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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본 '넥슨 값어치'···김정주보다 더 가혹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내 게임 업계 1위 업체인 넥슨 매각이 일단 무산됐다. 창업자인 김정주(51ㆍ사진) NXC 대표가 올해 초 입장문을 통해 밝혔던 ‘회사의 성장을 위한 최선의 방안’ 중 매각 카드는 일단 접어두게 됐다.

국내 게임업계 1위 업체 넥슨의 창업자인 김정주 NXC 대표. [사진 넥슨]

국내 게임업계 1위 업체 넥슨의 창업자인 김정주 NXC 대표. [사진 넥슨]

26일 투자은행(IB)업계 등에 따르면 김 대표 측은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 지분 전량(98.64%) 매각을 놓고 넷마블, 카카오, MBK파트너스 등과 협상을 벌여왔으나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가장 큰 이견은 역시 가격이었다. 넥슨 측은 일본 도쿄 증시에 상장돼 있는 넥슨재팬의 주가 흐름 등을 근거로 15조원 이상을 원했지만, 인수 후보자들은 그에 한참 밑도는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던전앤파이터의 과거냐, 미래냐

넥슨의 자회사인 네오플의 대표작인 던전앤파이터. 던전앤파이터의 한 해 매출은 3조원에 달한다. [중앙포토]

넥슨의 자회사인 네오플의 대표작인 던전앤파이터. 던전앤파이터의 한 해 매출은 3조원에 달한다. [중앙포토]

매각은 무산됐지만 넥슨엔 상처만 잔뜩 남았다. 넥슨과 넥슨이 가진 IP(지식재산권)의 가치에 대한 평가가 매각 과정에서 직ㆍ간접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시장이 보는 넥슨의 값어치는 김 대표가 기대했던 수준과는 차이가 컸다.

현재 넥슨엔 주력 게임인 ‘던전앤파이터(이하 던파)’ 외에는 이렇다 할 성공작이 없다. 던파는 한해 매출이 3조원에 달하지만, 2005년 8월에 출시된 게임이다. 넥슨 측이 던파의 과거와 현재에 주목했다면 인수 후보자들은 던파의 미래가 얼마나 지속될지를 염려했다. 사실 던파 개발사이자 넥슨코리아의 자회사인 네오플을 제외한 넥슨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9468억원에 그친다. 당기 순손실은 518억원이었다.

김정주 대표도 “지난 10년간 게임이 없다” 통탄

오늘날 넥슨을 일군 원동력인 ‘개발 열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익명을 요구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실제 넥슨은 2011년 일본 도쿄증시에 상장된 이후부터는 게임 개발보다는 재무제표 상 수치를 중시하는 숫자 경영에 매진해 왔다"고 전했다.

이는 김 대표 본인도 우려했던 부분이다. 김 대표는 지난 2014년 5월 열린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에 참석해 “2000년대 초반은 넥슨의 황금기였지만, 지난 10년간 (내세울 만한) 게임이 없었다”고 ‘돌직구’를 날린바 있다. 당시로부터 5년여가 지난 현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김 대표 본인이 넥슨 경영에 관여하는 일도 급격히 줄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넥슨, 수 년간 개발보다 인수합병 등에 주력 

실제 넥슨은 신작 개발보다는 ‘인수합병(M&A)’과 ‘라이브 서비스(기존 게임의 유지ㆍ보수)’에 의존하는 기업이 됐다. 그러다보니 모바일 게임, 가상현실(Virtual RealityㆍVR)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ㆍAR) 시장에 뛰어드는 것 역시 경쟁자보다 늦었다는 평가가 업계에서 나온다.

이는 넷마블 창업자인 방준혁(51) 의장이 지금도 개발자들을 직접 독려하는 것과 비교된다. 넷마블이 최근 내놓은 ‘일곱 개의 대죄: 그랜드 크로스(4위, 6월26일 기준)’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올스타(12위)’ 등은 양대 앱 스토어에서 상위권에 랭크돼 있다. 반면 넥슨의 올 상반기 출시작인 ‘트라하’는 양대 앱스토어에서 20위권을 맴돌고 있다.

‘입에 쓴 약(藥)’ 될까

일부에선 이번 일이 넥슨에 ‘입에 쓴 약(藥)’이 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김 대표가 자신이 키워낸 넥슨 앞에 놓인 현실을 인식하게 됐을 것이란 점에서다. 김 대표가 좀 더 넥슨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할 것이란 희망 섞인 전망도 나온다. 상처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넥슨은 여전히 국내 1위 게임업체다. 동시에 우수한 개발자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이기도 하다. 공은 다시 창업자이자 오너인 김 대표에게 넘어왔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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