 안 된다.

양 팀장은 아주 적극적이다. 또 호기심도 많다. 일단 부딪쳐 본다. 그러니 방법이 생긴다. 오늘 새벽에도 여자들이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주변을 적극적으로 돌아보더니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좋은 숙소를 찾아냈다. ‘싸고 좋은 것은 없다’라는 이야기가 무색하게 발품을 팔면 얼마든지 좋은 것을 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소극적인 나의 자세가 부끄러워진다.

지금까지는 여행하는 동안 날씨가 계속 흐렸다. 동남아지역이 건기인데 왜 이렇게 흐릴까? 맑은 하늘을 보기가 어렵다. 자연환경이 좋고 공기가 깨끗한 곳인데 수없이 반짝거릴 것 같던 밤하늘의 별은 구경할 수 없다.

사파 상설시장의 모습. [사진 조남대]

사파 상설시장의 모습. [사진 조남대]

아침 8시 반인데 모두 곯아떨어졌다. 광표 씨는 코를 골면서 잔다. 어제 침대 버스에서 잠을 제대로 못 잔 모양이다. 일어나 아침을 먹고 주변을 둘러 보아야 할 텐데 너무 곤하게 자고 있어 깨우기가 망설여진다. 우리 숙소는 사파 시장에 바로 붙어있다. 아침에 일어나 밖을 나가보니 어제저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다. 우리가 잠깐 눈 붙이고 있는 동안 기대했던 대로 수많은 노점상이 펼쳐졌다.

산간지역에 사는 소수민족들이 형형색색의 전통의상을 입고 직접 기른 채소와 과일, 꽃과 민예품, 특산물 등을 바구니에 짊어지고 산에서 내려와서 노점에서 판매하고 있다. 지역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들도 섞여 물건을 사고판다. 과일과 옷과 채소 및 고기 등 온갖 물건들이 있다. 건물 안 상설시장과 길거리의 수많은 노점상이 열렸다.

몇 시간 사이에 시장 주변이 완전히 변해 있었다. 오늘 새벽 5시까지만 해도 추위에 떨며 모닥불을 쬐며 커피를 마시던 곳인데 불과 3시간 사이에 이렇게 바뀐 것이다. 신기했다. 오전 내내 시장을 구경했다. 걸어 다니기가 복잡할 정도로 사람이 많다. 사파 전통시장은 평소에는 한적하고 조용하다가 일요일 오전에만 열린다. 우리는 이것을 보기 위해 날짜를 맞춰 여기까지 온 것이다.

소수 부족 주민들은 직물로 짠 전통의상을 입고 가지고 온 물건을 판매하고는 필요한 물품을 산다. 사파 시내에 거주하는 사람들보다는 행색이 좀 더 어려워 보였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인 1960년대의 형편과 비슷해 보인다. 키도 작은 데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 여자가 아기를 업은 모습이 불쌍하고 측은해 보인다.

순희 씨가 가지고 온 액세서리를 어려워 보이는 여자들에게 나누어 주니 너무 좋아한다. 여자아이들의 나이나 취향에 맞춰 나누어 준다.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니 필요할 것 같아 미리 준비해 온 것이란다. 너무 마음씨가 곱다. 조그마한 것이지만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우리 일행이라 더욱 자랑스럽다.

사파 노점에서 물건을 판매하고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주민들. [사진 조남대]

사파 노점에서 물건을 판매하고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주민들. [사진 조남대]

점심때쯤 되자 노점은 거의 없어지고 상설 시장만 문을 열고 있다. 식사하고 시내 쪽으로 가보니 호수가 보인다. 구운 옥수수를 하나씩 사서 호숫가에 앉아 먹으며 멋진 경치를 감상하니 ‘이런 것이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호수 주변에는 관공서와 호텔이 늘어선 번화가다. 파란 하늘에는 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고, 먼 산을 배경으로 빨간 기와를 이은 2∼3층의 집들이 호수 주변에 모여 있는 모습은 동유럽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복잡한 시장 쪽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한참을 둘러보다 시내버스를 타고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주민들에게 물어 무작정 로컬 버스를 탔다. 고불고불한 고갯길을 수도 없이 내려간다. 깊은 낭떠러지의 고갯길을 굽이굽이 돌아간다. 아주 높은 산인데도 개간할 수 있는 곳은 모두 일구어 다랑논과 밭이 수없이 많다. 우리나라 남해의 다랭이마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여러 곳에 펼쳐져 있다. 아래를 보니 까마득한 계곡이다. 철새들이 저 아래로 날아가는 것을 보니 우리가 탄 버스가 다니는 도로가 대단히 높은 고도에 위치한 것 같다. 풍경이 멋지다. 1시간 정도 달리자 평지가 나온다. 라오까이다. 사파에서 35km 정도 거리다.

라오까이는 중국 윈난성과 국경이 맞닿아 있다. 길 건너다보이는 중국 쪽은 고층빌딩이 즐비하다. 다리 하나가 사이에 있을 뿐인데, 경제적인 차이가 실감 난다. ‘월중 우호교’라는 다리를 건너면 바로 중국이다. 그렇지만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쉽게 건널 수 없는 부러움의 대상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국경이 이렇게 가까이 붙어있다는 것이 의아했다.

사파 중심가의 아름다운 환경과 건물. [사진 조남대]

사파 중심가의 아름다운 환경과 건물. [사진 조남대]

라오까이 기차역 주변에서 버스에서 내리면서 우리는 다시 사파로 가야 한다고 하니 차장이 여기서 조금 기다리면 사파로 가는 버스가 온다고 알려준다. 주위를 둘러보며 조금 기다리자 버스가 와 다시 요금을 지불하고 탔다. 돌아갈 때는 날이 어두워져 주변 경치가 보이지 않았다. 한 시간이 걸려 다시 사파에 도착했다.

우리가 어제 캄캄한 밤중에 꼬불꼬불한 산길을 오랜 시간 동안 달려온 바로 그 길이다. 사파는 하노이에서 북서쪽으로 약 350km 거리에 있는데 라오까이를 거쳐야 한다. 도시 서쪽으로 해발고도 3143m의 베트남 최고봉 판시판산이 솟아 있으며, 프랑스 식민지 시대인 20세기 초부터 피서지로 유명했다고 한다.

저녁을 쌀국수로 먹고 바로 옆 마사지 가게에 들어가 1시간 반에 걸쳐 마사지를 받았다. 우선 참나무통에 들어가 따듯한 물로 목욕하라고 한다. 30분 정도 목욕을 한 다음 마사지를 받았다. 시원하고 개운하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든다. 마사지를 받고 숙소로 돌아오니 숙소 앞 도로변에 야시장이 차려졌다.

광장의 야시장은 보기 좋았다. 오전에 노점시장에서 물건을 팔던 산악지역 부족들은 돌아가고 야시장이 차려진 것이다. 너무 오지라서 그런지 관광객과 손님들이 저녁에는 별로 없다. 우리는 고기 안주로 술을 마시며 내일 관광 일정을 협의했다. 내일은 사파 주변을 관광하고 오후에 하노이로 가기로 했다. 술을 한잔했더니 피곤하다. 어젯밤 세워 야간버스를 타고 온 피로가 몰려온다. 그만 자야겠다.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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