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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국내 지자체 첫 ‘셉테드(CPTED·범죄예방환경설계)’ 도입…5대 범죄 뚝↓ 시민 만족도 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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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안전한 도시 만드는 청주시
얼마 전 국내 3대 미제 사건 중 하나인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밝혀지며 세상이 떠들썩했다. 사람들은 외지인이 아닌 동네 사람이 범인이었다는 사실에 더 경악했다. 결국 우리 동네·이웃사촌도 경계 대상이라는 불신과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세상에 범죄로부터 자유로운 동네는 없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안전한 동네는 있다. 어두운 골목길을 밝히고 함께 관심을 기울인다면 가능하다. 범죄예방 사업으로 도시 환경을 개선해 범죄율을 절반 이상 줄인 충북 청주시에서 그 해답을 찾아봤다.

초등학생들의 그림과 손도장으로 꾸민 가경동의 옹벽 벽화와 여성안심귀갓길.

초등학생들의 그림과 손도장으로 꾸민 가경동의 옹벽 벽화와 여성안심귀갓길.

충북 청주시는 범죄 취약 구역을 안전한 곳으로 개선하는 노력을 해마다 이어오고 있다. 일시적인 사업에 그치지 않고자 제도적인 기반을 마련해 수년째 실행·확대해 가고 있다.

시장·유흥가·원룸촌 같은 #우범 지역을 안전지대로 #올해 범죄예방대상 최고상

그 시작은 2014년 청주와 청원을 합친 통합시 출범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해 ‘청주시 범죄예방환경설계 가이드라인’(2014년)을 발표했고, 이듬해엔 ‘청주시 범죄예방환경설계 조례’(2015년)를 제정했다. 이어 2016년엔 국내에서 처음으로 ‘범죄예방환경설계 종합계획’도 발표했다. 경찰서의 범죄예방진단팀(CPO)이 진행한 범죄안전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청주시의 모든 행정구역을 안전지대로 만드는 계획이다.

범죄에 취약한 공간은 문제 유형과 위험 단계로 나눠 셉테드(CPTED·범죄예방환경설계)를 적용한 전략을 짰다. 이는 해마다 지속적인 정책 마련과 사업 실행을 통해 범죄율을 크게 낮추는 데 기여하고 있다.

2014년부터 법·제도적 기반 마련

청주시는 2017년 대표적 전통시장인 상당구의 육거리시장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노하우를 축적하고 사업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아케이드 구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육거리시장의 정문 쪽 광장을 깨끗하게 정비했다. 또한 골목길과 주차장의 공간을 정비하고 로고젝터·비상벨·안심존 등의 셉테드 시설을 도입해 안전성을 강화했다.

흥덕구 증안초의 범죄예방 로고젝터.

흥덕구 증안초의 범죄예방 로고젝터.

사업 이후 육거리시장 변화에 대한 시민 만족도를 설문조사했더니 사업 시행 후 범죄에 대한 염려가 69%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서가 실시한 범죄안전진단 결과에서도 절도·폭력·강간 등의 5대 범죄 발생 건수가 사업 시행 전과 비교해 45%가량 줄었다.

청주시는 시범사업의 긍정적인 효과에 힘입어 지난해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범죄가 항상 도사리고 있는 유흥가·원룸촌 등을 대상으로 시작했다. 우선 가경동의 시외버스터미널 유흥가와 오창읍 구룡리 산업단지 내 원룸 밀집 지역의 절도·폭력·성범죄 같은 범죄발생 현황을 파악했다.

이후 공간의 특성을 반영해 ▶옹벽 벽화와 휴게 공간 조성 ▶보행안심 거리와 도로 공간 분리 ▶방범초소·CCTV·경관조명·로고젝터 설치 ▶안심거울, 방범용 가스덮개, 주차장 반사시트 설치를 진행했다.

위급 상황을 빨리 알릴 수 있는 공원의 비상벨

위급 상황을 빨리 알릴 수 있는 공원의 비상벨

지난해 이어 올해도 두 번째 사업을 이어간다. ‘시민과 함께 만들어 가는 셉테드’를 목표로 흥덕구 복대동 하복대 지구의 유흥가, 학교, 원룸촌을 대상으로 공간을 개선 중이다. 시범사업, 첫 번째 사업을 진행하며 문제점으로 지적된 주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민·관·경 협의회와 사업추진 협력 부서를 구성했다. 이와 함께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사업설명회·설문조사 등을 실시해 주민의 의견을 적극 수렴했다. 이 사업은 오는 11월 준공할 계획이다.

시민과 함께 만드는 셉테드 추구

학교 앞 범죄를 줄이기 위해 조성한 옐로카펫.

학교 앞 범죄를 줄이기 위해 조성한 옐로카펫.

청주시의 범죄예방환경설계 사업은 제도적 기반을 탄탄히 마련하고 셉테드 도입을 활성화했다는 점을 높이 인정받고 있다. 2017년 청주시 시정 10대 으뜸성과 선정을 비롯해 2017년 시민체감행정 우수시책, 2017·2018년 여성친화도시조성 우수사업, 2017·2018년 시·군 종합평가 셉테드 우수 지역에 선정됐다. 올해는 대한민국 범죄예방대상에서 대통령 표창도 수상한다.

청주시는 앞으로도 범죄예방 사업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사업을 시행하면서 문제점으로 제기된 셉테드의 전담인력 부족, 도입시설의 사후관리 인력 부족 등을 해결하기 위해 ‘범죄예방환경설계 추진 전담팀’을 꾸리고 주민참여형 신규 사업을 마련할 계획이다.

육거리시장 범죄를 줄이기 위해 아케이드에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설치하고(위) 정문쪽 광장 도로를 재정비했다.(아래)

육거리시장 범죄를 줄이기 위해 아케이드에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설치하고(위) 정문쪽 광장 도로를 재정비했다.(아래)

우두진 청주시 도시계획과장은 “앞으로 전담인력 충원과 사업공모(국비) 등 재원 마련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범덕 청주시장 또한 “지역공동체를 바탕으로 한 정보 공유, 상생협력 공동체 치안 체계를 구축하고 셉테드 사업에 대한 주민의 관심도를 높여 참여를 유도할 것”이라며 “시민과 함께하는,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안전한 청주시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셉테드(CPTED)는=‘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의 첫 글자로 건축설계·도시계획 단계부터 범죄를 자연스럽게 예방하도록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두운 골목길 등 범죄에 취약한 장소를 환경 설계를 통해 밝고 안전한 곳으로 바꿔 범죄를 예방하는 기법이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셉테드를 도입해 도시·건물 건설 등에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들어 셉테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점차 각 지역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지역 주민 참여형 방범 활동 앞장선 민관 발굴해 시상

‘대한민국 범죄예방대상’은 지역 사회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힘써 온 공공기관·사회단체·기업에 수여하는 상이다. 시민의 치안활동 참여를 확대하고 자발적인 참여 의지를 이끌기 위해 매년 경찰청과 중앙일보가 공동 주관한다.

올해 4회째를 맞는 대한민국 범죄예방대상에는 총 180개 기관·기업·단체가 응모했다. 범죄예방 관련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적정성, 차별성,참여적극성, 지속·확산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평가해, 5개 부문(종합우수·청소년·공공기관·사회단체·기업사회공헌 부문)에서 총 25개 기관·단체를 선정했다.

이 가운데 종합우수상인 대통령 표창은 청주·청원 통합시 출범과 함께 범죄예방 환경설계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시행하고 조례를 제정한 청주시가 차지했다. 심사에 참여한 이창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일반적 획일적인 사업을 지양하고 창의적이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사업을 발굴한다는 기준에서 심사했다”며 “청주시는 시 전체 범죄예방 환경설계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이 마스터플랜을 토대로 단계별 사업추진계획을 세워 진행했다는 점이 좋았다”고 평가했다. 제4회 대한민국 범죄예방대상은 오는 11월 6일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개최된다.

글=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사진=청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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