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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청문회 임박해야 내는 ‘장관 입각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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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이쯤 되면 ‘입각세’(入閣稅)라는 항목을 세법에 신설해야 할 것 같다. 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후보로 지명된 시점 전후에 그간 밀린 세금을 뒤늦게 납부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해서다. 평소 같으면 굳이 내지 않았을 세금인데, 오롯이 ‘입각’을 위해 내는 것이니 ‘입각세’라는 말만큼 적당한 표현도 없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부인은 조 후보자가 장관에 지명된 전후 총 740여만원의 종합소득세를 늑장 납부했다. 이 중 154만원은 2015년 소득에 대한 종합소득세를 4년이 지나서야 낸 것이다. 그는 조 후보자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해 4월에도 2년 전 소득을 지각 신고해서 종합소득세를 낸 바 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남편이 종합소득세 2400여만원을 인사청문요청안 제출 하루 전에 지각 납부해 논란이 됐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청와대 내정 발표 이틀 후에 자녀들에 대한 증여세를 납부했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3월 청문회에서 자녀에게 수억원대 예금을 물려주고도 증여세를 뒤늦게 납부한 데 대해 “청문회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사과드린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입각세 논란은 비단 현 정부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박근혜·이명박 정부 때도 많은 장관 후보자들의 세금 미납이 문제가 됐고, 뒤늦게 납부하는 일이 반복돼왔다.

대다수 후보자의 변명처럼 본인이 납세해야 했는지 몰랐을 수 있다. 하지만 좋게 말해 ‘미납’이지, 나쁘게 말하면 ‘탈세’다. 국민의 ‘혈세’로 나라를 운영하는 고위 공직자들이 납세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은 흠결이다.

더 큰 문제는 사회지도층의 조세 정의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희박하다는 것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세금을 제대로 내는 것은 국민으로서 당연한 의무이다. 그런데 솔선수범해야 할 고위 공직자들이 오히려 세금 미납을 ‘관행’처럼 여긴다면 일반 국민도 탈세에 대한 죄의식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시절, 박근혜 정부 고위 공직자 후보들의 세금 늑장 납부에 대해 “국민의 기본적인 의무조차 지키지 않는 위법행위자를 놓고 장관 자격을 논해야 하는 현실이 한심스럽기만 하다”는 날카로운 논평을 낸 바 있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도 청문회 통과로 유야무야 이들의 잘못을 눈감아주는 일이 이어지면서, 어느새 고위직의 세금 미납은 ‘암묵적’으로 용인받는 행위가 돼버렸다.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내로남불’에 국민의 납세의식이 낮아지는 부작용이 생길까 우려된다.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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