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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장선 청와대, 쫓아가는 외교부…지소미아 국면도 청전외후(靑前外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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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한ㆍ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결정 국면에서 메시지 발신을 주도하는 쪽은 청와대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 전에는 일본을 상대로, 이후에는 미국도 상대로다. 정작 대미ㆍ대일외교를 전담하는 외교부는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 조세영 1차관이 28일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를 불러 실망 표명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던 것을 제외하면 외교부는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28일 오후 청와대 브리핑실에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시행에 대한 입장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28일 오후 청와대 브리핑실에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시행에 대한 입장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지소미아 재검토 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지난달 19일이었다. 한국의 강제징용 제3국 중재 거부에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상은 남관표 주한 일본 대사를 불러 거칠게 항의했다. 그러자 한국 쪽에서 마이크를 잡은 건 고노 외상의 카운터파트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아니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었다. 김 차장은 “일본은 부당한 수출 규제 조치를 철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소미아와 관련해 “모든 옵션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메시지 발신 주도

이달 2일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 국가(안보우호국)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렸을 때도 김 차장이 나서 일본을 비판했고, 뒤이어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기자들을 만나 “일본이 우리에게 신뢰가 없는데 어떻게 민감한 군사정보 공유를 우리와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냐”고 말했다.
22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발표한 것은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었다. 미국이 이에 대해 ‘강한 우려와 실망’을 표하자 다음날인 23일엔 김 차장이 다시 나섰다. 28일 일본이 화이트 국가 조치를 실행에 옮기자 정부를 대표해 이를 비판한 것도 김 차장이었다.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이 22일 오후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정부는 한일 간 '군사비밀정보의 보호에 관한 협정'(GSOMIA)을 종료하기로 결정했으며 협정의 근거에 따라 연장 통보시한 내에 외교 경로를 통하여 일본 정부에 이를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힌 뒤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이 22일 오후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정부는 한일 간 '군사비밀정보의 보호에 관한 협정'(GSOMIA)을 종료하기로 결정했으며 협정의 근거에 따라 연장 통보시한 내에 외교 경로를 통하여 일본 정부에 이를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힌 뒤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경화 장관, 주요 발표 때마다 외국에

청와대가 대응을 주도하는 동안 강 장관은 한국에 없을 때도 잦았다. 2일 화이트 국가 결정 때는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태국 방콕에 있었고, 22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릴 때는 한ㆍ일ㆍ중 외교장관회의 뒤 중국 베이징에서 귀국하는 비행기 안이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 고노 외상과 직접 만나 협의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위한 출장이었는데도 주요 메시지는 청와대에서 나오면서 강 장관은 외곽에 머문 듯한 인상을 줬다.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뒤 미 행정부에서 가장 먼저 “실망”이라는 입장을 낸 각료는 폼페이오 장관인 것과 비교됐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세종-서울 영상 '일본 수출규제 대응 확대 관계장관회의 겸 제7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세종-서울 영상 '일본 수출규제 대응 확대 관계장관회의 겸 제7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 정부의 ‘외교부 패싱’ 양상

이를 두고 ‘외교부 패싱’이 또 나타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 정부 들어 ‘외교부가 안 보인다’는 새로운 명제가 아니다. 대미, 대일 외교의 전략을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주도하면서 외교부는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양상이 노출되곤 했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 직후에 강경화 장관이 이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는 논란이 나왔던 것도 그 사례다. 미 행정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외교부의 카운터파트인 미 국무부조차도 뭔가 일이 제대로 되게 하려면 외교부가 아니라 청와대 국가안보실에 연락을 취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결정적 순간 대비한 역할 배분?

일각에선 의도적인 ‘그림자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미 업무를 오래 다룬 전직 외교관은 “시간이 지나고 관계가 풀릴 분위기가 형성됐을 때 일본과 미국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것은 결국 외교부”라며 “지금처럼 갈등이 격화할 때는 잠시 뒤로 빠져 있어야 적절한 시점이 왔을 때 외교부가 전면에 나서 문제를 풀 가능성이 커진다”고 주장했다. 실제 폼페이오 장관도 23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실망을 표명하면서도 “강 장관이 어제 (고노) 일본 외교장관과 만나 이것을 되돌리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국무부 고위 당국자도 27일 “미국은 양측이 실무 레벨에서 대화를 이어가는 것에 힘을 얻고 있다. 양국에는 관계 개선을 열망하는 이들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가나스기 겐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29일 오후 한일 국장급 협의를 위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뉴스1]

가나스기 겐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29일 오후 한일 국장급 협의를 위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뉴스1]

서울서 한ㆍ일 국장급 협의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29일 방한해 김정한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국장급 협의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양측 간 입장 차이가 여전히 크기 때문에 실질적 진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외교당국 간 소통이 계속돼야 한다는 데는 공감했다. 국장급에서는 9월에 한번 더 만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주요 국면서 김현종 2차장 전면 등장 #강경화 장관은 결정 때 나라 바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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