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 혁신위원회가 여론조사를 통해 손학규 대표의 거취를 결정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당 최고위원회의 결정이 남아있는 만큼 수용 여부를 놓고 당내 갈등이 재점화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바른미래당 혁신위원회는 10일 오후 3시부터 심야까지 이어진 마라톤 비공개회의를 갖고 현 지도부의 거취와 이후 지도부 구성에 대해 논의했다. 바른미래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혁신위원 9명 중 5명이 손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퇴진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며 “일각에선 K보팅 등을 이용해 손 대표의 거취를 결정하자고 했으나 다수가 여론조사의 형식으로 재신임을 묻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비대위에서는 주대환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3명의 비대위원이 손 대표의 퇴진에 부정적 입장을 보인 반면 나머지 5명은 찬성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위는 당헌ㆍ당규상 안건 채택 요건(혁신위원 3분의 1 이상 요구)을 충족한 만큼 이를 조만간 최고위원회의에 정식 안건으로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앞서 바른미래당은 4ㆍ3재보궐선거 패배 후 당 지도부 퇴진을 요구하는 바른정당계와 당권파 간에 내홍을 겪었다.
손 대표는 정병국 의원이 중심이 된 혁신위 카드와 함께 “추석까지 지지율이 10%대에 오르지 못하면 자진 사퇴를 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바른정당계는 이를 거부했다. 여기에 지난 4월 25일 오신환 의원의 사법개혁특위 사보임까지 겹치면서 안철수계 일부 의원까지 손 대표 퇴진론에 힘을 실었다.
공방전을 벌이던 양측은 결국 6월 28일 당의 발전방향과 혁신과제를 수립하는 당 혁신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으로 일시 휴전에 들어갔다. 8인으로 구성된 혁신위에 당의 진로와 관련해 지도체제 개편 등 모든 방안을 원점에서 논의할 수 있도록 하고, 안건을 채택해 최고위에 내놓기로 했다. 하지만 혁신위의 안건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최고위에 두도록 했기 때문에 ‘반쪽’ 혁신위라는 우려도 나왔다.
비대위가 손 대표의 거취를 여론조사 형식으로 결정하기로 한 데는 손 대표 측의 반발을 최대한 줄여 최고위원회의 승인을 받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당 관계자는 “여론조사를 통해 재신임을 묻는다면 손 대표에게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라며 “여론조사 결과 손 대표에 대한 재신임이 우세하게 나온다면 오히려 당 장악력이 확고해지고, 당분간 지도체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반대로 손 대표의 퇴진을 기정사실로 하는 방안이 최고위에 올라갔을 때 손 대표 측에서 반발해 기각된다면 혁신위도 무력화되고 당도 내홍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혁신위로서는 진행 과정과 결과에 대한 내상을 최대한 줄이는 방안을 고른 셈이다.
하지만 손 대표가 이미 수차례‘퇴진 불가’를 공언한 만큼 수용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치권 관계자는 “바른미래당이 이미 4월 사법개혁특위의 사보임 문제로 사실상 내전을 치렀는데 여기서 또 혼란이 야기된다면 민심에서 완전히 멀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유성운·성지원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