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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내각제의 위기가 던지는 메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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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런던특파원

김성탁 런던특파원

여야가 극심한 대립을 하고 단임제로 정책이 단절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국에서 내각제로의 개헌이 거론되곤 했다. 의원 내각제는 특히 유럽에서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기반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유럽의 내각제 국가들은 혼돈을 겪고 있다. 중도좌우 주류 정당이 지지를 잃으면서 연정을 하고 있지만, 기반이 약해 툭 하면 총선을 치른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의견이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불만이다.

대표 사례가 영국이다. 유럽연합(EU)과 결별하는 브렉시트 문제로 정치가 표류하고 있다. 총선에서 과반을 못 얻은 보수당은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과 연정 중인데, 겨우 한석 차이로 집권 중이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선거 없이 국민의 0.2% 규모인 보수당 당원 투표로 자리에 올랐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국경 문제에 대한 뚜렷한 대안도 없이 해결사를 자처하고 있다. 야당은 그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켜 새 총선을 치를 궁리 중이다. 수년째 공방 중이지만 브렉시트 해법은 여전히 미궁이다.

영국 국회의사당 인근에 ‘길이 막혀 있다’는 표지판이 놓여 있다. [EPA=연합뉴스]

영국 국회의사당 인근에 ‘길이 막혀 있다’는 표지판이 놓여 있다. [EPA=연합뉴스]

기성 정당이 쇠락한 이탈리아는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과 극우 동맹당이 집권 연정을 꾸렸다. 난민 거부와 ‘트럼프식 자국 우선주의’를 신봉하는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동맹당 대표)가 연정 붕괴를 선언했다. 최근 유럽의회 선거 등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하자 총선을 치러 총리가 되보겠다는 계산이다. 양 당이 내세운 쥐세페 콘테 총리가 반발해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혼란은 커지고 있다.

독일에서도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힘이 빠지면서 정치 공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를 대체할 지도력을 선보이는 인물을 찾기 어렵고, 극우 정당의 지지는 늘고 있다. 유럽 내각제 국가들의 불안정은 정치 제도가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정치권과 유권자를 원활하게 연결해 대의 기능이 잘 작동하게 하는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내년 총선과 향후 대선을 앞두고 치열한 공방전이 시작됐다. 그래서 영국 정치에 독특하게 있는 총리와 의원들 간 ‘맞짱 돌직구 토론’을 도입하면 좋겠다. 영국 총리는 하원에서 매주 수요일 정오부터 한 시간 반 동안 질문에 답하는데, 주 공격수가 야당 대표다. 생중계되는 이 토론에선 모든 쟁점이 도마 위에 오르고 피상적인 답변이 설 자리가 없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토론하면 좋은데, 그게 어렵다면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총리와 역시 대선주자인 야당 대표가 대면케 하는 것도 좋다. 갈등을 모두 해결하진 못하겠지만 사안마다 국민까지 편으로 나뉘어 대립하지 않게 여론의 판단에 도움을 줄 것이다.

김성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