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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재의 전쟁과 평화

석은 김용근 선생의 가르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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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철재 기자 중앙일보 국방선임기자 겸 군사안보연구소장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요즘 서울의 광장은 정치로 가득 찼다. 공휴일과 주말마다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벌어진 집회들 얘기다. 양쪽 모두 ‘검찰’과 ‘조국 법무부 장관’을 앞에 내세웠지만, 사실은 보수와 진보 진영이 뒤에 자리 잡은 싸움이다. 보수와 진보는 서로 자신이 믿고 따르는 가치가 다르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들의 가치가 결국 ‘더 나은 대한민국’을 지향한다는 점에선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는 석은(碩隱) 김용근 선생이 몸소 남겨준 가르침이기도 하다. 김용근선생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선생은 독립유공자와 6·25 참전용사이면서 5·18민주유공자다.

석은 선생은 1917년 10월 28일 전라남도 강진군 현산리에서 태어났다. 평양 숭실학교에 다닐 때 일본 제국주의의 신사참배를 거부해 유치장에 수감됐다. 그의 동문이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다. 이후 총독 암살단을 조직한 혐의 등으로 2차례 3년의 옥고를 더 치렀다.

광복 후 경복고에서 교편을 잡던 중 6·25전쟁이 일어나자 51년 육군 제9사단에 입대해 싸웠다. 제대 후 육사·전주고·광주고·광주제일고·전남고 등에서 역사를 가르쳤다. 교내의 유신 반대 학생시위를 막지 못했다는 책임을 지게 된 선생은 78년 강진으로 귀향해 농사를 지으면서 향토사를 연구했다. 80년 5·18민주화운동으로 수배를 받던 제자 윤한봉·정용화·김남표·은우근을 숨겨준 죄목으로 투옥됐다.

선생은 이때 얻은 심근경색증으로 85년 5월 22일 소천했다. 사후 87년 독립유공자, 2002년 5·18민주유공자로 각각 추서됐다. 그는 오롯이 보수주의자이거나 진보주의자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을 떠받치고 있는 뿌리인 독립과 호국, 민주를 적극적으로 실천했을 뿐이다.

민주주의에서 자신의 주장을 큰 목소리로 알리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지금 서울의 광장에서처럼 상대를 증오하고 배척하는 장면에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대한민국을 위해 평생을 바친 석은 선생이 하늘에서 지켜보면서 가슴을 치며 비통해하지 않을까. 그의 위대한 유산을 후손들이 허투루 낭비해선 안 되겠다.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