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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승현의 직격인터뷰

“공수처 만들어지고 정권 입맛에 맞춰 움직이면 큰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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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민주당 당론에 맞선 금태섭 의원 

금태섭 민주당 의원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추진에 대해 ’하나 있는 권력기관(검찰)의 힘을 빼자. 하나 더 만들지 말고“라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금태섭 민주당 의원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추진에 대해 ’하나 있는 권력기관(검찰)의 힘을 빼자. 하나 더 만들지 말고“라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은 순항할 수 있을까. 어느 정부의 공약보다 선명했던 검찰 개혁 목표는 지금은 최악의 풍랑을 만났다. 선장이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아이러니하게도 수사 대상이 되면서 개혁과 반개혁의 논리가 뒤엉켜 버렸다. 윤석열 검찰총장 역시 국정농단 수사의 영웅에서 개혁 대상으로 몰렸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패스트트랙 처리 법안에 올라 있지만, 검찰 개혁을 담보할 ‘뉴노멀’인지 새로운 ‘괴물’인지 분간이 어려운 상황이다.

법원 앞 집회는 민주 아닌 압박 #공수처는 검찰 개혁 아니라 후퇴 #적폐 청산 뒤 특수부 폐지 무리수 #검찰 수사·기소권 분산이 핵심

국론 분열은 광장에 나타났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과 광화문에서는 진보와 보수 촛불이 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사회 지도자들이 나서서 집회를 말려야 하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특수부 검사를 지낸 금 의원은 “검찰의 힘을 빼는 게 먼저”라며 여당의 공수처 안에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유연성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한 그에게서 검찰 개혁의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인터뷰는 24일 중앙일보사에서 진행됐다.

법원 앞 집회가 왜 위험한가.
“많은 나라가 사법부를 선거로 뽑지 않는 것은 여론에서 자유롭게 인권 보장을 위해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결정을 내리라는 취지다.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은 좋지만, 검찰이나 법원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하는 것은 실제로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결정을 내려도 독립적인 것인지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어서 대단히 안 좋은 일이다. 그런데도 사회적으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자꾸 내밀고 ‘죄가 없다더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정보가 제한된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하는 것은 절대 자제해야 한다.”
그것을 ‘민주적 통제’로 여기는 것 같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사회도 아닌데 굳이 법원·검찰 앞에 가서 하는 것은 민주적 통제가 아니라 압박이다. 재판과 수사를 담당하는 분들은 어디까지나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회의 책임 있는 인사들은 욕을 먹더라도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표를 생각해야 할 텐데.
“단기적으로는 집회에 나온 분들한테 동조하는 게 표에 도움이 될 것 같아도, 길게 본다면 또 정당 자체로는 용기 있게 말하는 것이 신뢰를 쌓는 길이라 생각한다. 윤석열 총장 인사청문회 때 여당 성향 셀럽들이 극찬했다. 심지어 ‘의리를 지키는 상남자’라고 했는데, 지금 와서 상황이 달라지니까 임기가 정해진 총장에게 ‘물러나야 한다’고 한다. 도대체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거다. 장기적으로는 ‘옳은 것이 항상 이긴다’고 생각한다.”
여당도 조국 전 장관을 비호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많은 분이 가족 수사에 대한 인권 문제를 말했다. 정치인이자 공인의 한 사람으로서 가족들이 고생하는 걸 보면 심정적으로 공감은 간다. 그런데, 공인의 자리에 스스로 나서서 장관이 됐을 때는 그런 검증은 의무이고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금 의원은 공수처에 대한 반대 입장에 대해 “선례가 없는 기관에 대한 스터디가 제대로 안 됐다”고 지적했다. “덮어놓고 공수처가 우수하고 문제없는 제도라고 한다면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입장이 상반되는 점에 대해선 “대통령께서는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신다”고 즉답을 피했다.

공수처의 가장 큰 문제는.
“수사 대상이 판·검사·국회의원 등 약 6000명으로 한정된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방향인데,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갖고 다른 수사기관의 사건을 가져올 수도 있는 강력한 기관에 그 한정된 인원을 지켜보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 법원행정처가 사법 독립을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고 한 것도 그래서다. 문재인 정부에서 그러지는 않겠지만, 제도가 한 번 만들어지고 공수처장이 정권의 입맛에 맞춰 움직이면 큰 위험성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전 세계에 이런 기구가 없는 것이다.”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를 긴장시키는 역할’을 강조했는데.
“어떤 제도든 장점은 있다. 고위공직자가 좀 더 청렴해지고, 비리 판·검사에 대한 정의 구현이 더 잘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검찰도 국정농단 수사나 재벌 수사에서 세계 어떤 기관보다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지만, 정치적 편향성을 가질 때 너무나 큰 부정적인 측면을 보였다. 지금은 검찰을 개혁하려 한다. 공수처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사회 현상이 형사 절차를 거쳐 해결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기관이 또 생기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논란을 겪으면서 대통령의 공감·소통 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떤 정부나 인사나 정책에서 항상 최선의 결과를 처음부터 내놓지 못할 때도 있다. 조국 전 장관의 경우도 그렇다. 완벽한 행정부는 없고,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때 여당 의원이 오히려 목소리를 내주는 것이 도움된다고 생각한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보수가 무너진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실패하면 한국 정치 전체가 실패하는 것이어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미국의 토마스 제퍼슨이 말한 것처럼 ‘비판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형태의 애국이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쓴소리도 하는 것이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공수처장 임명 국회 동의, 기소심의위 설치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나.
“제도를 꾸밀 때 희망 사항을 갖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공수처가 국회 통제를 받고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사람이 처장이 이끌어 갈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방안이 있으면 왜 검찰을 그렇게 안 했겠나. 검찰도 컨트롤이 어려운데, 지금 공수처 법안에 장치 몇 개 넣어서 검찰보다 더 센 기관을 정치적 영향력이 없게 만든다는 건 참 어려운 얘기다. 기소심의회는 미국식 대배심 제도인데, 미국에서는 대배심을 ‘러버 스탬프’, 고무도장이라 부른다. 전문가인 검사가 설명을 해주면 시민들이 독자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나.
“힘센 검찰을 유지한 채로 그것을 잘 컨트롤해서 정의의 검찰로 만드는 건 환상이다. 검찰이 가진 권한을 쪼개서 한 사람이 수사와 기소를 동시에 담당하지 못하게 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가야 한다. 검찰이 약해지면 권력자도 힘없는 검찰 인사에 굳이 개입하려고 하지 않게 된다. 검찰도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에 영향을 못 미치게 된다. 전 세계에서 역사상 유례없는 강력한 권력기관을 유지한 채로 이걸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기관을 만들겠다는 공상을 버리고, 그런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권력기관의 힘을 빼고 권한을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공수처는 검찰의 힘을 크게 빼지 않은 상태에서 컨트롤타워를 통해 검찰을 조종·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하나 있는 권력기관(검찰)의 힘을 빼자, 하나 더(공수처) 만들지 말고.”
이번 정부에서 특수부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바뀌었는데.
“조국 민정수석 당시엔 특수부로 적폐 청산을 하고 그다음에 검찰 힘을 빼는 개혁을 생각한 것 같다. 수사는 물론이고 개혁도 생물이다. ‘딱 거기까지 하고 여기서부터 이렇게’ 식으로 안 된다. 조 전 장관도 처음엔 검찰의 효율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다가 본인이 당해보니까 특수부를 없애자는 말이 나오게 됐다. 특수부를 사상 최대로 늘려서 적폐 청산도 하고 검찰 개혁도 하겠다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것이었다.”
유시민 이사장은 ‘60점짜리 공수처라도 만들자’고 주장하는데.
“너무 이상적인 제도를 고집하지 말고 한 걸음이라도 나가자는 것인데, 저는 공수처를 만드는 것은 뒤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비리 판·검사를 없애자는 개혁 요구가 큰 것 아닌가.
“권력기관의 효율성을 추구하다 보면 권한 남용의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 선택의 문제이긴 하지만, 한 발짝 뒤로 가는 걸 찬성하기가 쉽지 않다.”
공수처법 국회 통과는 가능할까.
“문재인 정부의 치적이 될 공수처를 야당이 찬성할까. 정부가 공수처를 하고 싶다면 여당 의원에게 추진하라고 할 게 아니라, 야당 의원을 만나고 그 의견을 반영해줘야 한다. (국회 통과를 위해) 표를 박박 긁어모아서 하는 것은 성공한 정치라고 보기 어렵다. 집권 여당이 고집을 좀 버리고 양보를 더 많이 한다는 생각으로 한다면 결국 문재인 정부의 성과가 된다. 지금 여당에 가장 부족한 것이 유연성이다. 검찰 개혁도 그 목표에 천착해야 하는데, 공수처라는 개별 정책에 집착하고 있다.”
정경심 교수가 구속됐다. 여당의 개혁 동력에 안 좋은 영향을 줄까.
“변화가 있겠지만, 진행 중인 사건을 여당 의원이자 법사위원이 언급하면 수사와 사건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말하기 모호하다.”
당과 다른 입장이 힘들지 않나.
“고생했다고 격려해주는 분이 더 많다. 속 시원하게 말 잘했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발 뻗고 잘 수가 있다. (웃음)”

김승현 논설위원 정리=김혜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