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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차관, 해리스 美대사 불러 "반복적 실망 표명 자제해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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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과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일본 수출규제 대응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가까이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과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일본 수출규제 대응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가까이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한ㆍ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미국이 ‘강한 우려와 실망’을 여러 차례 밝힌 데 대해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에게 “공개적이고 반복적인 실망 표시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정부 소식통이 28일 전했다.

"한·미동맹에 영향 주려는 것 아냐"

소식통에 따르면 조 차관은 이날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해리스 대사와 면담하며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일본이 먼저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한ㆍ일 관계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지 한ㆍ미 동맹이나 한ㆍ미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라는 정부의 기존 입장을 다시 설명했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측에서 실망감을 표현하는, 공개적이고 반복적인 메시지가 나오는 것은 오히려 한ㆍ미 동맹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미 미국의 입장이 우리 정부에 충분히 전달됐으니 그런 식의 공개적 메시지 발신은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지난 23일 미 국무부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미국의 안보이익과 동맹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한 입장 표명인 셈이다.

"실망 표시 더 하면 영향 우려" 

소식통은 “조 차관은 해리스 대사에게 ‘미국이 오랫동안 기대했던 대로 한국이 스스로 더 강한 국방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하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진정한 의지’라는 점을 힘줘 설명했다”며 “조 차관이 ‘미국 측이 실망이라는 공개적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했으니 이제는 조금 자제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진정한 의지를 북돋워 줄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영향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31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대사관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31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대사관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국무부가 27일(현지시간) 처음으로 독도 방어 훈련에 대해 “비생산적”이라는 공개 입장을 낸 데 대해서도 조 차관은 정부의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소식통은 “독도 방어 훈련은 우리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 실시하는 연례적인 훈련인데 미국이 이례적 입장을 표명한 것에 대해 조 차관은 해리스 대사에게 ‘이는 우리의 진정한 의지를 강화하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날 면담은 한국 측 요청으로 이뤄졌다.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진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미국이 수차례 한국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을 이어가면서 국내적으로 한ㆍ미 동맹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여론이 높아진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외교부 "면담 성격은 외교적 협의" 

다만 이는 항의의 성격으로 인식되는 ‘초치’로 명명하기는 어렵다는 게 외교부 설명이다. 미국의 부정적 입장 표명이 이어지면서 외교부 측에서 직접 만나 정부의 진의를 설명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해리스 대사가 마침 이날 외교부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 주최로 열린 주한 외교사절 대상 리셉션에 참석할 예정이라 뒤이어 면담 일정이 잡혔다는 것이다. 이날 리셉션은 최재형 감사원장의 유엔 회계감사단(BoA) 위원 출마와 관련, 각국의 지지를 요청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해리스 대사를 비롯해 85개 주한 공관 대사 및 관계자 등 130여명이 참석했다.

외교부는 공식 보도자료에서도 ‘면담’으로 제목을 달았다. “조 차관이 앞으로 미 측과 긴밀한 공조 하에 한ㆍ미ㆍ일 안보협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나가며 한·미 동맹을 한 차원 더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의지를 분명히 설명했다”며 ‘설명’, ‘협의’ 등의 표현을 썼다.

외교가 "그게 항의가 아니면 뭐냐"  

하지만 조 차관이 해리스 대사와 만나 정부의 '자제' 요청을 전한 자체가 한미 관계의 이상 기류를 보여준다는 지적이 외교가에선 나온다. 형식은 '면담'과 '협의'이지만 사실상 유감 표명이자 반박 아니냐는 관측까지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외교관은 “진의만 전하려는 것이라면 미 국무부를 대상으로 주미 한국 대사관이 움직이는 게 더 자연스럽다”며 “주재국 고위 당국자가 대사를 부르는 형식 자체에서 불편함이 드러나는 것으로 그게 항의가 아니면 무엇이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한ㆍ일 외교당국 간에도 접촉이 이뤄질 계획이다.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인 29일 한국을 방문해 김정한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만나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일본의 화이트 국가(안보우호국) 관련 조치 등 양국 간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가나스기 국장은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만나 북핵 협의도 할 계획이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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