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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18개월 밀렸는데···탈북 모자의 죽음 두달간 몰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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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경찰서. [사진 연합뉴스TV]

서울 관악경찰서. [사진 연합뉴스TV]

지난달 31일 숨진 채 발견된 서울 관악구 봉천동 탈북자 모자는 구멍 뚫린 사회보장시스템의 실체를 보여준다. 아파트 월세·전기요금·수도요금·가스요금 등이 18개월 가량 밀려 있었지만 복지 안전망에서 체크되지 않았다. 게다가 정부가 지난해 8월 충북 증평군 모녀 사건을 계기로 위기 가구 발굴 대책을 강화하고, 사회복지 공무원 2892명을 채용했지만 두 달 가량 사망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위기가정 발굴" 공무원 2892명 뽑았지만 #서울 봉천동 탈북 모자 숨진 채 발견 #월세·공과금 18개월치 480만원 체납 #복지 사각지대 발굴시스템 작동 안해 #정부 "재개발임대아파트라 체크 안 돼"

탈북자 한모(42)씨와 아들 김모(6)군은 지난달 31일 자신이 사는 임대아파트 관리인이 발견했다. 수개월째 수도요금을 내지 않았고, 물이 끊겼는 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는 점을 수상히 여겨 아파트를 찾았다가 누워있는 모자를 발견해 신고했다. 경찰이 집을 조사했을 때 냉장고에 물·쌀 등의 음식이 없었다고 한다. 먹을거리라고는 고춧가루뿐이었다고 한다. 통장 잔고 '0원'이었다. 한씨가 마지막으로 5월 중순 3858원을 인출했다고 한다. 경찰은 시신이 부패한 정도를 봐서 모자가 약 두 달 전에 숨진 것으로 추정한다. 관악경찰서 관계자는 13일 “타살이나 자살 정황이 없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 상태”라며 “결과가 나와야 정확한 사인 알 수 있지만 굶어서 숨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관악구청·경찰 등에 따르면 한씨는 18개월 동안 아파트 월세(임대료)와 전기·수도·가스요금을 안 내 아파트 보증금(1074만원)에서 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스요금 45만원을 포함해 480만원의 임대료와 공과금이 밀렸다.

그런데도 복지 사각지대 발굴관리시스템에서 체크하지 못했다. 이 시스템은 전기요금·수도요금·가스요금·관리비·임대료·건보료·연금보험료 체납, 금융(이자) 연체 등 29가지 위기 가구 징후를 파악해 사각지대에 빠진 저소득층을 찾아낸다. 전기·수도·가스·임대료는 가장 기본적인 항목이다. 그런데도 1년 이상 연체했는데도 발견하지 못했다. 위기 가구를 발견하면 기초수급자로 보호하거나 긴급 복지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복지부 조사 결과, 한씨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체납 사실을 SH공사에 통보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복지부 산하 한국사회보장정보원으로 넘어와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한씨의 아파트가 재개발 임대아파트이기 때문이다. 정부 시스템은 공공임대주택 중 영구임대·국민임대·매입임대 주택의 주민이 체납할 때만 통보된다. 공공임대 중 행복주택·장기전세·분양전환임대 등의 4개 유형은 제외된다. 한씨가 사는 아파트는 공공임대에 해당하지 않는 재개발 임대아파트라서 정부 시스템 통보대상이 아니었다.

또 전기·수도 요금은 아파트 통합 관리비에 포함돼 있어서 개별 요금별로 파악하지 못했다. 수도요금이 오래 밀려도 상수도사업본부에서 연체로 잡히지 않는 구조다. 복지부 관계자는 "아파트 통합 관리비에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이 들어있기 때문에 단독주택 등이 아니라면 단전·단수 가구를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씨는 중국에서 13개월 살다가 지난해 9월 귀국해 그동안 비워뒀던 봉천동 아파트에 정착했다. 그해 10월 주민센터에 전입신고를 했고, 아동수당·가정양육수당을 신청해 받기 시작했다. 아들이 만 6세가 되면서 올 4월 아동수당이 끊겼고 가정양육수당 10만원만 받았다. 복지 혜택이라곤 10만원 밖에 받지 못했다. 한씨는 올 1월 이혼했다. 그 전에는 남편 소득 때문에 기초수급자가 될 수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씨는 일자리가 없어서 소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혼 후에는 기초수급자가 될 수 있었고, 그러면 월 87만원의 생계비를 받을 수 있었다. 아무도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해 증평 모녀 사건 이후 복지 위기 가구 발굴 및 지원 대책을 쏟아냈다. 전국 읍·면·동의 찾아가는 보건·복지 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주민센터의 복지전담팀이 도움이 필요한 주민을 직접 찾아나선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9월 사회복지 공무원 2892명을 채용했다. 원래 목표 채용 인원보다 87% 많이 뽑았다. 또 사각지대 발굴시스템을 고도화하기 위해 위기 예측 빅데이터 정보를 지방 도시공사 공공임대아파트 임대료 체납, 실업급여 미신청 정보 등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발굴시스템이 이번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구청에 알려달라고 '복지 통장'이나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홍보한다. 하지만 한씨는 외부 활동을 별로 하지 않았다. 밖으로 많이 활동했으면 알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한씨에게 전화했을 때 한 번은 '4월에 (아파트에서) 퇴거하겠다'고 말했고, 다른 한 번은 '중국에 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마 중국에 있다고 해서 심각하게 여기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에 탈북자 관리의 허점이 도마위에 올랐다. 경찰 관계자는 "탈북자는 경찰에서 신변보호 등을 이유로 관리한다. 그런데 한씨는 탈북한지 10년 됐다. 경찰 인력 여건 상 5년이 지난 탈북자는 보호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씨는그전까지 경남 통영에 살았고 그 지역 경찰에서 관리했다. 거기서 경찰이 연락하는 걸 부담스러워 했다고 한다"며 "올 2월 우리한테 넘어왔는데, 범죄 경력이 있거나 불온단체에서 활동한 적이 없어서 매달 찾아가서 관리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이태윤 기자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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