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인휘의 한반도평화워치

한·미 훈련과 실무협상 연계 전략에 말려들지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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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북·미 실무협상 앞둔 북한의 속셈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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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30일 우리 측 자유의 집에서 북·미 정상 회동을 마치고 나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건물 앞에 선 채로 기자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향후 2~3주 이내에 실무 협상이 열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국내외 다수 언론은 2~3주의 근거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추측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분석이 뒤따랐지만, 대체적인 설명은 일치했다.

조속한 북·미 실무협상 언급한 #트럼프 트윗, 북한 입지만 강화 #북한은 북·미 실무협상 볼모로 #한·미 동맹 크게 약화하려 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국제 사회가 지켜보는 가운데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비건 대북 특별대표를 치켜세웠다. 핵심을 짚어보자면 김 위원장을 향해서 이 두 사람은 미국이 신뢰할만한 협상 파트너임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이 배경에는 최근 북한이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물론 폼페이오 장관을 향해서까지 비난의 수위를 높이던 상황이었고,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 다른 협상 대상은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2~3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 표명의 포인트는 미국의 입장이 아니라 김 위원장이 북한의 실무 협상 준비를 위한 시간을 요청했던 것으로 풀이된다.그 배경을 좀 더 생각해 보면, 일부 언론의 분석처럼 북·미 판문점 회동에는 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미국과 북한 모두 서로가 극도로 꺼리는 인물인 김영철 조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과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보이지 않았다. 김영철의 부재(不在)는 추측만 난무한 상황이고, 볼턴의 경우 같은 시각 업무차 몽골을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일종의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두 전략가를 배제함으로써 협상의 틀을 어떻게든 이어가고 싶다는 의지를 확인한 셈이다.

실무 협상 재개 전망과 관련하여 간과해서 안 될 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가로서의 면모이다. 6월 28~29일 이틀 동안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은 예정되었던 한국 방문에 맞춰 29일 아침 판문점에서 북한 김 위원장을 만나면 좋겠다는 트윗을 올렸고, 이후로 너무도 급박하게 돌아간 상황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지난 6월 14일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김 위원장의 친서 전달이 있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여기에 화답하는 과정에서 판문점 회동과 관련한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일부 언론은 추정하고 있다.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긴박했던 상황의 흐름은 짐작을 뛰어넘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사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지난 2월 28일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노 딜로 결론 나면서 우리 국민 사이에서 결국 북·미 사이에 가로 놓인 불신의 장벽을 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겨나고 있었다. 또 두 최고 지도자가 직접 만난 자리에서 협상이 결렬된 것이기에 혹시 북·미간 냉각기가 지나치게 오래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쌓여가던 중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실패 이후 김 위원장이 국내·외적으로 처한 난처한 상황을 어떤 형태로든 도와줘야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트윗 메시지를 보내서 북한이 반응하지 않으면 할 수 없지만, 만약 반응을 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 김 위원장의 입지를 적극적으로 강화해 주겠다는 전략적 판단을 했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2~3주의 시간이 지났지만 왜 실무 협상은 재개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이 생기던 와중에 최근 북한으로부터 매우 흥미로운 뉴스가 전달되었다. 최근 한·미 군 당국은 8월 초 시행할 연합 가상 군사 훈련의 명칭(일명 19-2동맹 훈련)에서 ‘동맹’을 넣지 않을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의 반발을 고려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6일 북한 외무성은 기자 문답을 통해 “동맹 19-2가 현실화한다면 북·미 실무 협상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맹비난 한 바 있기 때문이다. 병력과 장비를 동원하지 않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만 진행되는 위기관리연습(CPX)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동맹’이라는 명칭을 문제 삼으며 실무 협상 재개의 시점을 볼모로 잡고 있는 듯이 보인다.

북한은 또 25일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신형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2발을 동해로 발사했다. 북한이 다음 달 2일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담에 이용호 외무상을 파견하지 않기로 한 것도 압박 행보의 하나로 해석된다.

북한의 셈법을 100% 내다볼 수는 없다. 추측건대 지난 판문점 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재개 의지를 확인한 북한은 협상에 임하기 전에 본인이 원하는 전략적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함으로써 비핵화의 구체적인 조치 없이 북·미 협상을 유리한 국면으로 몰고 가려고 계산한 것은 아닐까? 더구나 아무리 자기가 한 말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하는 트럼프 대통령이라도 전 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2~3주 후 재개”를 확언한 상황에서 북한이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일단은 미국이 수용할 수밖에 없는 구도가 전개될 공산이 커 보인다.

한·미 관계가 동맹 관계가 아니라면 어떤 표현을 사용해야 할까? 동맹(alliance)은 외교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전 세계 200여개 국가 중에서 우리가 동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고전적인 정의에 따르면 동맹은 두 가지 사항을 공유한다. 하나는 적을 공유하고, 또 하나는 적의 위협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 안보 자산을 공유한다. 물론 이러한 고전적인 정의가 21세기에도 유효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특히 한·미 동맹의 경우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기 위한 태생적인 목적이 있지만, 시간이 흐르고 현재와 같이 비핵 평화 프로세스의 진척을 희망하는 상황에서는 동맹의 개념도 새롭게 정의돼야 한다.

만약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한·미 동맹의 유연한 개념 정의와 탄력적 실천을 준비하고 있는데, 북한이 과거 냉전적 동맹 개념에 사로잡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 ‘동맹 19-2’ 훈련을 문제 삼는 북한의 주장에서 한반도 안보의 과거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알려진 바와 같이 매년 8월 시행되던 을지프리덤가디언 군사 훈련은 한·미 양국의 합의에 따라 종료되었다. 당연히 이번에 예정되었던 군사 훈련은 을지프리덤가디언을 대체하는 동시에 전시작전권 전환 연습의 초기 검증 작업 성격이 강하다. ‘동맹 19-2’라는 이름은 매해 2월 말~3월 초 실시하던 키리졸브 훈련이 ‘동맹 19-1’로 명칭이 변경된 것의 연속 선상에 있다.

어떤 형태로든 북·미 실무 협상은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 시기는 대략 8월 중순 또는 하순 정도로 예상된다.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동맹 관계를 있는 그대로 부르지 않겠다는 고려는 향후 프로세스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자기 모순적 판단일 수 있다. 문제의 본질은 협상의 재개가 아니라 협상의 결과로 드러나는 실질적 성과임을 잊어선 안 된다.

북한 핵 능력은 그대로인데 한·미 군사력은 후퇴

2018년 초 극적으로 조성된 비핵화 협상 프로세스 이후 대결의 정점에 있는 미국과 북한은 어떻게 신뢰 구축을 위해 노력했을까? 일단 핵을 포기하겠다는 북한의 입장 표명과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겠다는 미국의 입장 표명을 기본 전제로 하고 되짚어보자.

북한은 풍계리 실험장을 폐쇄했다. 동창리 시험장 폐쇄를 예고하고 영변 핵시설 폐기 가능성을 언급했다. 미국은 한반도로의 전략 자산 전개를 폐지·중지했고, 대규모 군사 야외 동원 훈련을 전제로 한 각종 연합 작전을 무기한 연기·축소했다. 물밑 협상이 있었겠지만 대체로 북한이 원하는 장소에서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북한 사람이 아닌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북한의 기존 핵 보유 능력의 아무런 손상 없이 북한이 오랫동안 두려워하던 한·미 군사력의 후퇴가 있었던 것이다. 소위 3대 한·미 연합 훈련으로 알려졌던 독수리 훈련과 키리졸브 훈련 그리고 을지프리덤가디언은 이제 모두 역사 속으로 사려졌다.

이 시점에서 누가 더 많이 양보하고 있는가를 따지는 것이 유치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 정착의 정교한 연계를 위해서는 유치하더라도 제대로 따져볼 일이다. 비핵화라는 역사적 결단을 앞두고 북한이 느낄 두려움과 망설임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운명의 기회는 우리를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럴수록 어쩌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와 한반도의 운명이라는 생각에서 비핵 평화 프로세스 하나하나를 정교하고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북한 문제를 평화의 관점에서 수용하고 관여하는 일과 그 과정에서 각 단계를 정확하게 짚어가는 일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정치학 교수·리셋 코리아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