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폐업소 이번엔 근절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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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상론으로 말하면 물질적 여유는 인간을 정신적으로 풍요하게 만드는데 이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동서고금을 통해 물질적 풍요는 사회의 도덕성을 해치는 방향으로 낭비되어온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도 도시화·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상당수의 중산층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선진공업형 퇴폐 향락풍조가 급속히 확산, 심화되어 왔다.
우리 주변에서 발길에 챌 정도로 흔해진 퇴폐 향락업소를 축소시키고 추방하는 문제는 따라서 대증요법에 불과한 단속과 함께 이와 같은 도시·산업화의 속성에 대한 범국민적 성찰과 관의 대응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근절되기 어려운 성격을 띠고 있다.
정부는 최근 퇴폐이발소에 철퇴를 가한다고 발표했다. 어제 날짜 중앙일보 1면 머릿기사로 보도된 정부의 퇴폐사범 근절책을 보면 정부는 퇴폐이발소를 근절하기 위해 신고제로 돼있는 이·미용업소 영업을 허가제로 바꾸고 여 면도사의 등록제를 실시하며 퇴폐행위를 하는 이·미용업소는 강제 철거하는 등 규제를 크게 강화한다는 것이다.
규제가 까다로워지고 벌칙이 강화되면 그만큼 범법 또는 범칙행위가 위축되고, 따라서 사회의 음습한 구석이 줄어들거나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도 갖게 된다. 더군다나 퇴폐 근절을 외치며 칼을 뽑아들고 나선 것이 지금까지와 같은 관계부처나 일선 단속전담기관이 아니고 그보다 한 단계 높은 국무총리실이란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러나 오늘날 수도 서울의 도심은 물론 주택가를 비롯하여 중소도시, 농촌까지 가리지 않고 퇴폐업소가 창궐하는 이유가 실은 단속근거가 되는 법규의 미비 때문 만이라고 볼 수는 없다.
지난 86년에 제정, 공포된 공중위생법만 엄격히 적용해도 모든 접객업소의 퇴폐·윤락행위는 단속할 수 있게 돼있다. 이 법 12조를 보면 이·미용업소나 유흥음식점·목욕탕 등 모든 접객업소는 퇴폐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의 23조는 이 조항을 위반했을 경우 영업허가 취소나 영업소의 폐쇄명령 등 행정처분을 내리도록 돼있다. 또 42조는 특히 접객업소가 퇴폐·윤락행위를 제공 또는 권유했을 경우의 체형과 벌금형까지 엄연히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퇴폐업소가 근절은 고사하고 더욱 번창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정부의 단속과 근절 의지의 부족 때문이다. 설혹 상부기관의 의지가 있었다 해도 일선 단속기관과 그 담당자들이 상부의 의지대로 손발이 되어 철저한 단속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속이 소홀한 것뿐만 아니고 단속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퇴폐업자와 야합해서 그들을 감싸주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가장 최근의 일로 지난달 13일 밤에 있었던 대검 민생침해사범 합동수사본부의 전국 퇴폐사범 단속만 해도 단속정보가 사전 누설돼 굵직한 퇴폐업소는 문을 닫아 단속을 피해버리고 송사리 업자들 몇 명이 겨우 걸려들지 않았던가. 이런 사례의 반복이 지금까지 퇴폐업소에 대한 형식적 단속의 실상인 것이다.
퇴폐영업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사회악이란 인식이 일선행정기관의 말단뿐 아니라 퇴폐업소를 이웃에 두고 있는 시민들에게까지 투철하게 뿌리내리고 이를 근절시켜야 하겠다는 사명감이 투철해야만 퇴폐산업은 발붙일 터전을 잃게될 것이다.
이번 국무총리실이 보인 의지가 관계기관과 관련공무원들의 적극적이고 사심 없는 이에 의해 실현되고 결실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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