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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흔들 재밌다, 중국풍 음악 흐르는 사파행 '침대버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남대의 예순에 떠나는 배낭여행(4)

4일 차 여행, 짱안ㆍ땀꼭 여행
7시에 일어났다. 어젯밤에는 바지와 패딩을 입고 양말까지 신고 잤더니 따뜻해 잠을 푹 잤다. 여기는 숙소에 난방 시설이 없는 데다 날씨마저 쌀쌀하고 밤에는 춥다. 게다가 안개가 끼거나 흐린 날씨가 지속되면 더 춥게 느껴진다. 어제 오전에는 빗방울이 조금 뿌리더니 오후에는 햇볕도 났다.

이곳은 이동수단이 대부분 오토바이인 관계로 도로엔 횡단보도가 없다. 걸어서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걸어서 길을 건너려면 차나 오토바이가 안 올 때 적당히 무단 횡단해야 한다. 도로에서 오토바이가 차량과 똑같이 차선 구별 없이 다니니 자동차가 이들에게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서 계속 경음기를 울린다.

1만원 주고 5명이 간단한 아침식사

호텔이 외부는 7층 건물로 멀쩡하게 생겼으면서도 내부시설은 형편없다. 방 2개에 50만 동, 가격은 저렴하다. 우리 돈으로 방 하나에 1만2500원이다. 가구는 30년도 더 된 것 같고 매트리스도 딱딱하고 이불도 얇다.

우리는 호텔 측에 짐을 저녁에 찾아가겠으니 맡아 달라고 부탁하고 1일 투어 하는 곳을 알아보기 위해 닌빈 기차역 부근의 여행사를 찾아갔다. 걸어서 10분 거리인 닌빈역 앞 ‘TOURISM’라는 여행사를 찾아가 1일 투어와 사파까지 가는 침대 버스 비용까지 1인당 60달러 총 300달러를 지불하고 여행을 신청했다. 이 여행사에서는 아침 식사도 제공한다. 20만 동(1만 원)을 주고 5명이 간단한 아침을 먹었다.

홍강에서 보트를 타고 짱안을 구경하는 관광객. [사진 조남대]

홍강에서 보트를 타고 짱안을 구경하는 관광객. [사진 조남대]

우리 일행 5명만 태운 택시를 타고 짱안으로 갔다. 날씨가 흐리다. 짱안은 홍강 삼각주의 닌빈주에 있는 명승 문화유적지로서 2014년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석회암 카르스트지형으로 형성된 이 지역은 강을 따라 좌우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아기자기한 바위산이 겹겹이 이어져 장관을 이루고 있고, 바위산 아래로는 여러 개의 수상동굴이 있다. 하롱베이와 비슷한 분위기지만 산이 높고 크다. 여기는 바다가 아닌 강이다 보니 큰 수로를 따라 사람이 노를 젓는 4인승 보트에 구명조끼를 입고 탑승했다.

우리 부부는 베트남 청년 2명과 한 보트에 타고 관광을 했다. 50대의 아주머니가 2시간 동안 노를 졌는데도 별로 힘들어하지 않는다. 여분의 노가 있어 저어 보라고 한다. 조금 저으니까 힘들어서 그만두었다.조금이라도 보트 나가는 방향이 틀리면 뾰쪽하게 튀어나온 돌에 머리가 부딪칠 것 같은데 좁은 동굴 안을 요리조리 노를 저어 길을 찾아가는 뱃사공들의 운전 솜씨가 대단하다.

수로를 따라가다 보면 앞이 막혀 길이 없는 것 같은데 또 물길이 나온다. 앞에 높은 산이 있는데 그 아래로 좁은 동굴이 있어 또 지나간다. 높은 산과 깎아지른 절벽의 풍경은 가히 어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절경이다.

손바닥 크기의 기와로 지은 사찰.

손바닥 크기의 기와로 지은 사찰.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실시하는 설문 조사.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실시하는 설문 조사.

보트를 다고 가다 중간에 내려 몇 군데의 사당과 민속촌도 둘러보았다. 사당이나 사찰은 중국풍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민속촌에는 옛날 원시시대의 오두막집을 지어놓고 얼굴에 울긋불긋한 색칠을 하고 창을 든 원주민들이 있는데 관광객들은 이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는 팁으로 돈을 준다. 보트를 타고 돌아올 때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주면서 서비스 태도와 팁을 요구했는지 등 보트 탄 것에 대해 평가를 해 달라고 한다. 정부 차원에서 관광객들에 대한 서비스를 개선하는 등 관광객 유치를 위해 노력하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어서 좋아 보였다.

점심 후 땀꼭 지역을 방문했다. 중국의 계림 같은 분위기다. 땀꼭은 ‘육지의 하롱베이’라고 불린다. 카약을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다양한 모양의 산들이 즐비하다. 어떤 중년여성이 카약을 타고 다니며 관광객 사진을 찍는다. 찍지 말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그러고는 도착 장소 가까이 와서는 10장 정도로 사진첩을 만들어 주면서 우리나라 돈으로 1만 원을 달라고 한다. 한국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많이 해 본 솜씨다.

사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사진을 워낙 많이 찍어서 그런지 잘 찍었다. 나도 사진을 배우고 있지만 두 카약이 서로 흔들리는데도 불구하고 수평이 맞게 잘 찍은 것이다. 사진 촬영한 아주머니와 사진첩을 판매하는 아저씨는 다른 사람인데도 잘 알고 찾아와서 사라고 거의 강요를 한다. 나도 1만 원을 주고 샀다. 나중에 보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기도 하다.

땀꼭은 ‘세 개의 동굴’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닌빈시의 남서쪽 8km 떨어진 평야에 크고 작은 석회암 괴석들이 죽 늘어서 있고 그사이에 강이 흘러가는 명승지다. 좁은 강을 따라 길게 이어진 곳으로 주변의 경관은 짱안과 비슷하다. 끝까지 가서는 되돌아오는데 1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침대버스 10시간 타고 새벽3시 사파 도착

닌빈으로 돌아와 오후 5시 침대 버스에 탑승했다. 캐리어와 배낭 등 짐을 도착지별로 분류하여 버스 밑에 싣는다. 난생처음 타보는 침대 버스다. 우리가 올라가자 2층 뒷부분으로 가서 타라고 한다. 거의 온전히 누울 수 있다. 베개와 이불도 있다. 1층과 2층의 가격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먼저 타는 사람은 뒤쪽 2층부터 태운다. 우리 일행도 2층 중간 부분에 태워졌다. 차장이 좌석을 지정해 주는데 옮겨도 괜찮은 것 같다. 자리를 잡고 누우니 편안하다. 버스 안에 들어서면 3줄로 된 2층 침대가 줄지어 있다. 한 개 층에 20명이 탈 수 있게 되어있으니 총 40명이 누워서 갈 수 있다.

닌빈에서 사파까지는 하노이를 거칠 경우는 12시간 걸리는데 우리 버스는 사파로 직행하기 때문에 10시간 정도 소요된단다. 5시에 출발했으니 내일 새벽 3시에 사파에 도착할 예정이다. 새벽 3시에 도착하면 무엇을 할까? 환갑 넘은 나이에 침대 버스를 타고 10시간이나 달린다니 새로운 경험이고 기대된다. 버스는 계속 경음기를 울리며, 가끔 좌우로 흔들거리면서 쉼 없이 달린다. 재밌다. 언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으려나. 배낭여행의 묘미가 이런데 있는 것이다.

민속촌에서 원시시대 움막과 복장을 한 주민이 관광객과 즐기는 모습.

민속촌에서 원시시대 움막과 복장을 한 주민이 관광객과 즐기는 모습.

오후 5시 40분인데 해는 벌써 넘어가고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는다. 창문을 통해 아직 바깥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조금 지나자 버스 안에도 희미한 오색 등불이 켜진다. 출발한 지 1시간이 지냈는데 2층 좌석도 다 채워지지 않았다. 아직도 바깥에 보이는 산들의 모습이 땀꼭이나 하롱베이에서 본 것처럼 뾰쪽하고 높다. 이 지방의 산의 모습은 다 이런 모양이다. 들판의 논은 모내기를 하려는지 물이 가득 채워져 있다. 기온은 17∼24℃ 정도다.

전에도 여행하면서 느꼈지만, 영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구글 번역 어플로 소통은 가능하지만, 아직 완벽하게 번역되지는 않는다. 또 사용하려면 핸드폰을 꺼내어 어플을 켜고 말을 해야 하며, 발음이 정확하지 않으면 잘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정확하게 번역되지도 않을 때가 많다.

땀꼭에서 두 발로 노를 저으며 사진을 촬영하는 주민.

땀꼭에서 두 발로 노를 저으며 사진을 촬영하는 주민.

땀꼭에서 카약을 타고 이동하는 관광객.

땀꼭에서 카약을 타고 이동하는 관광객.

버스는 계속 달리면서 중간 중간 소도시를 지나며 잠깐 멈추어 손님을 태운다. 침대가 하나둘 채워진다. 6시가 지나니 바깥이 완전히 어둠 속에 파묻혔다. 6시 40분에 중간 정류장에서 20분간 정차한다고 하니까 대부분 승객이 내린다. 운전사와 현지 승객들은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가 식사를 한다. 우리도 화장실에 다녀온 후 밥과 나물, 돼지고기 구운 것과 국으로 저녁을 먹었다. 식사는 4인분이 20만 동 즉 1만 원이다. 사파까지 차비는 375,000동이다. 우리 돈의 1/20이니 1만8천 원 정도다.

서양인 여행객들은 가게에서 빵을 사서 먹는다. 현지 음식이 먹기가 좀 거북한 모양이다. 승객이 모두 타자 또 달린다. 이제는 경음기를 울리지 않고 달린다. 늦은 시각이 되자 도로에 오토바이가 다니지 않는 모양이다.

하롱베이와 짱안과 땀꼭의 산 모습은 거의 비슷하다. 주로 돌로 된 산으로 우리나라 산은 부드러운 곡선인데 비해 여기는 산봉우리가 뾰쪽하고 상당히 높이 봉긋봉긋 솟아있다. 또 봉우리가 집단으로 모여 있다. 하롱베이는 바다에 산들이 모여 있는 것이고, 짱안은 깨끗한 강물이 흐르지만, 땀꼭은 늪지대로 되어있다. 그래서 짱안은 강물이 깨끗한 데 비해, 땀꼭은 물이 탁하다.

닌빈에서 사파를 오가는 현대자동차 마크가 선명한 2층 버스.

닌빈에서 사파를 오가는 현대자동차 마크가 선명한 2층 버스.

닌빈에서 사파로 가는 2층 버스 내부.

닌빈에서 사파로 가는 2층 버스 내부.

우리가 타고 가는 차는 현대자동차에서 만든 버스다. 차 정면에 현대자동차 마크가 붙어있는 것을 보니 자랑스럽다. 닌빈에서 라오까이를 거쳐 사파를 가는 버스다. 하노이에서 라오까이까지는 고속도로가 잘 되어 있다. 닌빈에서 저녁을 먹고 버스에 누우니 잠이 오지 않는다. 이럴 땐 여행 일지를 쓰는 것이 최고다. 비스듬히 누워 핸드폰 메모장에 여행 소감을 적는다.

어둠을 뚫고 계속 달리던 버스가 잠시 멈춘다. 밤 12시 40분이다. 모두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온다. 예상외로 깨끗하다. 양변기도 있다. 하늘은 잔뜩 구름을 머금고 있는지 별이 하나도 안 보인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이라면 더욱 좋을 텐데. 10여 분을 쉬다 또 달린다. 이제 사방이 조용하다. 조금은 고생스럽지만, 운치도 있고 재밌다.

버스는 좌우로 조금씩 흔들거리면서 씩씩거리며 달린다. 차 안은 운전기사의 졸음을 쫓기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중국풍 음악이 은은히 들리고, 그동안 켜 두었던 오색 실내등도 꺼졌다. 잠을 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100여km의 일정한 속도로 어둠을 가르며 달린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해가 되었으니 이제 우리 나이로 65세가 된다. 이 나이에 배낭여행을 다닌다니 멋진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할 만하다. 이제 고속도로를 벗어났는지 차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거려 글쓰기가 어렵다. 라오까이를 지나 사파 가는 시골길로 접어든 모양이다. 아직 2시간은 더 달려야 한다. 이제 눈을 좀 붙여봐야겠다.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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