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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시진핑, '상대가 더 급하다' 무역협상 버티기 전략

중앙일보

입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연합뉴스]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굴복해 약해 보이고 양보한다면, 파괴적인 역사적 실수를 범하게 될 것이다."

블룸버그 "9월 미·중 협상 일정 못 잡아" #"중국의 협상 재개 조건은 '관세 철폐'" #시진핑 '14개월 뒤 선거, 트럼프 급할 것' #트럼프 '경제 둔화 시진핑이 더 급할 것'

지난 2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중미 무역 마찰에 대한 합리적 대처'라는 논평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중국 정부의 '입'으로 불리는 인민일보가 미국에 양보하는 것은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일이라며 강경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지난달 29일 중국 무역협상 주무부처인 상무부 가오펑 대변인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미·중) 양측이 협상을 이어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며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한 것과 대조된다.

9월 미·중 무역 협상이 안개 속에 있다. 양국 관료들이 9월 무역 협상 일정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일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양측이 협상 일정을 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다시 만나는 기본 조건에도 아직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주에 있었던 대화에서 중국은 1일 발효된 15% 추가 관세를 미뤄달라고 미국에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 요청을 거절했고, 이후 협상 날짜를 잡는 데 진전이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다음 협상에서 일정한 논의 범위를 설정하자고 제안했으나, 이는 중국이 거절했다.

9월 협상 진행이 물 건너갔다고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 "9월 협상은 진행된다. 그건 취소되지 않았다"고 한 발언의 신뢰도는 약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말 프랑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중국 측이 우리 측에 전화를 걸어와 협상을 제안했으며, 중국이 무역 합의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FP=연합뉴스]

지난 6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FP=연합뉴스]

하지만 중국 내부에서는 당장 미·중이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가능성이 적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스인홍 런민대 교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인터뷰에서 "중국은 세 가지 원칙이 충족돼야 협상에 나올 것"이라며 "미국이 관세를 거둬들이고, 협상 문구가 공정해야 하며, 미국산 상품을 수입할 때 중국 국내 사정에 따라 결정할 것"을 들었다.

첫 번째 조건인 관세 철폐를 지난주 중국 관료들이 요구했는데, 미국이 거절하면서 협상 일정 조율에 실패했다는 게 블룸버그 기사의 골자다.

미국은 관세를 철폐하더라도 일부를 미국 대선이 끝날 때까지 남겨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이 합의 내용을 이행하도록 강제하는 장치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는 중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라고 스 교수는 전했다.

스 교수는 "지난 5월 무역 협상이 깨진 뒤 중국은 미국에 성의를 보인 것인데, 트럼프는 중국이 합의를 간절히 바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오해했다"고 말했다.

무역 협상에 관한 논의가 계속 어긋나는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서로 상대가 더 급하다고 생각하며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경제 성장세가 최근 둔화한 데다 미국이 퍼붓는 관세 폭탄을 중국이 견디기 어려울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지난 1일에 이어 오는 12월 15일까지 3000억 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상품의 97%가 관세 부과 대상이 된다. 중국의 수출길이 큰 폭으로 좁아지는 셈이다.

반면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14개월 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고, 재선하기 위해서는 미국 경제 호황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최근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와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이 고개를 들면서 트럼프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스 교수는 "미국 경기 침체 조짐이 보이면 재선이 급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무역 협상을 제안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전년대비)이 둔화하고 경기가 후퇴할 조짐을 보이면 트럼프로서는 중국과의 무역협상 타결을 경기 부양 카드로 쓸 수 있다는 관측이다.

객관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보다 조금 더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일 양국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하면 트럼프 행정부가 불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재선 열쇠를 쥐고 있는 중서부 농민들 사이에서 중국의 관세부과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고, 이젠 무역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여론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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