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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하라, 특권 누리는 20% 중상류층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51호 21면

책 속으로

20 VS 80의 사회

20 VS 80의 사회

20 VS 80의 사회
리처드 리브스 지음
김승진 옮김
민음사

고소득·전문직 미국의 ‘조국’들 #대입·취업 특혜 등 기득권 대물림 #의지·돈 있으면 불평등 해소 가능 #영국 출신 미국인 저자 쓴소리

소득 기준 상위 20%는 분배 격차, 사회 양극화 정도를 따질 때 자주 사용된다. 최상위 20%의 평균소득을 최하위 20%의 평균소득으로 나눠 분배 정도를 표현하는 ‘소득 5분위 배율’ 같은 단위 말이다. 이런 통계 도구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각종 사회경제적 달콤함을 부족함 없이 누리는 상위 20%와 그렇지 못한 나머지 80% 사이의 격차가 갈수록 커진다는 데 주목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공교로운 책이다. 영국에서 잘 나가다 불쑥 미국으로 이주해 국적을 바꾼 저자가 당연하게도 영국적 심성으로 미국 사회를 들여다본 결과물이긴 하지만 말이다. 왜냐고? 법무부 장관 조국 후보자 사태가 결국 그러려니 심증만 갖고 있던 우리 사회 엘리트 계층의 특권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았나. 그들만의 학맥, 인맥에서 출발한 배타적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해 보통 사람들은 그런 게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신통한 방법들로 자녀 스펙을 쌓고 단위가 다른 부를 축적하려 한 정황이 역력하니 말이다.

저자 리처드 리브스는 옥스퍼드를 졸업했다. 영국 부총리 밑에서 일하기도 했다. 지금은 미국의 진보적 싱크 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경제 분야 선임연구원이다. 책에서 미국의 상위 20%를 중상류층으로 분류한다. 단순히 은행 잔고가 두둑하고 통장에 여섯 자리 연봉이 찍힌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학력, 가족구성, 건강과 수명, 심지어 공동체 활동 같은 분야에서도 이들을 아랫도리 80%와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직업은 대개 전문직이다. PhD, Dr, MD 같은 알파벳 직함이 이름에 붙는 사람들은 당연히 포함된다. 학자, 기술자, 경영자, 관료, 심지어 기자까지 집어넣었다. 말하자면 미국의 ‘조국’들인 거다.

미국 최고 명문대 중 하나인 하버드대 전경. 입시에서 동문 자녀를 우대한다. [AP=연합뉴스]

미국 최고 명문대 중 하나인 하버드대 전경. 입시에서 동문 자녀를 우대한다. [AP=연합뉴스]

가만. 불평등 혁파를 부르짖기 위해 중상류 20%를 문제 삼는 건 전선을 너무 넓게 잡은 거 아닌가? 2011년 미국 월가를 휩쓴 ‘Occupy(점령하라)’ 시위는 상위 1%를 문제 삼았었다. 저자는 세계적인 경제사 학자로 떠오른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건드린 계층도 상위 1%였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1979~2013년 사이 미국의 상위 1%의 소득 총합이 증가한 것만큼이나, 같은 기간 중상류층의 나머지 19%의 소득 총합도, 아래 80%는 흉내 내지 못할 만큼 증가했다는 점을 결정적으로 제시한다. 그래서 20%를 따로 묶어야 한다는 것.

이들은 출발선부터 다르다. 양육 환경이 천양지차로 달라서다. 불평등을 다음 세대로 세습한다. 어떻게? 한국의 조국들과 겹치며 특히 민감한 대목일 텐데 ‘opportunity hoarding’, ‘기회 사재기’라고 번역한 3종 세트가 특권 세습에 톡톡한 역할을 한다. 부동산·대입·취업 인턴 분야 3종이다. 미국적 현실이긴 하지만 명문대들이 입시에서 동문 자녀를 우대하고, 미국도 별수 없이 인맥과 연줄이 판치는 도덕적 해이 상태의 취업 인턴 시장이 특히 문제적이라는 것이다.

공정한 사회는 결국 자녀의 사회적·계급적 지위가 어떻게 될지, 자녀가 자연적으로 갖게 될 능력, 지능, 강점이 어느 정도일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경쟁이 이뤄지는 사회 아니겠냐고 역설한다.

저자는 해법도 제시한다. 일곱 가지나. 3종 세트 대책도 들어 있다. 읽어보시라. 그보다 핵심은 20%가 반성해야 한다는 거다. 의지와 자금만 있으면 불평등을 개선할 방법은 많다는 것. 우리랑 동떨어진 얘긴가. 당신과 나, 우리 주변의 조국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 아닌가.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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