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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통일주장이 선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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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통일이 민족적 염원이라고 전쟁으로 성취할 수는 없다. 「이 민족 살리는 통일」이어야하는데 민족을 죽이는 방법으로 이루어서야 되겠는가. 또한 아무리 통일이 절박한 민족적 과제라 하더라도 통일을 앞당긴다는 명목으로 공산당 만세를 부를 수는 없다.
민족사회구성원 모두의 인권이 보장되고 자유가 지켜지는 하나의 민족사회를 만들기 위한 통일인데 자유민주주화를 부정하는 체제를 받아 들인다는것은 통일의 목표를 부정하는 일이되기 때문이다. 『통일된 월남보다 차라리 분단된 서독을 택하겠다』고 하신 한 기독교성직자의 말씀은 이념과 체제가 통일보다 우선 한다는 것을 밝힌 우리자세의 선명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상대 인정해야>
우리의 이상은 평화와 통일이다. 그러나 북한이 프롤레타리아 계급 독재체제를 고집하는 한 타협에 의한 통일은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고 통일노력을 포기할 수도 없다. 두고온 가족을 살아생전에 다시 한번 보고자하는 이산가족의 절규를 더 이상 못본척 할 수 없다. 남북한간에 존속해온 준전쟁상태를 더 이상 내버려 둘 수도 없다. 분단의 고통을 줄이는 일은 시간을 재촉하는 급선무다.
이상과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하느것이 더 민족을 사랑하는 현실적인 행위일까. 솔로몬의 재판만큼 어려운 결정이다.
우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을 하나로 통합하는 국가통일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평화를 확보하는데 노력을 모아야한다. 평화를 구축하여 그 토대위에서 통일을 모색해야 한다.
평화의 전제조건은 두 당사자가 서로가 서로를 대등한 교섭대상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상대의 격을 인정하지 않고는 협상이 불가능하다. 상호존재의 대등성 인정이 곧 평이다. 그리고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용하고 공존의 합의를 이루어야한다. 다른 존재간의 공존을 화라 한다. 평화란 곧 대등한 존재간의 공존확의를 말하는 것이다.
지난 40년간 우리를 괴롭혀온 북한당국을 우리의 협상대상자로 인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 평화가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민족사회의 단일성 회복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긴 역사에서 보면 정치는 짧고 가변적이나 민족은 영원한 것이고 불변적인 것이다. 우리가 하나의 민족사회를 유지할수만 있다면 언제라도 정치통일을 기대할 수 있다.
민족이 갈리면 그때는 통일의 대상을 잃게된다. 서로 다닐 수 있고 또한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는 생활공간의 통합, 그리고 다함께「우리」라고 느끼는 공동체의식의 공유, 함께 잘 살자는 공영의 자세등이 갖추어질 때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Community)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선 「한민족공동체」를 만들어가는데 힘을 기울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하다.
자유왕래, 거주지 선택자유 부여, 경제교류의 활성화등이 이루어진다면 통일이 못 이루어진데 대한 아쉬움은 크더라도 개개인이 겪는 분단의 아픔은 한결 덜어질수 있게 된다.
지난 15일 대통령 연설에서 우리정부는 바로 민족공동체의 회복과 발전을 핵심으로 하는 통일정책의 방향을 천명하였다. 그리고 이홍구통일원장관도 이점을 부연 설명 하였다.
때늦은 감이 있으나 이러한 현실주의적인 정직한 자세를 밝혀준데 대하여 고맙게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정치인들은 통일정책에 관한 한 정직하지 못하였다. 비현실적인줄 스스로 알면서도 국민의 통일열망을 수용하여 자기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통일을 주장하여 왔었다. 통일을 그 자체로 놓고 허심탄회하게 다루려하지 않고 자기와 자기당의 정치적 이미지 부각의 도구로 써왔었다.

<정치도구 이용 안돼>
그래서 통일논의에 많은 혼란을 일으켜 왔었다. 그러나 통일문제만은 정치의 도구로 써서는 안된다. 최근 방송토론에서 평민당의 조순승의원은 통일정책에서의 「현실주의적 접근」에 대하여 정부당국자보다도 더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고 이제 우리 정치도 많이 성숙해 가는구나 하고 기쁨을 느꼈었다. 여야간에 모든 정당은 대한민국 헌법아래에 있는 정당이다.
통일의 기본에 관한 한 어떻게 다른 정책이 있겠는가. 다만 구체적 실천방안에 있어서만 견해를 달리 할 수 있을 뿐이다. 정부정책과 달라야 야당의 입장이 살고, 야당주장과 달라야 정부의 위신이 서는 것처럼 생각하는 그 편협성들을 서로 버려야 대다수 국민이 수긍하는 현실적인 통일정책의 대상이 서게된다.
통일협상의 대상인 북한당국은 노동당 목소리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 우리의 목소리가 네갈래 다섯 갈래로 나뉘면 북한의 「통일전선전략」의 노리갯감으로 우리 스스로를 전락시킬수 있다는것을 알아야한다. 남북통일의 진정한 출발은 우리의 국논통일에서 시작되어야한다는 이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모두 깊이 인식해야 한다.
민주정치는 다양성 존중을 생명으로 한다. 그러나 다양한 견해를 하나로 통합하는것(E Pluribus unum)이 민주정치이지 다양한대로 버려두는 것이 민주정치가 아니다. 그것은 무정치 일 뿐이다.
그동안 여야간에 여러 정치지도자들이 김일성주석을 만나려고 애썼다는 것을 우리는 갈 안다. 오늘의 상황에서 그분들이 김주석을 만나 무엇을 성취하겠다는 것인가.
자기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려는 얄팍한 의도가 담겨졌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김일성주석을 만나기보다 여야 지도자들끼리 자주 만나 통일정책 기본방침을 합의하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일이다.

<통일정책 일관되게>
모든 통일주장이 선인가. 그럴 수없다. 민족을 살리는 통일, 모든 이의 자유와 인권을 보강하는 통일주장은 선이나 그렇지 않은 통일주장은 통일을 저해하는 악이다. 순수한 통일열정이 모든 통일주강의 면죄부가 될수없다. 열정과 주장사이에 바른 논리가 있어야 공논이 될수있다.
당장의 인기를 초월하여 민족전체의 이익에 맞는 주장을 필때 정치인의 참 용기가 발현된다. 새 통일정책청문회에서는 국민이 모두 따를 수 있는 한가지 통일지침에 모든 당이 합의를 이루어주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국민들은 통일된, 그리고 일관된 통일정책이 서야 발벗고 따를것이다.<서강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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