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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여권은 ‘조국 구하기’ 접고 ‘벼랑 끝 중산층 구하기’ 전념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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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조국 사태’의 와중에 중산층이 벼랑 끝에 섰다. 문재인 정부가 3년째 밀어붙인 미증유의 정책실험 ‘소득주도 성장’의 직격탄을 맞으면서다. 질 좋은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고, 직장이 있어도 ‘재산세 폭탄’과 사회보험 같은 준조세 부담이 늘면서 중산층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 중산층은 경제학적으로 일관된 정의가 없다. 과거에는 주택과 자가용 소유 여부가 기준이 되기도 했지만 선진국에선 독서와 여가를 즐길 여유가 있어야 중산층이다. 선진국이란 바로 이들 중산층이 탄탄한 국가다. 중산층이 많을수록 국민 삶이 풍요로워지고 빈곤층이 줄어들어 결국 나라가 부강해지기 때문이다.

소득주도 성장 2년 새 중산층 붕괴 #철지난 이념정책 실험 당장 멈추고 #고통 극심 중산층 복원에 올인할 때

이런 이유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정량적 기준까지 제시하며 중산층 추이를 주시한다. 이에 따르면 중산층은 ‘중위소득의 50% 초과 150% 이하’에 분포된 소득계층이다. 중위소득이란 모든 가구를 소득 순으로 세웠을 때 정확히 중앙에 위치하는 가구의 소득이다. 올해 한국의 중위소득은 4인 가구 기준 월 461만원이다. 230만~690만원을 벌어들이면 중산층이라는 얘기다. 이 기준에 따르면 2분기 기준으로 중산층 비중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비중은 ▶2015년 67.9% ▶2016년 66.2% ▶2017년 63.8% ▶2018년 60.2% ▶2019년 58.3%로 하락했다. 70%에 육박했던 이 비중이 50%대로 추락한 것은 비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중산층 감소는 우리 경제가 쪼그라든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미래가 더욱 암울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2%대로 주저앉은 경제성장률은 올해 2% 달성조차 불투명해졌고, 이 추세는 내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중산층의 붕괴는 수출·생산·투자·고용·소득 등 주요 지표에 온통 빨간불이 켜진 한국 경제의 자화상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래도 문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중산층은 신음하고 있다. 세금으로 만든 노인 알바를 빼면 3040 세대가 중산층이 되는 데 필요한 일자리는 말라 가고, 성장률 정체로 가계소득은 제자리걸음이다. 5060 세대도 나을 게 없다. 집값 안정 대책이라지만 급격한 공시지가 현실화 정책에 따라 올해 집 한 채 가진 중산층 상당수도 재산세 폭탄을 맞았다. 재산세가 30% 뛴 집이 서울에만 30만 가구에 육박했다.

복지 포퓰리즘의 청구서도 중산층을 괴롭히고 있다. 복지 확대에 따라 고용보험·건강보험·산재보험 등 4대 사회보험 비용이 급증하면서 내년에는 이들 보험료가 직장인 월급의 9%에 달하게 된다. 한 달 넘는 소득이 손에 쥐어보지도 못하고 준조세로 원천징수된다. 중산층이 버티지 못하고 빈곤층(중위소득 50% 미만)으로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 정부와 여권은 “개혁엔 몸살이 따른다”며 한가롭게 철 지난 이념정책 실험이나 하며 중산층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 정권이 지금 ‘조국 구하기’에 올인하며 지지층을 선동해 검찰의 조국 수사나 겁박하러 다닐 때가 아니다. 우리 경제가 위험하다. 시간도 없다. 중산층이 무너지면 나라 경제가, 모두가 함께 무너진다. 그런 사태를 피하려면 지금이라도 반(反)시장 정책을 접고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어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중산층을 복원해야 한다. 중산층을 짓누르는 사교육비·주거 불안을 해소하는 근본 해법을 정권이 함께 마련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