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라고 하면 떠오르는 어떤 생각을 정립한 대통령이었다. 우리가 그의 생각에 동의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우리를 닮고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 이분에게서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본다.”
마크롱 대통령 "프랑스하면 떠오르는 생각 정립" #사회당 올랑드, 공화당 사르코지 모두 경의 표해 #나치 협력한 국가의 책임 최초로 인정한 대통령 #"프랑스 대통령이라면 시라크처럼…" 30일 국장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대국민 생방송 담화에서 별세한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위로했다. 시라크는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를 상대로 이라크전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국제사회에서 주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정권의 끔찍한 포로수용소로 유대인을 보낸 프랑스의 책임을 최초로 인정한 대통령이었다.
퇴임 후 파리시장 시절의 공금횡령 사건 등으로 유죄 선고를 받는 불명예를 안았고 우파 정치의 거물이었지만, 시라크에 대한 애도에는 좌우 구분이 없었다. 우선 마크롱 대통령은 “그는 자유롭고 위대한 프랑스인이었다"며 “그는 독립적이고 자랑스러운 프랑스를 이끌었으며, 정당화할 수 없는 군사 개입에 반대했던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중도좌파 사회당 소속인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은 “오늘 나는 프랑스 국민이 어떤 신념을 가졌던지 간에 친구를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시라크에게 경의를 표했다. 시라크와 같은 중도보수 공화당 출신인 니콜라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내 인생의 일부가 오늘 사라졌다. 시라크는 프랑스를 보편적 가치에 충실하게 만들었다"고 애도했다.
해외 지도자들의 애도도 잇따랐다. 시라크를 존경한다고 밝혔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거대한 지식과 지능을 바탕으로 현명하게 멀리 내다보는 정치인이었다”고 회고했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유럽은 위대한 정치인을 잃었을 뿐 아니라 나도 좋은 친구를 잃었다"고 아쉬워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뛰어난 파트너이자 친구"라고 그를 추도했다. 존 메이저 전 총리와 보리스 존슨 총리 등 전·현직 영국 총리들도 일제히 시라크의 정치적 능력에 존경심을 표했다.
프랑스 정부는 오는 30일 시라크의 장례를 파리 시내 생 쉴피스 성당에서 국장(國葬)으로 치르기로 했다. 프랑스에서 국장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치르는 게 일반적인데, 지난 4월 대화재 이후 보수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장소를 바꿨다. 파리 에펠탑은 시라크가 세상을 뜬 26일 2시간 일찍 불을 껐다.
BBC는 “시라크를 추모하는 중에 그의 부패 의혹 등을 거론하는 사람은 없다"며 “그는 호감이 가는 인물이자 문화적인 이미지를 갖추고 프랑스 대통령이면 저래야 한다는 기대에 맞게 행동했던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