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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 맞추기가 표절? 4년 9개월 이어진 '게임 저작권' 논쟁, 대법 "다시 심리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4월 대법정에서 모바일 게임 시연까지 하며 첨예하게 다퉜던 게임 ‘팜히어로사가’ 측과 ‘포레스트매니아’ 측이 4번째 재판대에 서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저작권 침해에 따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팜히어로사가 측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일 밝혔다.

비슷한 듯 아닌 듯…모바일 게임 열풍 속 저작권 논쟁  

2010년대 초반 ‘애니팡’처럼 동물 캐릭터나 과일 모양 타일을 나란히 맞추는 모바일 게임이 유행했다. 같은 모양 타일 3개를 직선으로 연결하면 타일이 사라지면서 점수를 얻는 식이다. 팜히어로사가나 포레스트매니아도 이런 종류였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두 게임의 화면 디자인과 게임 방식ㆍ규칙이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왔고 2014년 팜히어로사가의 개발사 킹닷컴(이하 킹) 측은 포레스트매니아의 국내 유통사인 아보카도엔터테인먼트사(이하 아보카도)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아이디어와 표현 사이…1ㆍ2심 “저작권법 위반은 아냐”

게임 화면 및 규칙이 비슷해 소송까지 가게 된 두 게임. 위의 화면이 소송을 제기한 킹 측 게임인 '팜 히어로 사가'이고 아래 화면이 아보카도의 '포레스트 매니아' 화면이다. 킹 측은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 게임 기본화면의 S자형 길 모습, 게임의 상태 표시줄 등이 유사하다며 저작권법 침해를 주장했다. [대법원 제공]

게임 화면 및 규칙이 비슷해 소송까지 가게 된 두 게임. 위의 화면이 소송을 제기한 킹 측 게임인 '팜 히어로 사가'이고 아래 화면이 아보카도의 '포레스트 매니아' 화면이다. 킹 측은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 게임 기본화면의 S자형 길 모습, 게임의 상태 표시줄 등이 유사하다며 저작권법 침해를 주장했다. [대법원 제공]

저작권법은 ‘아이디어’와 ‘표현’을 구분해서 규정한다. 법으로 창작의 결과물을 보호해야 하지만 창작자들이 과도한 제재를 받아도 곤란하기 때문이다. 저작권법 보호를 받으려면 사람의 사상이나 감정이 말ㆍ문자ㆍ음ㆍ색 등을 통해 외부에 구체적으로, 창작적 표현 형식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입장이다. 1ㆍ2심도 이런 입장을 따랐다. 게임의 장르나 전개방식, 규칙 등은 게임의 개념ㆍ방식ㆍ창작 도구인 ‘아이디어’에 불과하므로 그 자체를 저작권법으로 보호받을 수는 없다고 봤다.

킹 측은 게임 주요 규칙을 포레스트매니아가 그대로 따라 했다고 주장했다. 두 게임에는 단계별로 새로운 규칙이 등장해 난도가 올라간다. 예를 들어 ‘히어로모드 규칙’은 타일 맞추기 목표를 이루고 남은 터치 횟수만큼 게임을 진행해 보너스 점수를 얻는 규칙이다. ‘전투 레벨 규칙’은 타일을 없애면서 특정 캐릭터를 공격해 에너지를 감소시키는 규칙이다. 타일을 맞추더라도 점수를 얻을 수 없는 ‘특수 칸 규칙’도 있다.

1ㆍ2심은 이런 규칙은 일종의 아이디어고 이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 누구나 이용 가능한 공공의 영역이라고 판단했다. 킹 측은 게임 기본화면의 ‘S자형 길 모양’이나 상단의 상태 표시줄 등이 유사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게임에 등장하는 시각적 모습이나 캐릭터 역시 매우 세밀하게 복제한 수준이 아닌 이상 단순히 느낌이 같다거나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1심 법원은 아보카도 측이 부정경쟁방지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두 업체가 경쟁 관계에 있고, 저작권법 위반까지는 아니지만 게임의 효과나 그래픽에서 상당 부분 비슷한 요소를 무단으로 사용해 킹 측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했다며 11억68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런데 1년여 뒤 열린 2심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도 인정하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비록 아보카도 측이 킹 측 게임 인기에 일부 편승한 부분이 있더라도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면 상도덕이나 공정 경쟁을 해하는 불법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썼다. 소송은 아보카도 측의 승리로 가는 듯했다.

원점으로 돌아간 소송, 대법원 판단은 왜 뒤집혔나

킹과 아보카도의 소송은 4년 9개월만인 올해 6월 또 한 번 뒤집어졌다. 대법원이 “원심은 게임 구성요소의 선택ㆍ배열ㆍ조합에 따른 창작적 개성을 제대로 심리하지 않았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하면서다. 대법원은 팜히어로사가와 포레스트매니아의 규칙이 유사할 뿐 아니라 이 규칙이 적용되는 순서도 똑같다는 점에 주목했다. 두 게임은 단계별로 7가지 같은 규칙을 똑같은 순서로 배열하고 조합했다.

대법원은 “두 게임은 이용자에게 캐릭터만 달라진 느낌을 준다”며 “실질적으로 유사하다”고 적었다. 과거에는 게임 규칙은 아이디어로 본다는 견해가 우세했지만 대법원은 “게임 구성 요소의 창작성뿐 아니라 이를 선택·조합해 어우러진 게임물 자체가 창작적 개성을 가졌는지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향후 게임물에 대한 저작권 등 침해 금지 사건뿐 아니라 게임업계 개발 관행 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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