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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고기·쌀국수에 술 1병…5명이 먹었는데 1만원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남대의 예순에 떠나는 배낭여행(2)

은퇴를 하자 좀 느긋하게 여유를 갖고 내 마음대로 여행을 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영어 실력이 부족하고, 인터넷 검색도 서툴고, 자신감도 없다. 여러 궁리 끝에 지인 4명과 의기투합, 한 달 일정으로 동남아 4개국을 다녀왔다. 은퇴자들의 배낭여행, 그 좌충우돌 여정을 여러분과 공유한다. <편집자>

하노이의 아침

하롱베이 시가지 야경(위). 하롱베이 해변에서 일행과 함께(아래). [사진 조남대]

하롱베이 시가지 야경(위). 하롱베이 해변에서 일행과 함께(아래). [사진 조남대]

7시 호텔 옥상 층에 있는 식당에서 쌀국수로 베트남에서의 첫 아침 식사를 했다. 베트남에 무사히 도착해 전망이 탁 트인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니 기분이 상쾌했다.

식사 후 8시경 1층으로 내려와 전화로 리턴 티켓을 환급받으려 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아 노트북으로 취소하자 환급수수료가 22만1500원이나 된단다. 리턴 티켓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대처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많이 아쉽다. 지나간 일이니 할 수 없다.

하롱베이부터 관광하기로 했다. 9시경 버스 정거장으로 출발하려고 호텔 측에 일행이 5명인데다 캐리어가 4개나 되니 큰 택시를 불러 달라고 했는데, 현대 i30 택시가 왔다. 하노이 택시는 대부분이 i30이다. 하노이에서 한국산 자동차를 만나니 자부심이 생긴다.

택시 기사에게 “우리는 큰 택시를 불렀는데 왜 작은 차가 왔느냐”고 하자 다 실을 수 있단다. 기사는 자동차 트렁크를 열더니 우리의 여행용 가방 4개와 배낭 하나를 모두 싣고 뒷좌석에 4명이 끼여 타고 조수석에 1명이 탈 수가 있다.

현대 i30 하노이 택시(위). 하롱베이 거리를 둘러보는 일행(아래). [사진 조남대]

현대 i30 하노이 택시(위). 하롱베이 거리를 둘러보는 일행(아래). [사진 조남대]

조그만 트렁크에 우리 짐이 다 들어갔다. 10분 정도를 달려 도로변 어떤 호텔 앞에 내려주면서 조금 기다리면 하롱베이로 가는 버스가 온다고 한다. 택시비는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 정도인 2만 동 나왔다.

그러나 호텔 앞은 하롱베이로 가는 차를 타는 곳이 아니었다. 여러 사람에게 수소문한 끝에 12시에나 자가용 영업 택시를 타고 하롱베이로 출발할 수 있었다. 3시간 동안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허비한 데다 하롱베이로 가는 버스요금의 2배나 되는 170만 동을 들여 가게 된 것이다.

말도 통하지 않아 시행착오도 거듭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한국에서 사업하다 온 베트남 사람이 한국말을 잘해 택시를 불러주기도 했으며, 또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학생이 교통편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랩택시를 불렀으나 우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지를 못해 결국 취소했다.

휴게소에서 진주조개에 핵을 넣은 모습(위). 길거리에서 드라이버가 신사과를 구입하고 있다(아래). [사진 조남대]

휴게소에서 진주조개에 핵을 넣은 모습(위). 길거리에서 드라이버가 신사과를 구입하고 있다(아래). [사진 조남대]

우리 일행을 자가용 택시를 타는 곳으로 안내한 사람은 수고한 비용을 달란다. 20만 동이란다. 당신이 소개한 것이 아니지 않으냐고 했더니만 막무가내다. 소개를 부탁한 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안내해 놓고 수고비라니 좀 황당했다.

그래서 한국 돈 5000원을 줬으나 화를 내며 안 받겠다고 해 조금 더 주니 투덜거리면서 돈을 받아가 버린다. 수고하기는 했지만, 자발적으로 안내해주고는 수고비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하고는 정서가 많이 다른 것 같다.

머나먼 하롱베이로 가는 길

우리 일행을 태운 자가용 영업 택시는 하롱베이로 가는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린다.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좌우로 넓은 들판이 펼쳐졌다. 기사가 한참을 달리다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길거리에서 살구 크기의 대추처럼 생긴 파란색 ‘신사과’를 사서 우리에게 주었다. 먹어보니 신맛은 좀 나지만 맛도 괜찮고 그동안 차편을 구한다고 길거리에서 신경을 써서 그런지 시장기가 있었는데 해소가 됐다.

조그마한 것이지만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분위기가 푸근해진다. 하롱베이로 가는 고속도로 주변은 산은 보이지 않고 넓은 들판만 끝없이 펼쳐져 있다. 고속도로에 차량이 드문드문한데도 100km 정도로 정속 주행한다. 베트남 사람들의 느긋한 모습이 부럽다.

기온은 14∼15℃다. 열 내의를 입고 그 위에 패딩을 입었다. 톨게이트 비용이 21만 동이다. 날씨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고 안개가 자욱하다. 어제 새벽에 도착한 후 제대로 쉬지 못해서 피곤했던지 깜빡 졸고 나니 개운해진다.

도로를 건설한다거나 아파트를 짓는 등 공사하는 모습이 군데군데 보인다. 아스팔트 포장이 깨끗하다. 현대자동차 마크를 단 버스와 트럭, 택시, 자가용 등이 즐비하다. 호텔이나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박항서 감독을 이야기하니 최고란다. 모두들 피곤해서 그런지 잠이 들어 조용하다.

휴게소에서 멀리 보이는 하롱베이 모습(위). 휴게소에서 차를 한잔하며 휴식을 취하는 일행(아래). [사진 조남대]

휴게소에서 멀리 보이는 하롱베이 모습(위). 휴게소에서 차를 한잔하며 휴식을 취하는 일행(아래). [사진 조남대]

한참을 달리다 중간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한잔하고 휴식을 취했다. 차편 수배에 신경 쓴 것으로 생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듯하다. 휴게소에서는 진주조개를 양식하고, 진주를 가공해 만든 목걸이나 반지 등을 판매하기도 한다. 저 멀리에는 하롱베이 산들이 안개에 가려 희미하게 보인다.

얼마 후 하롱베이에 도착해 기사가 소개해 준 식당에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새우와 조개, 감자튀김 등 주로 해산물로 식사를 한 후 저녁 6시경에 환전소에 들린 후 바로 앞에 있는 호텔에 들어갔다. 2인실과 3인실 룸 2개를 70만 동 달라는 것을 할인해 60만 동에 투숙하기로 했다. 방 하나에 1만5000원인 셈이다. 물가가 상당히 싸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롱베이 건너편 야산과 연결된 케이블카(위). 드라이버와 함께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아래). [사진 조남대]

하롱베이 건너편 야산과 연결된 케이블카(위). 드라이버와 함께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아래). [사진 조남대]

호텔 방에 짐을 풀고 하롱베이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관광객이 많지 않다. 케이블카의 케이블이 육지에서 바다 건너 산 위로 길게 늘어서 있고, 바닷가에는 하롱베이 특유의 높다란 섬들이 보인다. 하롱베이는 이구아수폭포, 아마존 우림, 제주도 등과 함께 뉴세븐원더스 재단이 2011년 세계인을 대상으로 인터넷 투표를 통해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한 곳이다.

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식당가와 주변을 둘러본 다음 재래시장에 들러 음식을 먹으려 했지만 부근에는 재래시장이 없다고 한다. 이슬비가 와 더 이상 식당 찾기를 포기하고 골목 도로변 포장마차에서 닭튀김과 쌀국수에 베트남 술을 마시며 오늘 일을 반성해 본다. 길거리 음식이라 아주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먹을 만하다.

비가 추절추절 내리는 골목길에 천막이 쳐진 포장마차에서 먹는 음식과 술맛도 그런대로 운치가 있다. 닭고기 2인분과 쌀국수 3그릇에 술 1병이 29만 동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1만4500원이다. 가격이 싸도 너무 저렴하다.

하롱베이 1일 투어 1인당 4만원

하롱베이 시가지 모습. [사진 조남대]

하롱베이 시가지 모습. [사진 조남대]

오늘은 아무런 계획도 없이 우왕좌왕하다 비싸게 자가용 택시를 타고 오느라 하루를 다 보냈다. 앞으로는 매일 저녁 다음날 일정을 협의해 규모 있고 계획적인 여행을 하기로 했다. 내일은 하롱베이 1일 투어를 하기로 하고 호텔 측에 부탁해 예약했다.

그리고는 5시에 닌빈으로 가 1박을 하고, 땀꼭에서 1일 관광을 한 다음 하노이로 돌아와 토요일에는 사파를 관광키로 계획을 세웠다. 베트남에서 여행 일정은 대강 정해진 것이다. 하롱베이 1일 투어는 1인당 80만 동 즉 4만 원에 하기로 예약했다. 패키지 관광보다 시간을 규모 있게 활용하지는 못하지만 여유롭고 스스로 여행 일정을 조절하고 즐기며 관광을 한다는 장점이 있다. 구글 번역기로 대강의 의사소통은 되고, 호텔 같은 곳에서는 간단한 영어 정도는 통한다.

저녁을 먹고 오면서 슈퍼에 들러 맥주와 가벼운 안주를 준비해 숙소로 돌아와 여행과 관련한 의견을 교환했다. 베트남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 한참 이야기하며 맥주를 마셨는데도 10시다. 우리나라보다 2시간이 늦은 시간차 때문이리라.

내일은 6시 반에 일어나 7시에 아침을 먹고 8시에 하롱베이 1일 관광을 하고 땀꼭이 있는 닌빈으로 가는 일정이다. 이제 여행 2일차인데도 오늘 하롱베이로 오느라 고생을 해서 그런지 상당히 여러 날 지난 것 같은 기분이다. 앞으로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좋은 징조다. 베트남도 소득수준이 높아져서 그런지 사람들의 인상이나 외모로 풍기는 모습이 몇 년 전과 비교해 매우 세련된 것 같다.

조남대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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