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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보따리 맘에 안들었나. 김정은 왕이 국무위원 안만나

중앙일보

입력

북한을 방문했던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4일 이수용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만났다고 북한 관영 매체들이 5일 전했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이날 “당 부위원장인 이수용이 4일 의례방문하여온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왕의(왕이)를 만나 친선적인 분위기속에서 담화를 했다”며 “왕의 동지는 석상에서 김정은동지께 습근평(시진핑) 동지가 보내는 따뜻한 인사와 축원을 전하여 드릴 것을 부탁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들은 “이설주녀사께 팽려원녀사가 보내는 인사를 전하여드릴것을 부탁하였다”고도 했지만, 김 위원장이 왕 국무위원을 만났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지난해 5월 방북한 왕이 중국 국무원 국무위원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있다. [사진 중국 외교부]

지난해 5월 방북한 왕이 중국 국무원 국무위원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있다. [사진 중국 외교부]

정부 당국자는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 위원장의 동정 보도를 가장 우선해 보도한다”며 “5일 보도를 보면 왕이 국무위원의 방북 소식이 뒷부분으로 밀려나 있고, 보도 내용을 봐도 김 위원장을 만나지는 않은 듯하다”고 설명했다. 왕 국무위원이 이 부위원장에게 “김 위원장에게 인사를 전해달라”고 한 건 김 위원장을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왕이 중국 국무위원이 지난 2일부터 2박 3일간 방북 일정 마치고 4일 귀국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왕이 중국 국무위원이 지난 2일부터 2박 3일간 방북 일정 마치고 4일 귀국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실제 이날 노동신문 홈페이지는 ‘주요기사’에서 나이지리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꽃다발을 보낸 소식을 주요기사 첫번째 자리에 편집한 반면, 왕이 국무위원의 방북 소식은 16번째로 다뤘다. 김 위원장의 동정을 전하는 ‘혁명활동 소식’ 코너에도 관련 내용은 담지 않았다. 따라서 지난 2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방북한 왕 국무위원이 이용호 외무상(2일), 이수용 부위원장(4일)과 만나 현안을 협의했지만, 김 위원장과 만나지 않은 채 귀국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다.

왕이 중국 국무위원 등 중국 대표단(왼쪽)이 지난 2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이용호 북한 외무상 등과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왕이 중국 국무위원 등 중국 대표단(왼쪽)이 지난 2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이용호 북한 외무상 등과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정부 당국자는 “이번 왕이 국무위원의 방중은 다음달 1일과 6일 중국 국가 건립, 북ㆍ중 수교 70주년을 계기로 양측의 고위 인사 교류를 위한 실무협의 성격이 짙다”며 “실무 차원의 교류여서 김 위원장이 만날 성격이 아니었던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양측은 지난 2일 이용호 외무상과 왕 국무위원간 북ㆍ중 외무장관회담을 하고 “70년간 중ㆍ조 쌍방은 국제 상황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시종 비바람을 맞으며 같은 배를 탔다”며 “외교 관계 수립 70주년을 기념해 교류ㆍ협력을 촉진하고, 국제무대에서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최근 밀착하고 있는 양국의 관계를 고려하면 왕 국무위원의 김 위원장 면담 불발은 다소 의외라는 평가다. 왕 국무위원은 지난해 5월에도 방북했는데, 당시에는 김 위원장과 면담했고 직후 김 위원장이 중국 다롄(大連)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4월 방북했던 쑹타오(宋?)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도 김 위원장을 만났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초 방중한 이수용 부위원장은 시 주석을 만나고, 다음날(8일) 중국 인민일보가 1면에 관련 소식을 게재하는 등 지난해부터 양측의 고위 인사가 방중, 또는 방북할 경우 최고지도자와 접견하는 게 하나의 ‘관례’로 자리매김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나서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희옥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은 “왕 국무위원 일행이 2박 3일로 방북 일정을 잡은 건 김 위원장과의 면담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며 “첫날(2일)이용호 외무상과의 회담에서 뭔가 불만이 있었기 때문에 김 위원장이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통상 대표단이 방북할 경우 담당 간부가 나가 ‘선물 보따리’를 확인하고, 김 위원장이 만날 것인지를 판단하는데 당일 간을 보는 과정에서 대북제재 해제나 대대적인 대북 지원 등과 관련해 만족스럽지 답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면담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상황관리 차원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5월 다롄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변했다”며 북ㆍ중 밀착에 견제구를 날린 적이 있다. 전현준 국민대 겸임교수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협상을 앞두고 북한과 미국이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과 ‘거래’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보이면서도 미국을 자극하지 않는 눈치보기 차원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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