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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당하고도 "처벌 마세요"…부실한 법이 부른 씁쓸한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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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출신 아내를 폭행한 혐의(특수상해 등)를 받고 있는 남편이 8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돌아가고 있다. 이튿날 그는 구속됐다. [연합뉴스]

베트남 출신 아내를 폭행한 혐의(특수상해 등)를 받고 있는 남편이 8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돌아가고 있다. 이튿날 그는 구속됐다. [연합뉴스]

 가정 내 비극이 또 공분을 불러왔다. 베트남 여성 무차별 폭행 사건을 계기로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가정폭력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가정폭력법은 아동학대를 제외한 가정폭력범죄를 처벌할 때 다른 법에 비해 우선 적용되는 법이다. 여야는 지난 8일 일제히 국회 계류 중인 관련법 처리 필요성을 공개 언급했다. 개정안 쟁점은 무엇일까.

①반의사불벌죄 적용 삭제…피해자 괜찮대도 처벌

 가정폭력법은 ‘평화와 안정을 회복(1장 1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갖고 있다. 가해자를 교화해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중시하면서 처벌보다는 용서와 합의를 유도하기 위한 장치다. “가족끼리 법대로 하는 건 지나치다”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이 조항이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해자의 협박·회유 등에 따른 2차 피해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생계를 위해 피해자가 울며 겨자먹기로 처벌불원 의사를 수사기관에 전하기도 한다. 남편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해 갈비뼈와 손가락이 부러진 베트남 아내는 지인이 신고를 권유하자 “그래도 애 아빠”라며 망설였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월 법 개정안을 내면서 명예훼손을 제외한 모든 가정폭력범죄에 반의사불벌죄의 적용을 배제했다. 고 의원은 “지난해 10월 강서구 가정폭력 살인사건 당시 피해자는 경찰신고, 이사 6번, 연락처 변경 등을 했는데도 가해자에게 목숨을 잃었다”고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해당 개정안은 본문 1장 1조에 삽입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꾼다’는 문장도 지웠다. 피해자 인권 보호가 우선이라는 의도다.

②재발 또 재발…솜방망이 처벌 강화

 가정폭력 양상은 날로 흉포해지고 있다. 생후 7개월 된 영아를 방치해 사망케 하거나 흉기를 휘둘러 아내를 살해하는 등 강력범죄가 올해 빈번했다.

 가해자가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비율도 다른 범죄에 비해 더 높다. 베트남 출신 아내를 3시간 동안 때린 30대 남편은 경찰 조사에서 “아내가 맞을 짓을 했다”고 주장했다. 반성이 없다 보니 처벌을 해도 똑같은 범죄가 또 발생한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가정폭력 전과자의 동일 범죄 재범 비율은 연 3~11% 수준이다. 지난해에는 약 9%였다.

베트남인 아내를 폭행한 남편이 8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베트남 출신 아내를 무차별 폭행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 [연합뉴스] [뉴스1]

베트남인 아내를 폭행한 남편이 8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베트남 출신 아내를 무차별 폭행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 [연합뉴스] [뉴스1]

 법 개정을 통한 유일한 해법은 형량 등 처벌수위의 상향 조정이다.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3월 발의한 개정안은 가해자가 경찰의 격리·접근금지 등 명령(긴급임시조치)을 위반하면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했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도 비슷한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지난 5월 발의했다. 채 의원은 “현행법은 긴급임시조치를 위반한 가해자에 대해 300만원가량의 과태료 처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가해자가 과태료를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경우도 많다.

③보복 고위험군 최대한 ‘격리’ 보장

 가정폭력은 거주지를 공유하는 가족 간 벌어진다. 사법절차가 진행되는 불구속 수사 도중 가해자가 피해자를 만나지 못 하게 하는 (긴급) 임시조치 조항이 만들어진 이유다.

 하지만 지속해서 폭력을 행사해 온 가해자는 사법당국 제재에도 피해자를 다시 찾아가 보복하려는 성향이 짙다. 가정 유지라는 가치를 벗어나 양측을 원천 차단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송석준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가해자가 피해자가 머무는 시설에 침입해 위해를 가할 경우 경찰이 개입해 격리토록 하는 조항을 성문화했다. ‘가정 폭력이 진행 중인 현장에 출동해서만’ 격리 및 제지를 할 수 있는 현행법의 허점을 보완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가정폭력범을 엄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가정폭력범을 엄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0대 국회에 계류 중인 가정폭력법 개정안은 29건에 달한다. 역설적으로 가정폭력이 얼마나 빈번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다. 국회는 이번 베트남 아내 폭행 사건을 계기로 ‘자녀 앞 폭력’을 가중 처벌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번 사건 피해 여성은 폭력이 그치자 엄마를 지켜보던 두 살배기 아들을 껴안았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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