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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홍콩 사태, 세계경제 충격 주는 유혈 충돌 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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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홍콩의 정치 불안이 고조되면서 자칫 유혈 충돌 등 파국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인구 750만명인 홍콩에서 6월 9일 시작된 시위가 한때 200만 명까지 급증하더니 홍콩 국제공항이 마비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급기야 홍콩 인근 중국 광둥성 선전에 무장경찰 소속 장갑차가 집결한 사진이 공개되면서 긴장과 불안을 더하고 있다. 1989년 6월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 시위대를 유혈 진압한 탱크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홍콩 당국이 지난 3월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촉발됐다. 중국이 이 법을 악용해 홍콩 거주 중국인뿐 아니라 홍콩의 반중 인권운동가들을 중국 본토로 잡아갈 수 있다고 홍콩 시민들은 의심한다. 홍콩 당국이 6월 15일 법 제정 추진 중단을 선언했지만, 시민들은 캐리 람 행정장관의 퇴진과 직접선거 등을 촉구하고 있다. 반면에 중국은 미국 배후설을 제기하며 외세의 내정간섭을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톈안먼 시위 30주년이자 건국 70주년을 맞은 시점에 홍콩 사태를 원만하게 수습해야 하는 정치적 시험대에 놓였다. 홍콩 기본법 등에 따르면 홍콩 당국이 경찰력으로는 질서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해 중국 정부에 요청하면 군이 합법적으로 질서 유지에 나설 수는 있다. 이런 가운데 18일 홍콩에서 다시 대규모 시위가 예고돼 있어 물리적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홍콩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게 되면 아시아 금융 허브 홍콩과 세계 2위 경제 대국 중국의 비극에 그치지 않는다. 가뜩이나 미·중 ‘무역전쟁’ 와중이라 세계경제에 엄청난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한·일 무역갈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경제에는 또 다른 심각한 타격이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자유무역의 혜택을 받아 경제 대국으로 일어선 중국이 자유무역의 상징인 홍콩을 무력으로 억누르는 모순적 조치는 피해야 한다.

중국 관영 언론은 최근 “중국은 이미 (아편전쟁에서 홍콩을 빼앗긴) 1842년의 중국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아편전쟁 이후 155년간 영국이 통치하던 홍콩을 1997년에 넘겨받는 과정에서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은 생전에 홍콩 반환 이후에도 50년간 홍콩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홍콩 사태를 평화적으로 푸는 게 그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30년 전 베이징의 악몽이 홍콩에서 현실이 돼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