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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에 1개꼴 사우나 왕국서 ‘하얀 밤’의 열기 속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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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7호 24면

백야의 나라 핀란드 여름 여행

포르보의 랜드마크인 강변의 붉은 목조건물. 예전엔 창고였으나 지금은 상점이나 카페로 개조됐다. 한 할머니가 강에서 카누를 즐기고 있다. 김경빈 기자

포르보의 랜드마크인 강변의 붉은 목조건물. 예전엔 창고였으나 지금은 상점이나 카페로 개조됐다. 한 할머니가 강에서 카누를 즐기고 있다. 김경빈 기자

해가 북쪽으로 지고 북쪽에서 떠오른다. 아니, 해는 지지 않을 수도 있다. 북유럽 핀란드에선 그렇다. 겨울에는 오후 2시만 되면 어두워지지만, 여름이 되면 자정에도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고 여명이 남아있다. 하지(夏至)에는 아예 해가 지지 않는다. 여름밤이면 수도 헬싱키 시내 공원의 잔디밭에도, 대성당의 계단에도 백야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겨울엔 오후 2시만 돼도 어둑어둑 #지금은 한밤 태양 아래 낭만 즐겨 #투우술라 등 청정 호수 18만 개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체취 손짓

헬싱키 근교 소도시 포르보는 숨은 보석

백야의 탐페레. 여명이 남아있는 밤 12시, 탐페레 역에서 야간열차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백야의 탐페레. 여명이 남아있는 밤 12시, 탐페레 역에서 야간열차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헬싱키 동쪽 근교에 자리 잡은 소도시 포르보(Porvoo)는 핀란드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도시다.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전통 양식의 건축물들이 여전히 남아있어 마을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 같다. 포르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린나마키(Linnamaki) 언덕에 1892년의 포르보 올드 타운을 그린 그림이 놓여 있다. 자연주의 화가 알베르트 에델펠트(Albert Edelfelt)가 그린 그림 속 마을은 지금 모습 그대로다. 언덕에 우뚝 솟은 대성당이며, 그 아래 강변에는 붉은 목조 건물들이 늘어선 모습까지. 어쩌면 이리도 시간이 멈춘 듯 그대로일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포르보의 랜드마크인 붉은 목조 건물들은 예전엔 창고였다. 700년 전, 스웨덴과 덴마크 등을 오가는 무역선이 이용하던 이 창고에는 외국에서 건너온 상품들로 가득했다. 지금은 지반의 융기로 무역항의 기능은 잃고, 관광객을 실은 유람선만 오간다. 골목마다 레스토랑, 초콜릿 가게, 수공예품 상점 등이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북유럽의 아늑함을 간직한 포르보는 핀란드적인 분위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숨겨진 보석 같은 도시다.

시벨리우스가 살았던 ‘아이놀라’에 있는 그의 재떨이.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하나를 골라 사용했다. 김경빈 기자

시벨리우스가 살았던 ‘아이놀라’에 있는 그의 재떨이.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하나를 골라 사용했다. 김경빈 기자

핀란드어로 핀란드는 ‘수오미(suomi)’라고 부른다. ‘호수의 나라’라는 뜻이다. 실제로 핀란드에는 18만여 개의 호수가 있다. 경치가 뛰어난 헬싱키 공항 근처의 투우술라(Tuusula) 호숫가에는 예로부터 예술가들이 터를 잡고 살았다. ‘핀란디아’를 작곡한 시벨리우스(Jean Sibelius)와 그의 가족이 살던 집 아이놀라(Ainola)는 그의 부인의 이름을 딴 ‘아이노의 집’이란 뜻이다. 시벨리우스는 이곳에서 60년 가까이 살면서 7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집안 곳곳에는 그와 가족들의 손때가 묻은 가구와 소품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거실 탁자 위에는 6개의 재떨이가 놓여 있는데, 시벨리우스는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그중 하나의 재떨이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의 딸은 사용한 재떨이로 아버지의 기분을 파악했다고 전해진다. 화가 페카 할로넨(Pekka Halonen)의 로맨틱한 통나무 스튜디오도 20세기 초 투우술라 호숫가에 세워졌다. 할로넨은 핀란드 예술의 황금시대에 가장 사랑받던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생가는 지금은 할로센니에미(Halosenniemi) 미술관이 되어 할로넨과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호수 선착장에서 아들에게 낚시를 가르치는 아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이다. 할로넨이 이 모습을 봤다면 이 부자의 그림이 할로센니에미에 걸려 있으리라.

탐페레선 캐릭터 ‘무민’ 박물관 들를 만

탐페레 시내 호숫가에 자리한 쿠마 레스토랑 사우나. 나무 데크에는 선베드가 놓여 있다. 김경빈 기자

탐페레 시내 호숫가에 자리한 쿠마 레스토랑 사우나. 나무 데크에는 선베드가 놓여 있다. 김경빈 기자

사우나의 발상지답게 핀란드인들의 사우나 사랑은 남다르다. 인구가 550여만 명인데 230여만 개의 사우나가 있다. 인구 2명에 1개꼴인 셈이다. 핀란드에서도 사우나가 가장 많은 도시는 탐페레(Tampere)다. 호수와 호수 사이에 위치한 조용하고 아름다운 도시인데, 강가에는 전통 방식의 사우나가 즐비하다. 최근에는 레스토랑을 갖춘 사우나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지난해 시내 중심부 호숫가에 개장한 ‘쿠마(Kuuma)’에서 사우나 체험을 했다. 두 개의 사우나 시설과 호수에 뛰어들 수 있는 ‘ㅁ’자 모양의 데크가 갖춰진 곳이다. 수영복 차림으로 사우나에 앉아 “이 정도 열기면 견딜 만하다” 생각하던 차에 옆 사람이 데워진 돌에 물을 부었다. “치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수증기가 등을 타고 온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온몸에서 비 오듯 땀이 쏟아지고 숨이 턱턱 막혔다. 사우나를 빠져나와 호수로 향했다. 우리나라 사우나의 냉탕을 떠올리며 호수에 발을 담근 순간 비명이 새어 나왔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다리가 아려왔다. 물속에서는 채 10초도 있을 수 없었다. 한겨울 얼음 구멍에 뛰어드는 핀란드인들에게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이겠지만, 이방인에겐 비명이 나올 만큼 차가운 호수였다. 탐페레에서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캐릭터 ‘무민(Moomin)’을 테마로 꾸민 무민 박물관도 만날 수 있다. 작가 토베 얀손이 그린 원화를 포함해 20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무민 박물관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김경빈 기자

무민 박물관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김경빈 기자

핀란드는 여행객을 단번에 사로잡진 않는다. 다른 나라들처럼 화려한 왕궁도 없고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적도 드물다. 대신 어느 곳을 가더라도 힐링할 수 있는 청정한 대자연이 있고, 그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행객의 마음을 빼앗는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여행 정보

●핀란드 국영항공사 핀에어가 인천~헬싱키 직항 노선을 매일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 약 9시간 30분(돌아올 때는 8시간 30분).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노선 중에서 가장 짧다. 2020년 3월 30일부터 핀에어는 부산~헬싱키 노선도 주 3회 운항할 예정이다.

●화폐는 유로화 사용하고, 시차는 7시간이지만 3월부터 10월까지는 서머타임 적용으로 6시간.

[취재 협조=핀란드 관광청, 핀에어]

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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