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로드를 간다|중국 복건생 복주시 대우 냉장고 공장|1년 만에 흑자|합작 "유망 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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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중국의 동남쪽 복건생 복주시에 있는 대우냉장고 공장을 가기 위해 북경 발 중국민항에 몸을 실은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생각보다 간단한 탐승절차를 밟고 올라온 비행기 안은 완행열차 같은 느낌이었다. 1주일에 2∼3번 있는 노선이라 1백50여 좌석은 빈자리 하나 없이 꽉 들어찼다.
머리손질도 제대로 하지 않은 스튜어디스들은 2시간 반 동안의 비행 중에 종이 곽에 든 간단한 음식을 나눠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비행기가 복주 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그들 중 몇 명은 뒷자리에서 아직 엎드려 자고 있었다. 서비스라는 것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서있지 않은 것 같았다.
비행기가 열차 같은 느낌을 주었다면 복주 공항은 차라리 시골의 간이역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구내매점에 비누·치약·파리약 등이 진열돼 있어 여느 구멍 가게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빡빡한 일정 탓에 현지가이드를 만나 숙소를 정하곤 곧장 대우 측에 전화연락부터 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월요일인데도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었다.
다음날 안 일이지만 전날은 느닷없는 정전으로 공장이 일요일에 이어 연 이틀 쉬었던 것이다. 전기사정이 그만큼 좋지 않았다.
복건생 복주시 공업로. 5백여개 기업이 밀집돼 있는 서울의 구로공단 같은 곳인데 대우가 이곳에서 냉장고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한 것은 84년6월13일이다.
당초 대우가 중국진출의 첫무대로 복주를 택한 것은 84년 냉장고 3만대를 복건생에 처음 수출한 데서부터 연유한다.

<일 기업에서 견제>
그 후 복건생 정부와 합작진출을 수 차례 논의했으나 마지막 단계에서 일이 자꾸 틀어지는 것이었다.
양국 간 국교가 없다는 점과 이미 복건생과 많은 교류를 가지고 있던 일본기업 (특히 히타치)들이 한국기업의 진출에 적지 않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끈질기게 복주시 관계자들을 설득한 결과 87년5월 합작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총 1천2백57만달러의 자본금 중 대자의 홍콩현지법인인 창범 유한공사가 48% (6백7만달러)를 대고 홍콩회사인 화용과 복주시 산업공사가 각각 28%, 24%씩 투자, 냉장고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합작기간은 20년에 대우가 실질적인 경영을 맡으며 이익금은 3사가 투자비율에 따라 분배하기로 했다.
그 해 10월 대지 1만6백 평에 건평 2천3백60평인 공장건설에 착공했다. 원래 이곳은 복주시 제2라디오 공장이었는데 라디오사업이 신통치 않자 복주시가 대우 측과 냉장고 공장을 짓게된 것이다. 1백60ℓ짜리를 연간 30만대 생산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다.
올해 생산목표는 8만대로 잡아 놓고 이중 1만대정도만 동남아로 수출할 예정이며 나머지 7만대는 모두 내수용이다.
지난해는 1백대를 첫 수출했는데 대당 수출가격은 백60달러 (약11원선) 안팎에서 결정됐다.
중국 내 시판 가격이 보통 2천4백원 (약24만원)이므로 수출가격은 내수 가의 절반에도 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값만 따져 보면 애써 수출을 할 필요가 없지만 정책적으로 수출물량에 비례해서 수입허가증이 발급되기 때문에 주요부품을 서울에서 수입하는 현 상황에선 일정량의 수출은 불가피하다. 또 수입대금 지불을 위해서도 수출을 통한 달러확보는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역시 영업판도는 내수에서 판가름난다. 복주TV에 황후(영어로는 퀸·대우냉장고의 중국 내 브랜드명) 라는 냉장고 광고가 자주 나가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지난 6월 하순부터는 우리나라의 KBS에 해당하는 중국 중앙TV에도 대우냉장고 광고가 나가고 있다.
대우냉장고는 생산물량의 약4O%가 복건생 내에서 팔리고 나머지 물량은 중국최대의 상공업도시인 상해를 비롯, 호남생·강소생 등 전국 각지로 공급된다.
대우냉장고가 같은 크기의 중국제보다 값이 약20∼25%비싸긴 하지만 중국 소비자들의 반응은 좋다고 한다.
대우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설비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국산기계도 많지만 냉장고의 단열처리를 위한 우레탄 발포기라든가 도장용 기기 등 주요설비는 서독·일본·이탈리아 제품을 주로 도입했던 것이다.
번듯한 공장건물과 함께 기계설비 또한 선진기술 국의 제품을 갖춘 곳이라 중앙정부나 복건생 관계자 또는 사회단체 등이 산업시찰을 오면 빠뜨리지 않고 들르는 곳이 바로 복주전빙상 유한공사다.
때로는 줄을 잇는 방문객으로 인해 작업에 지장이 있을 때도 있지만 넓게 보면 그것이 기업이미지를 심는데 가장 값싸고 효과적인 광고라는 점에서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공장의 현지종업원들은 현재 5백명에 달한다. 3분의2가 남자인데 이중에는 연변 등지에 고향을 둔 우리교포(조선족)들도 6명이 있다. 현지 종업원들과 대우 직원들간의 의사소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안병두 대우전자부장이 현지 공장장으로서 경영전반을 책임지고 있으며 그 밑에 기술 및 관리파트의 주요부장을 맡고있는 5명의 대우직원이 더 있다.

<우리 교포도 채용>
근무시간은 아침8시반부터 저녁5시30분까지다. 점심시간 1시간을 빼고 정확히 8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가끔씩 작업량이 밀릴 경우에는 잔업을 할 때도 있다.
이때는 정상근무중의 임금보다 50%를 더 주도록 돼 있다. 근로자들의 한달 월급은 2백70원 정도가 된다. 회사측이 종업원 복지기금 등의 명목으로 시나 생정부에 내는 것까지 합치면 1인당 인건비 지출규모는 한 달에 4백원정도가 된다.
우리 돈 약4만원에 불과한 것이니 국내임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싼 것이다. 제조원가에 대한 임금 비중이 1·5%정도로서 국내의 10%수준에 비하면 월등히 낮다.
임금이 싼 것만은 중국 어느 곳을 둘러봐도 눈에 두드러지는 일이지만 역시 현지에서 기업을 꾸려 나가는데는 어려운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지적되는 것이 중국인들의 근무태도다.
안병두 공장장은 공장을 지을 때 있었던 한 사례를 소개했다.
4명을 1개조로 해서 땅파는 작업을 시켰는데 한 명이 얼마큼 땅을 팔지 선을 긋는 동안 나머지 3명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담배만 피우는 것이었다. 선 긋는 작업이 끝나자 다음 한사람이 일어나 땅을 파고 그 일이 끝난 후 세 번째 사람이 흙을 주워 담고 그리고 마지막 사람이 퍼담은 흙을 운반하는 것이었다.

<가끔 잔업하기도>
네 사람이 한꺼번에 달라붙어 일을 해도 시원찮은 판인데 그들은 그 같은 식으로 일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느슨한 작업태도는 당장 냉장고 조립라인에서도 나타났다. 그들의 작업습관을 그대로 인정했다간 소정의 생산목표는 달성하기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능력급제다. 기본급은 2백원으로 정해놓고 보너스 75원은 능력에 따라 지급한다는 회사방침을 발표했다. 보너스 75원은 근로자 개인이 속한 팀의 생산성 정도에 따라 45원을 주고 나머지 30원은 개인의 생산성 및 근무태도를 보아 결정하는 것이다.
일을 않는 사람에겐 최하 2백원이 지급되는 반면 열심히 일한 사람에겐 일을 안한 사람의 보너스까지 합쳐진 최고 3백50원이 지급되는 시스템이다.
종업원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하면 남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실제로 능력급제도의 도입이후 근로자들의 작업도 급격히 향상됐다.
종업원들을 관리하는 것은 그래도 쉬운 일이다. 사실 세관이나 시 당국 등 대외관계를 원만히 유지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도 골치 아픈 문제다.
그러나 그 같은 일은 하루아침에 배워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안 공장장은 조선족 비서를 데리고 대외관계를 원만히 쌓는데도 적잖은 신경을 쓴다.

<충분한 승산 있다>
또 다른 애로사항은 판매조직이다. 대리점이 없기 때문에 생산된 냉장고는 주요도시의 백화점에 납품을 하고 판매는 백화점 측에서 하는 것으로 돼있다.
황후냉장고의 소비자 가격이 2천4백원 정도지만 백화점 납품가격은 2천1백원이다. 백화점 측이 한대 팔 때마다 3백원의 이문을 챙기는 것이다.
판 물건에 이상이 있을 경우에는 백화점 측에서 아프터서비스도 해 주지만 그에 따른 비용은 모두 메이커가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
골치 아픈 문제 중에는 환차손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모든 외국기업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인데 화폐의 이중구조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즉 달러를 살 때는 달러당 7원(인민폐)을 주어야 하고, 반대로 달러를 팔 때는 3·7원(외국인 태환권) 밖에 못 받는다. 달러를 샀다가 팔 때는 달러당 3·3원의 환차손을 입는 것이다.
이와 함께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변화다. 정책의 방향을 제대로 예견하지 못하면 고전하기 십상이다. 인플레가 뚜렷해지자 작년9월 중국정부가 긴축정책을 대폭 강화한 것이 올 들어 내수판매에 적잖은 주름을 주고 있는 것이 그 같은 예다.
불확실한 변수는 도처에 있다. 그러나 공장가동 1년을 넘긴 이 시점에서 대우 측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
지난81년 설립된 복주히타치TV가 5년 만에 혹자전환이 가능했지만 대우는 1년 만에 그것도 큰 폭의 흑자가 예상된다고 한다. 창립 첫해인 지난해 손실 폭이 20만원에 그쳤으며 올해는 7백만원 (우리 돈 약7억원) 대의 큰 수익이 기대된다는 것이다. 글·사진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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