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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적” “위대한 지도자" 트럼프가 오락가락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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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프랑스 남서부 비아리츠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기자회견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비아리츠 AP=연합뉴스]

26일 프랑스 남서부 비아리츠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기자회견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비아리츠 AP=연합뉴스]

# 지난 2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보복 관세율을 10%에서 15%로 올리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적”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양국 간 무역 갈등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을 시사했다.

관세 올리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비난 #3일 뒤 무역전쟁 후회, 시 주석 추켜세워 #문제는 트럼프 재선 행보 열쇠 쥔 '경제' #당선 후 처음으로 경제 비관 응답 우세 #경기 침체론 대두에 '경제 불안감' 커져 #침체기 재선된 대통령은 트루먼이 유일

사흘 뒤인 26일 프랑스 남서부 비아리츠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 회의장. 한 기자가 최근 무역전쟁 수위를 높인 것을 후회하느냐는 취지로 질문했다. 트럼프는 뜻밖에도 “그렇다. 나는 모든 일을 다시 생각(second thoughts)해 본다”고 말했다. 시진핑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미ㆍ중 무역전쟁의 전개 양상을 후회한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는 이 발언은 세계 주요 언론 머리기사로 올려졌다. 지난해 중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한 이후 이 같은 발언은 처음이었고, 불과 사흘 전 한 말을 정면으로 뒤집었기 때문이다.

몇 시간 뒤 스테파니 그리셤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대통령의 답변이 잘못 해석되고 있다. 관세를 더 높이지 않은 걸 후회(regret)한다는 의미”라고 정정했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기자들에게 트럼프가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26일 트럼프 대통령은 G7 정상 회의장에서 불쑥 “일요일 저녁에 류허 중국 부총리가 우리 협상단 고위층에 전화해 협상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협상 재개 기대감에 뉴욕 증시는 1% 이상 올랐다.

깜짝 놀란 쪽은 중국이었다. 트럼프 발언 직후 중국 외교부는 “통화한 적이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미국 협상단 대표인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통화”라는 단어 대신 “소통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미국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 발언의 사실 여부를 의심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겅솽 대변인이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 고위층이 미국으로 전화를 건 적이 없다"고 말했다.[베이징 UPI=연합뉴스]

중국 외교부 겅솽 대변인이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 고위층이 미국으로 전화를 건 적이 없다"고 말했다.[베이징 UPI=연합뉴스]

최근 주요 사안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스스로 한 말을 정면으로 뒤집거나 사실 여부가 불확실한 말을 공개 석상에서 쏟아낸다. 평소에도 그런 모습을 자주 보였지만 최근 트럼프의 오락가락 행보는 더욱 잦아졌다. 이유가 뭘까.

내년 재선 성공을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미국 경제 호황이다. 실업률은 3%대로 1969년 이후 5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고, 규제 완화와 세금 감면에 힘입어 3% 가까운 성장률(지난해 2.9%)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최근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대중 무역전쟁이 확전 양상을 보이면서 미국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한층 커지고 있다. 애플ㆍ나이키 등 중국 의존도가 높은 기업은 주가가 맥을 못 추고 있다. 애플 주가는 지난 23일 하루에 4.6% 급락했다. 제너럴모터스(GM)ㆍ포드처럼 올해 경영 실적 전망치를 낮추는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기 침체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자 지지층 이탈을 막고 무역전쟁 해소 신호를 시장에 주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G7에서 유화적 제스처를 취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경제는 트럼프 재선의 열쇠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이 최근 떨어지고 있는데, 그나마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 분야가 경제다. CNN이 8월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40%, 부정 평가는 54%로 나타났다.

긍정평가는 지난 6월(43%)보다 떨어졌고, 부정 평가는 6월(54%)보다 늘었다. APㆍ폭스뉴스 등 다른 언론사 조사도 비슷하다. 항목별로는 경제 분야에 대한 긍정평가가 50%로 가장 높다. 외교(40%), 이민(37%), 인종(32%), 총기 정책(36%) 분야는 긍정평가가 절반에도 못 미친다.

28일 발표된 최신 여론조사에서는 경제가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응답(37%)이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응답(31%)보다 많았다. 이 같은 결과는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처음이라고 폭스뉴스가 전했다.

26일 프랑스 남서부 비아리츠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기자회견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비아리츠 AP=연합뉴스]

26일 프랑스 남서부 비아리츠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기자회견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비아리츠 AP=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경제에 대한 평가마저 흔들리면 트럼프 재선 운동은 타격을 입기 때문에 실체와 사실 여부가 불분명한 언사를 쏟아내는 것으로 미국 언론은 보고 있다.

CNBC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강한 경제를 발판으로 재선에 도전하고 있으나 최근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면서 “아직 침체를 말하기는 이르지만, 침체가 온다면 재선 행보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CNBC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기 침체기에 재선에 도전한 대통령은 해리 트루먼과 지미 카터 두 명뿐인데, 그 중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유일하게 재선에 성공했다. 그만큼 경제 문제는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에게 긴박한 의제라고 할 수 있다.

미ㆍ중 무역전쟁에 대한 입장을 수시로 바꾸고,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미국 경제를 망치고 있다고 공격하는 것은 모두 ‘경제에 대한 불안감(economic anxiety)’의 표현이라고 시사 주간지 애틀랜틱은 분석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오락가락하는 트럼프의 발언이 무역 합의를 방해할 수도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관료를 인용해 “내년 미국 대선 이전에 무역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부 당국자는 거의 없다”면서 “트럼프가 언제든지 깰 수 있는 합의서에 서명하라고 시 주석에게 조언하는 건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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