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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살인의 추억’ 사건 검찰 항소, 증거 인정 쟁점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12월 구속된 제주 여교사 살인 피의자. 최충일 기자

지난해 12월 구속된 제주 여교사 살인 피의자. 최충일 기자

10년 전 제주 어린이집 보육교사 살인으로 기소된 택시기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검찰이 항소했다.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다시 미궁에 빠진 셈이다. 경찰이 2016년 2월 장기미제 사건 전담팀을 꾸려 수사했고, 최근 무죄 선고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법원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증거 수집" #검찰, "압수물 확보에 법적 문제 될게 없다"" #

제주지검은 17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등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모(50)씨 사건에 대해 16일 자로 항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항소 사유로 채증법칙 위배로 인한 사실오인을 적시했다. 채증법칙이란 법관이 사실관계를 확정하기 위해 증거를 선택할 때 지켜야 할 법칙이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수집된 증거를 제시하면 재판부는 채증법칙 위반으로 판단한다. 제주지법은 선고에 앞서 경찰이 확보한 청바지 등 일부 증거를 채증 법칙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경찰의 압수절차가 형사소송법 제218조에서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는 상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압수 목적을 적지 않은 것도 형사소송법 규정 위반이라고 했다.

2009년 경찰은 피해자 이모(여·당시 26세)씨의 시신 발견 열흘 후인 그해 2월 18일 박씨가 거주하던 제주시내 한 모텔에서 피가 묻는 피고인 박씨의 청바지를 확보했다. 당시 경찰은 압수 수색 영장 없이 모텔 업주를 통해 청바지를 임의제출 받는 방식을 이용했다. 압수 조서나 압수목록 작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박씨가 월세를 내며 모텔에 거주하고 있었고 피고인이 구속됐다는 이유만으로는 모텔 업주가 청바지 보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해석이다.

지난해 12월 구속된 제주 여교사 살인 피의자. 최충일 기자

지난해 12월 구속된 제주 여교사 살인 피의자. 최충일 기자

반면 검찰은 문제 될 게 없다고 한다. 검찰은 형사소송법 제218조 ‘피의자가 유류한(잊고 놓거나 흘린) 물건이나 소유자 또는 보관자가 임의로 제출한 물건은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다’는 규정을 들어 압수물 확보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압수물 외의 다른 증거 채택 여부도 쟁점이다. 제주지법은 1심에서 검사가 제시한 대부분의 증거를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당시 피고인 박씨가 몰았던 택시에서 확보했다고 한 미세섬유도 증거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검사가 제출한 폐쇄회로TV(CCTV) 영상에 녹화된 택시도 박씨의 차량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택시기사였던 박씨는 2009년 2월 1일 오전 3시8분쯤 제주시 용담동에서 보육교사 이씨를 태우고 애월읍 방향으로 향했다. 박씨는 택시 안에서 이씨를 성폭행하려 했으나 반항하자 목을 졸라 살해하고, 고내봉 인근 배수로에 사체를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최근 박씨의 혐의 입증을 위한 보강 수사를 했다. 특히 동물 사체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당초 부검의의 사망 추정시간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실험에는 법의학자인 이정빈 가천대 석좌 교수와 과학수사 요원도 다수 참여해 증명력을 높였다. 그 결과 박씨는 지난해 12월 박씨 구속됐다.

한편 제주지법은 지난 11일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검사가 제출한 간접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며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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