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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영화] 암담한 청춘 … 우울한 스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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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장르:옴니버스 드라마
등급:18세
20자평:가슴을 저리게 하는 청춘의 아픔과 방황

인문학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다 입대한 뒤 제대를 앞두고 말년 휴가를 나온 김 병장(김태우). 그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입대 전과 비교해 엄청나게 달라졌음을 발견하고 황당함과 무력감에 어쩔 줄 모른다. 가까웠던 친구들과는 돈 얘기나 주고받는 서먹한 관계가 돼 버렸고, 아내마저 그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새 출발하려 한다. 학교 다닐 때는 존재조차 몰랐던 후배가 어느새 유학까지 마치고 와 모교 교수 자리를 차지했고, 입대 전 품었던 교수의 꿈은 이제 '물 건너갔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대안으로 취직도 생각해 보지만 그저 막연할 뿐이다.

13일 개봉한 옴니버스 영화 '내 청춘에게 고함'(감독 김영남) 중 세번째 이야기다. 영화 속 김 병장의 모습은 산에서 이상한 술을 먹고 잠들었다가 깨어보니 20년이나 흘러가 버렸다는 미국의 '립 밴 윙클'을 떠오르게 한다. 립 밴 윙클이 집으로 돌아와 보니 모든 것이 달라진 현실에 무척 당황스러워 했듯이 군대생활 2~3년간 사회와 단절됐다가 복귀하는 한국의 청춘 남성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황하는 청춘의 고민을 차분하면서도 냉정한 시각으로 관찰하는 '내 청춘…'은 21세 대학 휴학생 정희(김혜나)와 26세 비정규직 노동자 근우(이상우)의 이야기도 차례로 보여준다. 평범한 겉보기와 달리 속으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들은 우리 시대 청춘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겐 개인적인 문제도 없지 않지만 청년실업이나 비정규직 차별 같은 사회 문제도 무거운 짐처럼 놓여 있다.

영화의 제작과정은 남다른 데가 있다. 한국영화로는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년) 이후 두번째로 일본 NHK 방송의 지원을 받았고, 영화진흥위원회도 제작비의 일부를 댔다. 예술영화 전용관인 필름포럼을 운영하는 이모션픽처스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그 결과 여느 상업영화와는 다른 색깔의 독특한 영화가 탄생했다.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상영됐으며, 다음달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에도 진출한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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