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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칼국숫집 했던 어머니가 내 이야기의 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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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등단 17년 만에 첫 산문집을 발표한 김애란 작가. 그는 ’책을 준비하며 내면의 성장과 변화를 스스로 관찰하게 됐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등단 17년 만에 첫 산문집을 발표한 김애란 작가. 그는 ’책을 준비하며 내면의 성장과 변화를 스스로 관찰하게 됐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스타 작가 김애란(39)은 첫 등장부터 화려했다. 2002년 22살의 나이에 등단한 그는 『침이 고인다』 『달려라 아비』 『두근두근 내 인생』 『바깥은 여름』 등 출간하는 책마다 화제를 모으며 단숨에 인기 작가 반열에 올라섰다. 그간 꾸준히 소설만 발표해오던 그가 처음으로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열림원)을 발표했다. 등단 이후 현재까지 17년 동안 자연스럽게 변화해온 자신의 내면을 틈틈이 기록한 글들을 모았다.

첫 산문집 낸 소설가 김애란 #산문집 통해 내면의 성장 발견 #“글쓰기를 좋아해서 직업 만족” #고요함을 위해 SNS 사용 안해

3일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에서 만난 김 작가는 첫 산문집을 낸 소감에 대해 “소설과 달리 산문은 직접적으로 작가의 목소리가 드러나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다”면서도 “이번 기회를 통해 내가 지난 시간 동안 어떤 고민을 했고 변화를 겪었는지 스스로 정리되는 것 같아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 “과거와 달라진 나를 발견하다”=산문집은 여러 해에 걸쳐 적은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이라 현재와 과거의 작가가 혼재돼 있다. “산문집을 정리하며 과거 생각이 많이 났다”는 작가는 “등단 초기 작품들을 읽어보면 학생 시절에는 지금과 다르게 생에 대한 낙관과 기대가 있더라. 또한 타인에 대해서도 지금보다 더 호의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세월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내면의 성장과 변화를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이번 산문집을 통해 자신의 시선이 외부로 확장됐다는 것도 발견했다. 그는 “산문집을 만들면서 틀을 짜기 위해 책의 마디를 어떻게 나눌까 고민했다. 수록된 글을 읽다 보니 나의 관심사가 자신에서 주변인, 타인으로 확장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여기에 착안해서 책의 목차를 구성하게 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책의 목차는 1부 ‘나를 부른 이름’, 2부 ‘너와 부른 이름’, 3부 ‘우릴 부른 이름들’로 나뉘어 있다.

책의 제목과 목차에 ‘이름’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 이유에 대해서는 “원고를 오랜만에 다시 읽고 고치다가 ‘이름’이란 단어가 떠올랐다”며 “그간 나를 스쳐 간 사람과 풍경, 사건 등 수많은 이름 말이다. 나는 어떤 이름을 오해하며 살아가기도 하고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다 눈부신 순간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러한 이름과 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적었다”고 설명했다.

◆ “아버지는 도화지, 어머니는 크레파스”=특히 1부 ‘나를 부른 이름’에서는 작가의 가족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책의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산문 ‘나를 키운 팔 할은’에서는 20년 넘게 ‘맛나당’이라는 손칼국숫집을 운영하며 세 딸을 키워낸 어머니 이야기가 나온다. ‘규칙적인 도마질 소리를 들으며 밀가루를 먹고 자라 열아홉이 된’ 작가는 맛나당에서 자신의 정서가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그에게 어머니는 복잡하고 결함이 많지만 씩씩하게 자신의 삶을 가꿀 줄 아는 여성이었다.

어머니는 작가의 문학 세계에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었다. 김 작가는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아버지는 나에게 도화지, 어머니는 크레파스와도 같은 존재였다”며 “아버지가 텅 비어 있는 공간을 채워 넣고 싶은 욕구를 줬다면, 어머니는 공간을 채워 넣는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목소리와 힘을 주셨다”고 설명했다. 어머니의 평소 말투나 농담 등이 작가에겐 고스란히 글밭이 된 셈이다.

하지만 그는 사범대에 가라는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서야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어머니를 속이고 몰래 예술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시험을 보는 대범한 행각을 벌인 결과였다. 부모님에게는 배신과도 같은 행동이었지만 작가는 “그 선택이 내 삶을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이어 “소설가라는 직업을 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만족스러운 직업”이라고 했다.

소설가라는 직업이 만족스러운 이유를 묻자 “어떠한 상황이나 사건에 처했을 때 그것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도구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훗날 매체 환경이 변하거나 독자가 줄어 내가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직업적 의미를 잃게 된다 해도, 글쓰기 자체만이 나에게 주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나의 삶을 풍요롭고 다채롭게 감각할 수 있게 한다”고 밝혔다.

◆ 의식을 깨워놓고 살기=그는 글을 쓰기 위해 매일 규칙적으로 책상에 앉아 있는 스타일은 아니다. 다만 항상 오늘이 마감이라는 생각으로 의식을 깨워놓고 살기 위해 노력한다. 사물이나 사건을 접했을 때 잘 보고, 잘 느끼고, 잘 생각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애쓰는 것이다. 이렇듯 항상 외부의 감각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만 SNS나 카카오톡 등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단절과 고요가 필요한 순간에 방해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김 작가는 요즘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냐고 묻자 그는 “성취보다는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김 작가는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의 성취보다는 어려운 시기에 무엇을 지키고 잃어버리지 않았는지에 더 눈이 간다”며 “나 역시 어렵고 힘든 순간에도 품위나 호기심, 유머 같은 최소한의 것들을 지키면서 살고 싶다. 이러한 것들은 성취만큼 드러나지 않더라도 나에겐 더욱 소중한 것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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