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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명절|이영자 <강원도 도계읍 도계리 3의3 한림아파트206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몇 해째 명절이 되면 가슴이 아파 오는 것을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향을 찾거나 온 가족이모여 즐거운 한때를 갖지만 우리 가족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철도공무원이 된 이후로는 명절에 부부가 시댁 또는 친정에 가보질 못했다.
그러기를 몇 해 거듭하다보니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명절과부」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게됐다. 이번 추석에도 놀림받을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얼굴이 달아오른다.
남편의 직업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신정부터 시작되는 대 수송기간은 민속의 날, 하계 피서객, 추석, 연말연시 수송의 순서로 매년 어김없이 계속된다.
평상시에도 격일제 철야근무를 하는 그이는 휴일이라곤 아예 없다. 남들은 손을 잡고 유원지에도 가고 웃고 떠들며 흐뭇한 놀이를 즐기고 휴식을 취할 때 남편을 비롯한 철도공무원들은 비지땀을 흘리며 오히려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 수고와는 달리 봉급쪽지에 적힌 휴일근무수당은 겨우 4천원이 조금 넘는걸 알고 나면 측은함마저 느끼게된다.
금전이 모든 것의 척도는 아니지만 봉사의 대가치고는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남편은 11일에 고향으로 떠나는 내 열차표 만을 사왔다. 명절 때마다 그랬듯이 고향에서 혼자 가게를 보시며 너무 바쁘게 사시는 시어머님께 추석에 못 가는 아들의 몫까지 해 달라는게 그이의 부탁이다.
이번 추석도 남편은 모두가 떠난 텅 빈 아파트에서 라면으로 아침을 때울지 모르겠다.
체념을 하려해도 왠지 가슴이 아파오는 것은 아직 살아갈 날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증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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