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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사드보복, 日 불매유탄…동네북 된 롯데는 울고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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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지난 7일 대구 한 유니클로 매장 앞에서 한 시민이 '보이콧 재팬'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7일 대구 한 유니클로 매장 앞에서 한 시민이 '보이콧 재팬'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사드 여파가 여전한데, 불매운동 대상으로까지 거론돼 안타깝다" 최근 유니클로 등 '보이콧 재팬'으로 난처한 입장에 처한 롯데 한 직원의 말이다.
"우리나라 마트는 (사드 보복으로) 중국에서 매장 철수했는데 유니클로도 철수시켜보자" 일본 제품 불매운동 기사에 붙은 한 누리꾼의 댓글이다. '우리나라 마트'는 롯데마트다.

일 수출 규제로 ‘보이콧 재팬’ 확산 #롯데가 40~50% 지분 가진 브랜드 #아사히·유니클로 등 매출 30% 뚝 #개별 불매운동이라 대응도 난감

지난 1일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발표로 불붙은 '보이콧 재팬' 소용돌이에서 롯데가 유탄에 맞았다. 불매운동의 타깃이 된 유니클로·아사히·무인양품을 비롯해 롯데캐논·한국후지필름 등 일본에 본사를 둔 기업과 합작하거나 지분을 나누는 경우가 많아서다.

앞서 2016년 롯데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로 인한 한·중 간 마찰에서 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롯데마트가 중국에서 철수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3조원을 투자하기로 한 선양프로젝트는 2년 5개월째 공사가 멈춰 서 있다. 당시 중국 당국이 구두로 각 여행사에 지시한 '중국 단체관광객의 롯데 출입 금지'도 유효하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롯데가 처한 상황이 중국·일본에 낀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복잡한 관계와 어려움을 보여준다"며 "한·중과 한·일이 정부뿐만 아니라 개별 기업도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업계와 카드사 등에 따르면 아사히 맥주와 유니클로 등 불매운동 리스트 맨 앞에 있는 브랜드는 이달 들어 매출이 30%가량 감소했다. 특히 지난 11일 유니클로를 소유한 일본 패스트리테일링 재무 임원이 "(한국의 불매운동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해 기름을 부었다.

롯데가 난처해진 건 유니클로를 수입·판매하는 에프알엘코리아의 지분 49%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소비자는 ‘유니클로는 반일(半日) 반(半)롯데 기업’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무인양품은 롯데상사가 40% 지분을 갖고 있으며, 롯데아사히주류는 롯데칠성음료가 50%를 소유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에프알엘코리아는 지난 회계연도(2017년 9월~2018년 8월) 롯데쇼핑에 464억원을 배당했다. 롯데백화점 등이 에프알엘코리아로부터 받은 임대 수수료는 307억원이다. 배당과 수수료를 합해 한해 700억원 이상이다. 또 롯데아사히주류에서 롯데가 가져간 배당금은 약 16억원, 무인양품은 약 7억원이다. 35개 매장 중 15개가 롯데쇼핑에 들어와 있어 임대 수수료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의 전체 매출(70조원)에 비하면 거론되는 기업 비중은 2~3%가량이지만 이미지 타격은 매울 클 것으로 보인다.

롯데는 마땅한 대책이 없어 더 난처하다. 지난 17일 열린 롯데그룹 유통BU 사장단 회의에서도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일본 기업과 합작사가 많은 자사에 대한 비난 여론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불매 운동의 주체가 소비자단체가 아니라 소비자라는 점도 유통 대기업 롯데를 고민에 빠뜨리고 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현재 13개 소비자단체는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다. 대신 SNS를 통해 소비자 스스로 움직이고 있는 게 이전 불매운동과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격해진 불매운동에 대한 자제 목소리도 있다. 안 소장은 "타깃을 너무 넓히면 역량이 분산된다"며 "일본여행 가지 말자와 일본 제품 사지 말자는 결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 선택의 자유라는 점에서 불매운동은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일본 브랜드에 대해)감정적으로 치닫는 '안 사고 안 팔기' 움직임이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 심리를 자극해 결국 자영업자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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