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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이트가 술값 내렸다" 쌍벌제 들고일어난 술집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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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주류 리베이트 금지'를 놓고 관련 업계가 둘로 갈렸다. 리베이트로 가격할인 혜택을 받은 유흥·음식업소는 "생존권 박탈"이라고 반발하는 가운데, 주류도매상은 "비정상의 정상화"라며 환영 의사를 밝혔다.

국세청은 지난달 ‘주류 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내달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리베이트를 주고받은 제조사와 도소매업자를 함께 처벌해 '리베이트 쌍벌제'로 불린다. 단 위스키 제조·수입사는 도매업자에게 1%, 유흥음식업자에게 3% 한도의 금품을 제공할 수 있다.

김춘길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장은 "리베이트 금지 원칙은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뜩이나 장사가 안 되는데 리베이트 금지로 혜택까지 사라지면 3만여 유흥음식업소와 중소 음식업자는 망하라는 것"이라며 "리베이트가 없어지면 술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도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엔 리베이트가 주류도매상을 통해 전달됐다. 근래 제조사가 도매상을 건너뛰고 직접 업소에 전달하게 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주류도매업중앙회가 국세청과 짜고 만들어낸 졸속 행정"이라고 주장했다.

19일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부산지부 회원들이 부산지방국세청 앞에서 '주류 리베이트 금지'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19일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부산지부 회원들이 부산지방국세청 앞에서 '주류 리베이트 금지'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앞서 지난 17일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와 한국단란주점업중앙회는 국세청을 방문해 '리베이트 금지'에 대한 반대의 뜻을 전했다. 김 회장은 "고시 철회가 어려우면 1년간 유예해달라 했다. 그래도 안 되면 기존 리베이트만큼 제조사가 가격을 내리도록 국세청이 유도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또 "오늘 부산지방국세청 앞에서 규탄대회를 가졌다. 이달 안에 국세청 앞에서 전국 단위 항의집회를 열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류도매상의 입장은 상반된 입장을 냈다. 전국주류도매업중앙회는 19일 "이번 국세청 고시는 음지에 있던 리베이트 문제를 양지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건전한 시장질서가 확립될 것"이라며 환영 의사를 밝혔다.

유승재 전국주류도매업중앙회 국장은 "영세 자영업자가 손해를 보고, 술값이 올라갈 것이란 주장은 난센스"라며 "기존 리베이트는 많이 팔아주는 도매상과 업소에 집중돼 영세한 곳은 '차별적 배제'를 받았다. 이로 인해 업소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또 "리베이트 관행이 오히려 위스키 등 술값을 올린 측면이 있다"며 "리베이트 금지로 가격 인하 여지가 생긴 만큼 제조사에 가격을 내려달라 요구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위스키의 경우 제조사에서 도매상·업소로 전달되는 리베이트는 10~40%에 이른다. 익명을 요구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유흥업소에선 손님이 시킨 술보다 가게서 추천한 술이 팔린다. 위스키 회사의 영업이 리베이트에 집중되는 이유"라며 "과도한 리베이트 경쟁은 결국 술값 인상으로 이어진다. 또 불법이기 때문에 3자 회사를 통해 우회적인 방법으로 전달돼 문제가 많았다"고 말했다.

주류도매·유흥업계의 요구가 가격 인하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위스키 시장은 쪼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위스키 시장 규모는 3조5347억원(소매가 기준)으로 2015년(3조8405억원)보다 8% 줄었다. 브랜드별 점유율은 윈저 (24.2)에 이어 골든블루(22.5%)·임페리얼(8.1%)·스카치블루(5.7%)·조니워커(2.9%) 순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업계는 리베이트 관행이 사라지면 위스키 시장점유율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업계 관계자는 "돈 놓고 돈 먹는 리베이트 경쟁이 줄어들고 브랜드 경쟁력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10년째 내리막길을 걷는 위스키 업계가 가격 인하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리베이트 쌍벌제'는 소주·맥주를 파는 일반 음식점으로 불똥이 튈 것으로 보인다. 위스키를 파는 유흥업소뿐만 아니라 소주·맥주를 파는 식당도 사실상 주류 제조사로부터 리베이트 성격의 혜택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업주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는 포털 커뮤니티에는 '주류 리베이트 금지 팁' 등이 나돌고 있다. 한 커뮤니티에는 "이 기회에 맥주 회사 다른 데로 갈아타고 지원금 받자", "시행 전에 미리 (리베이트를) 요구하자", "도매상에 알아보니 당장은 시행이 어렵다고 하더라" 등의 의견이 올라와 있다.

주로도매업계 관계자는 "자영업자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나 이번 기회에 리베이트 관행을 바로잡고, 제조사에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도 19일 입장문을 내고 "고시 내용은 일부 업계의 이익만 반영됐다"며 "특히 외식업 중엔 도매상의 주류대출금을 보조받아 창업한 이들이 많다. 개정된 고시에 따라 주류대출이 전면 금지되면 외식 상권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소주·맥주 제조사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으로 공정한 거래 질서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도소매업자와 상생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로 말했다. 또 "소비자 혜택도 챙기겠다"고 말해 주류 가격인하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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