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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인친, 트친, 페친, 실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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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어릴적 여름날, 아버지는 함께 뛰어놀던 개구장이들 10명을 모아 사진을 찍어 주셨습니다. 반바지에 민소매로 비탈길에 주욱 늘어선 까까머리 아이들의 모습은 다방구와 술래잡기로 다져진 혈맹같은 유대를 기억케 합니다. 이 장면에서 익숙하게 떠오르는 단어, 친구(親舊)는 잘 아는 오래된 사이라는 한자로 이루어진 말입니다. 인친이나 트친, 페친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 플랫폼 상에서 나와 교류하고 있는 사람들을 짧게 줄여 부르는 말입니다. 어느덧 실제로 만나는 친구들보다 더 많은 교류가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교 사회학과의 마이클 로젠펠드 교수가 미국 사람들이 1940년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친구를 만나는가 연구한 결과가 흥미롭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가족이나 초등학교, 중학교를 통해 친구를 만나는 비율은 꾸준히 하락하고 있으며, 다른 친구로부터 소개받거나 직장에서 만나는 비율 역시 1980년대까지 상승하다 그 이후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2010년 이후에는 모든 연결을 추월하여 온라인을 통해 만나는 것이 독보적인 1위의 수단이 되었다 합니다.

이렇듯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방법이 가상화되면서 일상생활을 함께 하는 기존의 친구를 부르는 말이 새로 생겼습니다. 바로 ‘실친’이라는 말입니다. 영어로 한다면 ‘a friend in real life’라고 해야 할까요?  고등학교 졸업 후 30년만에 만난 친구보다 지난 2년간 팔로우해 온 인스타그램 속 친구, ‘인친’의 삶을 더욱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취향과 성장을 함께 나눈 연대는 문화와 소비의 분야에서 소울 메이트처럼 동류의 의식을 느끼게 해 줍니다.

빅데이터 8/12

빅데이터 8/12

도토리라는 사이버 머니를 우리에게 익숙하게 만든 미니 홈페이지에서 친구는 ‘일촌’이라 불리웠습니다. 형제보다 끈끈한 부모자식간의 관계처럼 미니홈피 속 친구는 현실에서나 온라인 상에서나 강한 결속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요즘 트친이나 인친들은 한번도 만나본 적도 없이 교류하는 일이 흔합니다. 나의 취향을 사람들에게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아 비밀계정이나 세컨계정으로 활동하는 경우 역시 많습니다.

매일의 일상을 지켜보던 인스타그램 속의 셀럽은 마치 나의 친구와 같이 느껴집니다. 매일같이 활동을 공유하고 잠자기 전 누워서 하루를 마감하는 ‘눕방’ 속 아이돌과는 마치 함께 살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하기에 내가 모르던 그의 연애 사실이나 일탈에 더욱 큰 실망을 느끼곤 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절연당한 것처럼 그는 나를 본 적도 없겠지만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20억명을 훌쩍 넘긴 사용자를 보유한 페이스북 속 사람들의 친구는 2019년 6월 기준 평균 338명이라 합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만난 사람들만 친구로 허락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인연도 너그럽게 추가해 수천명의 친구 리스트를 가진 사람도 드물지 않습니다. 하지만 페이스 북 친구의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그에게 내가, 나에게 그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닐까요? 여전히 우리 마음 속 깊은 관계는 ‘unfriend’ 버튼을 누르면 끊기는 디지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까까머리 사진 속 반가운 얼굴이 일으킨 마음 속 파동은 확실히 아날로그, 아날로그 였습니다.

송길영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