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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험사는 상호회사 아닌 주식회사 계약자에 주식 배분 필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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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생명보험회사가 증시에 상장할 때 상장에 따른 이익을 보험 가입자에게 나눠 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생보사가 보험 가입자에게 계약자 배당을 해주기 위해 쌓아놓은 내부 유보액만 보험 가입자 몫이라는 것이다.

생보사 상장자문위원회는 13일 공청회에서 이 같은 자문위 결론을 발표했다. 자문위는 증권선물거래소가 생보사 상장을 위해 구성한 기구로, 자문위 결론이 정부 안으로 채택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한 차례 정도 더 공청회를 거친 뒤 연내 상장 방안을 확정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나동민 자문위원장은 "생보사는 상호회사가 아니라 주식회사고, 보험계약자는 주주가 아니라 채권자"라며 "따라서 생보사가 상장할 때 가입자에게 주식을 나눠주지 않아도 된다는 게 자문위 결론"이라고 밝혔다.

보험 가입자 몫을 주장해 온 경실련.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자문위 결론에 반발하고 있다. 또 이날 공청회 토론자로 예정됐던 경실련 소속인 권영준(경희대) 교수와 참여연대의 김상조(한성대) 교수는 공청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 "생보사는 주식회사"=17년 전부터 추진됐던 생보사 상장의 발목을 잡아온 것은 생보사가 주식회사냐, 상호회사냐는 논쟁이었다. 시민단체들은 생보사가 형식은 주식회사지만 실제 성격은 상호회사라고 주장했다. 상호회사라고 볼 경우 상장 때 생기는 이익을 보험 가입자에게도 나눠줘야 한다.

나 위원장은 "과거의 보험 관련 법규와 감독정책, 국내 생보사의 운영방식, 외국사례 등을 검토한 결과 국내 생보사는 형식적 측면뿐 아니라 실제 운영 측면에서도 주식회사로서의 속성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유배당 보험은 주로 상호회사에서 파는데, 국내 생보사들이 유배당 보험을 팔았던 만큼 상호회사 성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자문위는 "주요 선진국에서도 생보사의 설립 형태와 관계없이 유.무배당 보험을 팔 수 있도록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유배당 보험을 판 것과 상호회사 논쟁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자문위는 다만 내부 유보액은 계약자 배당에 사용되는 돈이므로 계약자 몫이라고 판정했다. 그러나 내부 유보액을 주식으로 배당해야 하는지, 현금으로 배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했다. 시민단체는 내부 유보액을 주식으로 배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은 1990년 재평가 적립금 2927억원 중 30%(삼성생명 878억원, 교보생명 662억원)를 내부에 유보했다.

◆ 이르면 내년 상장 가능할 듯=정부는 자문위 결론을 토대로 연내 상장 방안을 확정할 생각이지만 문제는 시민단체의 반발이다. 참여연대는 이날 성명서에서 "이번 상장안이 업계의 입장만 반영했기 때문에 공청회 참석을 거부했다"며 "상장 때 최소 30% 이상의 주식을 계약자에게 배분할 것을 권고한 바 있는 1999년의 상장자문위 의견과 결론이 달라진 근거를 밝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나 위원장은 "보다 많은 사례와 선진화된 분석을 통해 99년과 다른 결론을 내린 것"이라며 "이번 상장안보다 더 우월한 논리가 제시된다면 수용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생보사들은 자문위 결론을 환영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자문위가 구체적 사실을 가지고 합리적인 결론을 내린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생보사들은 올해 안에 상장 방안이 확정되면 내년 상반기 상장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현행 상장 요건을 갖춘 곳은 삼성.교보.흥국생명 정도지만 다른 생보사들도 상장 요건을 맞추는 데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창규.최준호 기자, 김정혁 인턴기자

◆ 상호회사=보험에 가입하면 가입자가 곧바로 그 회사의 주인(일종의 주주)이 되는 기업 형태. 보험회사는 상법에 따른 주식회사나 보험업법에 따른 상호회사 형태를 취할 수 있다.

◆ 유배당 보험=보험료 운용으로 이익이 생기면 보험 가입자에게 배당해주기로 약정한 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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