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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이 등 돌리니 1, 2위 경쟁 무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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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두 사람이 정면 격돌했던 2.18 전당대회는 박근혜-이명박의 대리전으로 맞붙었던 한나라당의 11일 전당대회보다 더 치열했었다. 하지만 민심이 등 돌린 열린우리당엔 1위도 2위도 없었다. 떠들석했던 '대권 전초전'이란 말도 빛바랜 지 오래다. 민심이 떠나면 경쟁도 무의미해지는 것일까. 두 사람 사이에 경쟁심은 찾기 어려웠다. 서로 입은 상처를 따뜻하게 만져주고 쓸쓸하게 위로했을 뿐이었다. 정 전 의장은 15일 독일로 떠난다. 베를린자유대학에서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한 달간 체류 예정이라고 한다.

◆ "민심은 맹수다"=둘의 만남은 떠나는 정 전 의장에게 밥 한끼라도 대접하겠다고 김 의장이 마련했다.

▶정동영="제가 앞으로 당 운영에 있어 전폭적으로 도와줄 테니 열린우리당 살리는 것을 목표로 김 의장께서 매진해 달라. "

▶김근태="도와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같이 가야 한다. "

▶정="창당 이후에서 5.31 지방선거까지가 열린우리당의 1기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제2기 열린우리당을 만들어 가야 할 때다. 이제 김 의장이 책임을 지고 '열린우리당이 변했다'는 희망을 국민에게 전해주기 바란다. "

서로 밀어내던 관계는 이제 끌어주는 관계로 바뀐 듯했다. 두 사람이 의지할 수밖에 없는 관계로 전환된 것은 지방선거 참패 이후다. 정 전 의장은 한때 라이벌이었던 김 의장에게 당 비상대책위원장을 하라고 간곡히 설득했다. 파산 상태의 당을 맡으면서 김 의장은 "독배를 마시는 심정으로 당을 이끌겠다"고 했다. 여기에는 열린우리당이 이대로 깨지면 누구에게도 기회가 없다는 양측의 절박함이 깔려 있다. 당의 핵심 관계자는 "두 사람이 자기들이 가진 지분을 다 내놓고 당을 살려내지 않으면 정계개편의 소용돌이에 모두 휩쓸려 날아갈 것이란 위기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의장은 재기가 어렵고, 김 의장은 책임론에 직면할 것이란 얘기다. 다른 당 관계자는 "민심은 잘못 대한 조련사를 잡아먹는 맹수와 같다. 그런 민심 앞에서 두 사람이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 전당대회 땐 앙숙 관계=2.18 전당대회에서 1위 싸움을 벌인 정동영.김근태 후보는 앙숙이었다. 정 후보 측은 "김 후보는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때도, 열린우리당 창당 때도 가장 늦게 합류했다"며 "우리를 당권파라고 비판하는데, 신당 창당에 무임승차한 것에 대한 자성과 해명은 없느냐"고 비난했다. 김 후보 측이 아파하는 대목을 찌른 것이다. 김 후보 측도 맞불을 놓아 "2004년 4.15 총선 막바지에 정 의장의 오만과 경솔로 전국정당의 꿈이 깨지고 과반수 의석 확보마저 위협받았음을 잊었는가"고 맞받았다.

◆ 한나라당도 비슷?=한나라당은 7.11 전당대회 후유증에 빠져 있다. 경선에서 2위를 차지한 이재오 최고위원이 지방에 머문 채 당무에 복귀하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의 1위와 2위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은 열린우리당과 달리 전례 없는 높은 당 지지도를 구가하면서 내년 대선에 대한 꿈이 한껏 부풀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한나라당에 우호적인 민심이 계속 당내 분란을 고운 시선으로 봐줄 것인지는 미지수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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