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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이 만났다…화려한 로코코와 사군자의 선비정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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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새 연작 ‘노블레스 하이브리디제’를 개인전에 선보이고 있는 코디 최. [사진 PKM갤러리]

새 연작 ‘노블레스 하이브리디제’를 개인전에 선보이고 있는 코디 최. [사진 PKM갤러리]

회화와 조각·설치 작품을 넘나들며 동·서양 문화의 조우를 탐구해온 작가 코디 최(본명 최현주·58)가 최근 새 연작 ‘노블레스 하이브리디제(Noblesse Hybridige)’를 선보였다.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고 있는 개인전 ‘하드 믹스 매스터 시리즈 2: 노블레스 하이브리디제’에서다. 17~18세기 프랑스와 고려·조선의 귀족들에게 각각 사랑받았던 미술 양식인 로코코와 사군자를 과감하게 한 화폭 안에 끌어들였다.

연작 ‘노블레스…’ 선보인 코디 최 #동서양이 뒤섞인 아름다움 표현

‘노블레스 하이브리디제’는 상류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단어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와 ‘혼성’ ‘잡종’을 뜻한 단어 ‘하이브리드(hybrid)’를 패러디한 신조어로 동·서양 귀족 취향의 혼성을 뜻한다. 최 작가는 이를 가리켜 “미학적인 접근에서 양극단에 있었던 로코코 문화와 사군자 문화의 충돌”이라고 설명했다.

“17~18세기 서양 귀족 계급에 로코코(Rococo) 문화가 만연했을 당시 조선 시대에는 사군자 문화가 꽃피었죠. 비슷한 시기 각기 다른 공간에서 두 극단의 문화가 존재했던 겁니다. 한껏 화려하고 섬세한 문화가, 그리고 또 다른 쪽에선 엄격하게 절제된 선비정신의 문화가 받들어졌죠.”

극도로 섬세하게 표현된 꽃들과 한 호흡에 그려낸 검은 난초는 화면 안에서 묘한 기운을 뿜어낸다. 언뜻 보면 극도로 이질적이고, 자꾸 들여다보면 하나같아 보이기도 한다. 녹색 톤의 숲을 배경으로 한 난초는 더욱 그렇다.

‘혼성’은 최 작가가 지난 30여년간 집요하게 매달려온 주제다. 1980년대 미국에 이민 가 “문화적 소화불량의 시기를 겪었다”고 말하는 그는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해 만들어지는 제3의 문화현상에 주목해왔다.

“후기 식민주의 이론가 호미 바바는 이와 같은 심리적인 혼성 공간을 가리켜 ‘제3공간’이라고 했죠. 그는 우리가 혼종의 상태를 인정하고 이해해야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고 했는데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끊임없이 우리의 정신을 자극하는 문화의 정체를 파악해야 우리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죠.”

그는 자신이 목격하고, 체감하고 탐구해온  혼성 문화를 자신만의 화폭(인조대리석) 위에 풀어놓았다. 로코코 시대와 조선 시대 예술 작품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찾고, 컴퓨터에서 디지털 UV 프린트로 뽑아낸 뒤 이를 인조 대리석 위에 여러 겹으로 겹쳐 투사했다.이어 그는 로코코 시대의 이미지는 서양 전통 안료인 오일(유화)로, 사군자 이미지는 동양 옻칠 대체재인 캐슈(cashew)로 색을 얹어 나갔다. 인조 대리석 위에 작업한 것에 대해서는 “16~19세기 벽화에 그림을 그리던 프레스코(fresco) 기법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혼종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지난 20년간 해온 다양한 시도가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래서 요즘 작업이 더욱 설렌다”고 말했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미국 아트센터디자인대에서 디자인과 순수미술을 전공한 그가 컴퓨터에서 얻은 이미지 데이터를 섞으며 작업해온 지도 벌써 20년이 넘는다. “1997년 당시 꼬마였던 아들이 컴퓨터에서 얻은 이미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본 데서 영감을 받아 디지털 믹스 작업을 시작했다”는 그는 “데이터가 창조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데이터, 이것이 현대인의 새로운 정체성이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전시는 11월 5일까지.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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