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공급망 끊고 무기화…한국판 반도체 네트워크 세워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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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8호 05면

한·일 저강도 경제전쟁

헨리 패럴

헨리 패럴

“한국과 일본은 저강도 경제전쟁 단계에 들어섰다.”

헨리 패럴 미 조지워싱턴대 교수 #세계화가 낳은 상호의존 네트워크 #트럼프, 무역전쟁 일으켜 깨져 #아베도 정치적 목적 위해 한국 압박 #소재 국산화, 공급망 다변화 해야

헨리 패럴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정치학)의 진단이다. 중앙SUNDAY가 좀 더 큰 틀에서 한·일 갈등을 조망해보기 위해 요청한 전화 인터뷰에서다. 패럴 교수는 무역전쟁을 공동으로 분석해 ‘무기가 된 상호의존관계(Weaponized Interdependence: How Global Economic Networks Shape State Coercion)’란 논문을 지난달 말께 발표했다. 워싱턴포스트(WP) 등이 ‘무역전쟁 등 글로벌 갈등 상황을 잘 분석한 논문’이라고 평했다. 그는 방학 중이라 고향인 아일랜드에 머물고 있었다.

미국·중국, 미국·이란은 고강도 경제전쟁

한·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동북아 이웃한 나라의 갈등이지만, 글로벌 차원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한·일 분쟁은 동북아 지정학적 사건이다. 두 나라 사이 역사적 악연이 사태의 뿌리다. 동시에 두 나라 갈등은 글로벌 현상이다. 무역 등 경제적인 현상인 듯하지만 정치적인 사건이다. 세계화가 낳은 상호의존성의 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떤 진실인가.
“세계화는 서로 의존하는 네트워크를 낳았다. 이 네트워크는 대칭적이지 않다. 네트워크상 축들이 모두 동등하지 않다는 얘기다.  미국과 일본 등의 축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미국과 일본 등이 자국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네트워크의 상호의존 관계를 이용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이런 믿음이 깨졌다.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하면서 상호의존성을 무기화하기 시작했다.”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의 반도체 소재 수출제한 등도 무기화 현상의 하나인가.
“무기화의 대표적인 예다. 기업인 등이 효율성(비용 절감) 측면에서만 글로벌 공급망(Supply Chains)을 봤다. 한국의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일본에 의존해온 이유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 등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공급망에서 자국이 장악한 관문(Choke Point)을 죄며 압박하기 시작했다.”

패럴 교수는 무기화는 일방적인 공격이 아니라고 말했다. 실제 중국과 이란 등이 저항하고 나섰다. 중국은 무역협상을 질질 끌고 있다. 이란은 서방 유조선을 억류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일본의 수출제한이 한국 내에서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많은 한국인이 일본 관광과 제품 구매를 보이콧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 한·일 두 나라는 ‘저강도 경제전쟁(low level economic war)’ 국면에 들어섰다. 미국-중국과 미국-이란 사이 갈등은 고강도 경제전쟁이다. 미국은 중국에서는 경제체제를, 이란에서는 정치체제를 바꾸려고 한다. 반면 일본은 그런 큰 목적을 가지고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 게 효과적일까.
“한국은 일본과 같은 방식으로 해선 효과가 없다. 특정 제품의 수출을 제한하거나 일본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빼 봐야 의미 없다. 그 영역에서는 일본의 지위가 훨씬 강하다. 다른 방법 또는 영역을 택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일본의 조치가 충격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의존성이다.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한국이 의존성을 줄여 나가야 한다. 이미 삼성 등 한국 기업들이 반도체 소재를 국산화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을 디커플링(Decoupling)이라고 부를 수 있다. 중국뿐 아니라 심지어 공격하는 미국도 부품이나 철강재 등의 자국 생산을 늘리기 시작했다.”

글로벌 경제관계 속 정치 리스크 간과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유럽이 미국의 제재망을 뚫고 이란산 원유를 사들이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정보망이 뛰어나다고 해도 모든 뒷구멍을 다 막을 길이 없다. 심지어 제재의 역설 때문에 미국과 일본의 관문 장악력이 약화될 수도 있다.”
어떤 역설인가.
“1950년대 말 미국이 옛 소련의 달러 자산을 압류할 수 있음을 과시했다. 다급해진 크렘린이 달러 예금 등을 미국계 시중은행에서 빼내 유럽 은행에 예치했다. 유로달러 시장의 시작이다. 미국의 제재 때문에 등장한 유로달러 시장이 미국의 관문 장악력을 약화시켰다. 한국이 반도체 소재 등을 다른 나라에서 사들이기 시작하면 일본이 빠지고 한국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헨리 패럴 아일랜드 출신으로 더블린의 유니버스티컬리지를 졸업한 뒤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연구 분야는 정보화 시대 국제관계, 특히 국경을 초월한 기업간 네트워크 형성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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