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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먹을만한가|정수기·생수 불티나고 약수터 찾아 나서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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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국이 물 비상이다. 정수기가 동이 나고 약수터도 인산 인해다. 생수는 과연 안전한가. 아파트 등 공동 주택의 물탱크 물은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건가. 다시 한번 현장을 가본다.

<약수>
약수도 마음놓고 마실 수 없다.
서울 시내 약수터 중 상당수가 세균·금속 물질 등에 오염돼 마시는 물로는 적합하지 못하다는 서울시 조사 결과다.
서울시는 북한산·관악산 일대 약수터 1백72곳에 대한 수질 검사 결과 이중 65%인 1백12곳이 음료수로 부적합해 3곳은 폐쇄하고 나머지는 수질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
약수의 오염 정도는 현재로선 인체에 큰 해를 끼칠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지만 세균·금속검출·탁도 등에서 음료수로 적합한 곳은 58곳뿐.
이중 철 및 아연 등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돼 아예 폐쇄돼 버린 3곳 중 관악산 천지 약수의 경우는 아연이 1ℓ중 2·03㎎이 검출돼 기준치 (1ℓ중 1㎎)의 2배를 웃돌았다.
일원동 대모천 약수터는 물의 맑기를 나타내는 탁도가 6·1을 기록, 기준치 (탁도 2)를 훨씬 넘어섰다.
특히 은평·종로·성북·도봉구 등 4개 구를 끼고 있는 북한산 일대 약수터는 모두 50곳으로 이중 32곳이 일반 세균·대장균수가 기준치를 훨씬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검사에서 드러난 오염 약수터는 대다수가 이용자들의 관리 부족에 의한 것으로 관절마비 등 인체에 치명적인 카드뮴이나 비소 등 중금속 유독 물질은 다행히 검출되지 않았으나 관리 및 수질 검사 강화가 필수적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
서울시 보건 환경 연구원 측은 『땅속에 스며들었다 흘러나오는 지표수인 약수가 주변 쓰레기·오물 등으로 언제든지 오염될 수 있다』며 『약수 수질의 기준이 상수도에 준한 만큼 오염 여부에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수>
시판 생수도 위생 관리 상태는 허술하다.
보사부에 따르면 7월 현재 허가 받은 생수 업체는 14곳. 그러나 무허가로 생수를 제조·판매하고 있는 회사가 1백여 곳에 이를 것이라는게 업계의 얘기다.
생수 시장은 최근 2∼3년 사이 매년 40%이상 신장했으며 특히 올해 들어서는 1백% 정도 늘어난 약 2백억원 이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 생수는 주한 외국인과 호텔 및 수출용으로만 판매 허가가 나있을 뿐 식품 위생법 24조에 의거, 일반인에 대한 생수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일반 가정에 대해 행해지고 있는 생수 판매는 원칙적으로 모두 불법인 셈이다.
한편 생수의 위생 상태가 매우 불량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6월 서울시가 벌인 단속 실적에 따르면 허용 기준보다 18배 이상의 일반 세균이 검출된 생수도 있었다.
산도·알칼리도 측정치인 PH기준치 5·8∼8·5를 초과, 알칼리가 지나치게 높은 PH8·8의 생수도 적발됐다.
그밖에 생수의 유통 구조 또한 바뀌어져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난 7월 건국대 주현규 교수 (식품가공학)의 조사에 따르면 생수통을 개봉한 뒤 상온에 5일간 보관해둔 생수에서 허용치보다 30배 이상의 일반 세균이 검출됐다는 것.
현재 시판되고 있는 생수의 90%는 냉장고에 넣을 수 없는 18·9ℓ용기로 배달되고 있기 때문에 각 가정에서는 7일 이상 상온에 방치해두고 생수를 먹는게 통례로 돼 있어 건강을 생각해 생수를 먹다가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주무 부처인 보사부는 생수에 대한 위생 관리를 하지 않고 있음은 물론, 기본적인 통계조차 마련치 않고 있는 형편.
현재 일반 소비자들은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면서 생수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 물>
아파트·빌딩 등에 공급되고 있는 수도물도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이들 집단 주거지의 식수는 물탱크에 저장했다가 공급하는데 이때 물탱크의 녹을 방지하기 위해 첨가하는 방청제 때문. 방청제의 제조에 공업용 원료가 사용되고 있고 제품마다 용해도가 다르며 심지어 무허가 제품까지 나돌고 있어 주민 건강을 크게 해칠 우려가 있다.
『방청제가 지나치게 섞인 맑은 물보다는 녹이 있는 물이 오히려 건강을 덜 해친다』는 아이로니컬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방청제의 주성분은 인산염과 규산염. 국내의 경우 주로 인산염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 국내 보사부의 「급수용 방청제 사용에 관한 지도 감독 지침」 제3조와 4조에 따르면 인산염과 규산염을 원료로 하는 제품의 규격·사용 농도는 각각 ℓ당 10㎎(10PPM)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만 있어 식품용이 아닌 공업용 원료를 사용해도 규제가 어려운 실정. 방청제는 아파트나 대형 건물의 지하 또는 옥상에 설치된 물탱크에 물을 담기 전 특수 용기에 넣은 후 수도물에 녹아 흘러가도록 돼있다.
김면섭 교수 (한양대 화공과)는 『식품용 인산염은 청량 음료 등 가공 식품에 미량 첨가되기도 하나 공업용은 인체에 해로운 중크롬산칼륨·카드뮴·납 등 불순물이 들어 있는 수가 많다』고 경고한다.
방청제의 용해도도 큰 문제. 현재 WHO (세계보건기구)는 국내 허용 농도에 비해 절반인 5PPM으로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인산염은 칼슘과 결합력이 강해 과다 섭취시 임산부나 영아에게는 칼슘 신진 대사를 방해, 뼈를 약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WHO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하루 6·6g이상 섭취 시 콩팥에 석회가 침착 되기도 한다는 것.
지나치게 방청제가 녹아 있는 물은 끓여도 거의 효과가 없고 정수기로도 정수 효과가 약해 대책이 거의 없는 실정.
공업진흥청 김동화 연구관 (공해 시험과)은 『국내 제품이 모두 용해도가 일정치 않다』고 지적했다.
대개의 경우 수온이 섭씨 15도, 수압 평방 ㎝당 3∼5㎏에서 약 1년간 5PPM정도의 농도를 유지토록 돼 있으나 열처리가 안된 불량 방청제일 경우 한꺼번에 녹아내려 각종 중금속과 불순물을 쏟아낸다는 것.

<정수기>
수도물 오염으로 정수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으나 이에 따른 품질·사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이 정수기를 찾는 이유는 불순물을 걸러내 물을 깨끗이 한다는 정수 기능 때문.
이미 3∼4년 전부터 정수기 붐이 일어 지난해는 총매출액이 1천억원대에 이르렀고 올해는 수돗물 오염 파동으로 생산이 더욱 급증할 추세다.
그러나 이 같은 정수기의 대중화에도 불구하고 품질 검사·관리는 이를 뒤따르지 못하고있다.
정수기는 우선 공산품 품질 관리법상 사전·사후 관리 품목에 들어 있지 않고 공업 표준화법상의 KS품목에도 없다.
관장 부서도 공산품이란 점에서는 공진청, 수질·위생측면에선 보사부 등으로 나누어진 채 서로 법령에 규정된 검사만 하고있어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전국의 업체수도 1백50개 정도로만 추정될 뿐 근거법이 없어 명단 파악도 제대로 안되고 있다.
품질·성능이 다른 제품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소비자들로서는 제품 선택·구입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을 길이 없는 실정이다.
정수기의 품질 검사를 공식화할 경우 수도물에 대한 부적격을 정부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이를 기피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수기의 핵심인 여과기는 자주 갈아주지 않으면 오히려 그동안 쌓인 불순물로 세균을 배양하는 꼴이 되나 교환 기간에 대한 설명이 불분명하거나 아예 없는 제품까지 있다.
또 업체수가 늘며 부품 교환 능력이 없는 부실 업체까지 생겨 부품이 고장나도 교환이 안되고 타사 부품은 규격이 맞지 않아 애를 먹는 경우도 많다. <특별 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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