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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영기의 시시각각

문 대통령 국민항복 시간 다가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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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역사에 기미(機微)라는 게 있다. 기미는 어떤 일을 알아차리는 낌새나 조짐 같은 걸 말한다. 나는 지금 전두환 정권이 4·13 호헌이라는 무리한 조처를 내린 지 두 달 반 만에 6·29 대국민 항복선언을 했던 그때의 기미가 느껴진다. 1987년 봄에서 초여름까지 철권통치로 찍어누르면 누를수록 국민의 저항은 커졌다. 급기야 정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초조함 속에 전두환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 헌법을 수용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흘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법을 집행하는 장관 자리에 범죄 피의자를 앉혀 놓고 엉뚱하게 검찰 개혁 타령으로 관제 데모를 부추겨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

거짓의 세력 패퇴하기 시작했다 #유시민·한겨레신문발 자중지란 #‘전두환 호헌’은 두 달 반 만에 종료

법이 구부러지면 국민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는다. 법을 휘어서라도 특정 개인을 구하겠다는 이런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 국가의 형사사법기관을 무슨 조폭이나 파렴치범으로 취급하는 이런 국무총리, 이런 집권당 대표, 이런 관제 데모도 본 적이 없다. 국가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이 국가의 중추기관을 부정하다니. 자살하는 개인은 봤어도 자살하는 국가를 우리 국민은 지금 처음으로 경험하는 중이다. 이 때문에 2019년 여름에 시작된 전국민적 항거 운동은 날이 갈수록 수가 불어나고 있다. 문 대통령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조국씨의 말로야 관심의 대상이 아니지만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의 운명만은 국민이 지켜줘야 한다. 전두환 대통령은 6·29 선언으로 본인 임기를 무사히 마쳤다. 야권 분열 덕분에 정권 재창출까지 했다. 문 대통령도 조국씨를 버리는 대국민 항복선언 말고는 다른 길이 없어 보인다.

국민에게 항복하는 것은 대통령의 수치가 아니다. 특정인에게 사로잡혀 국민에게 등을 돌리는 대통령이 수치스러운 것이다. 한국인은 국민에게 항복하는 대통령을 좋아한다. 그런 대통령을 용서하고 다시 밀어주는 특별한 역사와 국민성을 우리는 갖고 있다. 대략 국민을 이기려 하는 정치의 유효기간은 두 달 반이다. 조국씨를 장관 후보자로 지명해 민심을 화나게 한 날이 8월 9일이니 10월 24일이 유효시간이 끝나는 때다. 마침 10월 25일엔 또 한번 광화문에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조국 퇴진’ ‘문재인 하야’를 외치는 철야 집회가 열린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그날이 오기 전에 조국씨를 쫓아내 제대로 수사받고 법의 심판을 기다리게 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거짓 세력이 패퇴하기 시작했다. 집권세력은 자중지란에 빠졌다. 요설과 궤변에 능한 유시민 작가와 정권의 홍위병처럼 굴던 KBS의 기자들이 정면충돌했다. 기자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꾸미는 작가와 다르다. 사실을 다방면에 걸쳐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본능과 기술을 지닌 사람들이다. 거짓말에 생리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인다. 성재호 사회부장은 그 자리에 오르기 전에 KBS의 언론노조위원장을 지냈다. 구정권의 사장을 내쫓는 집회를 5개월간 주도했던 골수 친정부 성향이다. 그럼에도 유시민의 거짓 주장과 유씨한테 부하처럼 구는 회사 사장에게 반기를 들었다.

자중지란은 다른 곳에서도 벌어졌다. 이 정권의 든든한 이념 지원군인 한겨레신문이 촉발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윤중천의 성접대를 받은 듯한 보도는 놀라웠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저토록 사실 확인이 부실한 취재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내보낸 과정이 궁금하고 놀랍다. 한겨레신문과 같은 진영인 김어준씨와 더 나아가 최근 사태의 몸통 격인 조국씨까지 한겨레신문 보도를 부인했다. 사실의 위대한 힘 앞에 새삼 숙연해질 뿐이다. 표면적으로 진영 대결로 여겨졌던 조국 문제의 본질이 거짓과 사실의 싸움이라는 점이 명료하게 드러났다. 세상이 좌우 투쟁이 아니라 거짓과 반거짓 사람들의 대결로 재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희망이 생긴다. 거짓 세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진영은 진실 앞에 분열한다. 문 대통령의 대국민 항복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