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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임명으로 사법개혁 안갯속으로…與 “반대 명분 없어”, 野 “조국이 걸림돌”

중앙일보

입력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 등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조국 신임 장관(왼쪽)이 문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 등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조국 신임 장관(왼쪽)이 문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조국 법무부 장관은 지난 9일 임명식이 끝난 뒤 문재인 대통령과 환담에서 “사법개혁 과제들을 신속하고 확실하게 실시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법개혁 핵심 과제들은 이미 법무부가 아닌 국회 몫이 된 상태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은 지난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후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이 야당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국회의 사법개혁 논의는 교착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사법개혁 과제들을 논의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의 바른미래당 간사인 오신환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이나 정부가 조 장관이 검찰개혁의 적임자라고 말하는데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 국회로 이미 법안은 넘어와 있다. 오히려 (조 장관 임명이) 걸림돌만 된다”고 말했다.

여야 4당이 지난 4월 29일 선거법 개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법안 등에 대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시도하기로 한 가운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선거제 패스트트랙 지정 저지 농성을 벌이는 자유한국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바닥에 누워있다. 김경록 기자

여야 4당이 지난 4월 29일 선거법 개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법안 등에 대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시도하기로 한 가운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선거제 패스트트랙 지정 저지 농성을 벌이는 자유한국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바닥에 누워있다. 김경록 기자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더불어민주당 중심으로 만들어진 패스트트랙 법안에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사위 한국당 간사인 김도읍 의원은 “법사위 차원에서 기존 법안대로 검·경 수사권 조정이 되는 것에 결사 저지할 것”이라며 “우리 당의 수정안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당은 기존에 검·경 수사권 조정에는 크게 반대하지 않았는데, 조 장관 임명으로 반대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한국당은 공수처 설치에는 이미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국회 입법 과정에서 관련 부처 장관의 역할 중 하나가 야당을 설득하는 일이다. 하지만 조 장관에게 이런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란 전망도 많다. 김 의원은 “조 장관이 야당 의원들로부터 신뢰를 못 받고 있기 때문에 조 장관이 사법개혁에 나서면 정부 의견에 야당이 더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조 장관이 법무부 차원에서 입법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사법개혁 부수 과제들을 실행에 옮길 경우 여야 교착 상황은 가속할 수 있다. 법사위 여당 간사인 송기헌 의원은 “조 장관이 인사 개편을 통해 검찰 내 특수부를 축소하는 등의 개혁안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의사실 공표 관련 징계 절차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반면 김 의원은 “그런 조치를 하게 되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구내식당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검찰총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구내식당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여당은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사법개혁 논의를 보이콧(거부 운동)할 명분이 없어 결국 논의에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송기헌 의원은 “지금이야 조 장관 임명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정국이 안정되고 나면 야당과 사법개혁 수정안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법사위 소속 김종민 민주당 의원도 “조 장관 임명과 사법개혁은 별개 문제”라며 “이 시점에서 사법개혁을 안 하면 국민이 가만히 있겠느냐. 야당이 거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법개혁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점도 민주당이 현재 상황을 유리하게 보는 이유다. 법사위에 현재 머물러 있는 사법개혁 법안은 국회사무처 판단에 따라 다음 달 26일 또는 늦어도 내년 1월 말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민주당은 본회의 표결 전에 야당과 협의를 통해 수정안을 만드는 방안이 최선이라고 보고 있지만, 민주당 중심으로 새로운 수정안을 만들어 상정하거나 기존 안을 그대로 상정하는 방안도 배제하고 있진 않고 있다. 그럴 경우 본회의 표결은 민주당(129석) 대 한국당+바른미래당(138석)의 대결이 되는데, 어느 쪽도 과반(149석)이 안 된다. 결국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정치연대 등의 입장에 따라 표결 결과가 결정될 터인데, 현재의 연대 구도만 보면 민주당에게 썩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정치 일정 자체가 부담일 수있다. 정의당이 중시하는 선거법 처리가 지지부진할 경우, 민주당·정의당 간 '협조'가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 정기국회 후엔 급속하게 총선 국면으로 재편되면서 '합종연횡의 정치 계절'이 온다는 점도 변수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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