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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갈등엔 달랑 두 문장···폼페이오 보면 '동맹 순위'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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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이 2일 오후(현지시간)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가운데),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외교장관회담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했다. 촬영 후 고노 외무상이 먼저 이동하자 폼페이오 장관이 손짓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이 2일 오후(현지시간)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가운데),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외교장관회담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했다. 촬영 후 고노 외무상이 먼저 이동하자 폼페이오 장관이 손짓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미 국무부는 2일 홈페이지에 ‘장관급 3자 전략대화 공동성명’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게재했다. 1724개 단어, 16개항으로 구성된 공동성명은 일본의 화이트 국가 배제 결정 16시간 전인 1일 오후 4시(현지시간, 한국시간 오후 6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열린 태국 방콕에서 이뤄진 미ㆍ일ㆍ호주 외교장관회담의 결과물이었다. 한국으로선 일본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막판 관여가 절실했던 시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고노 다로 일본 외상, 매리스 페인 호주 외교장관과 함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ㆍ태평양 지역의 발전을 위해 능동적으로 협력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시각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한-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회의에 참석 중이었다.
# 한ㆍ미ㆍ일 외교장관 회담 결과도 3일 국무부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폼페이오 장관과 강 장관, 고노 외상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달랑 두 문장, 64개 단어 분량이었다. 일본 조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한ㆍ미ㆍ일 관계의 중요성을 확인했다”는 원론만 담겼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2일 “미국이 전날 밤까지 (화이트 국가 배제를 막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파악된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이나 동선을 보면 그의 ‘동맹 우선순위’는 우리 생각과 다른 듯했다.

강경화-고노 공방, 침묵 지킨 폼페이오

ARF가 열린 나흘 중 폼페이오 장관이 한ㆍ일 관계에 대해 언급한 것은 단 한번, 31일 오후 기자회견에서였다. 그것도 “양국이 긴장을 해소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스스로(together themselves) 함께 찾을 것”이라는 원론적 답변이었다. 2일 일본의 화이트 국가 결정 이후 열린 한ㆍ미ㆍ일 외교장관회담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이 우려를 표했다"는 강 장관, "그런 적 없다"는 고노 외상의 발언이 엇갈렸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끝까지 침묵했다.
ARF 종료 직후 폼페이오는 곧바로 호주로 날아갔다. 마크 에스퍼 신임 미 국방장관도 합류했다. 직후 나온 미국의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아시아 지역에 재래식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원한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에 중요한 것은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ㆍ태평양 구상을 통해 역내 절대 패권을 유지하는 것이고, 이에 적극 동참하는 일본ㆍ호주와 신중하게 접근하는 한국은 같은 동맹국이라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존재감 제로 북한, 단거리 부각 안 된 ARF

2015년부터 5년 내리 ARF를 취재 중이지만, 북한이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경우도 처음이었다. ARF는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역내 다자 안보 협의체로, 아세안이 주인공이지만 북한이 주연급 조연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용호 외무상이 참석하지 않았고, 북한대표 자격으로 ARF에 참석한 김제봉 주태국 북한 대사는 아예 발언 기회를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현재로선 대화에 나설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최근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도발과도 맥이 닿는다. 강 장관은 ARF 발언에서 “북한의 미사일 및 발사체 발사가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지만, 중대하게 공론화되지는 않았다. 한국도 일본의 화이트 국가 결정 대응이 우선이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2일 오후(현지시간)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해 자료를 살피고 있다. [뉴스1]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2일 오후(현지시간)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해 자료를 살피고 있다. [뉴스1]

이와 관련, 방콕 현지에서 공감하기 힘든 외교부 고위 당국자의 발언이 나왔다. 그는 “일단 (북미)회담에 나오면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기 어려우니 그 전에 해서 신형 단거리 미사일의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려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쿨(cool)하게 생각하면 그런 해석도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게 과연 쿨한 해석일까.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 단거리 미사일 도발의 위험성을 평가절하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 마당에, 한국에 직접적 위협인 미사일 도발을 우리 외교 당국자가 마치 남의 이야기하는 듯한 태도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안보 위기는 일본 한 나라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다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말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이에 대해 “우리 정부 당국자가 도발을 북한의 입장에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보일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쿨'이란 단어는 그럴 때 쓰는 게 아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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