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오늘. 시인의 신작시집 '새벽강'(시학)이 나왔다. 거동 불편한 시인이지만 근자엔 이태에 한 번꼴로 시집을 펴낸다. 시집을 펼쳐보니 채팅 때 일화가 들어있었다. '토란잎'이란 시다. '내 평생/처음인 채팅에서//토란잎이 질문했다/나는/이름이 예쁘다고 칭찬했다.//…//더 이상 토란잎은 어여쁘지 않았다.//…//토란잎!//이름처럼 첫 질문도 항상/어여쁘게 하라.//그것이/토란잎이라는 이름의/생명과 평화의 길,//바로/시다.'
이제야 알았다. 그때 시인은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언짢았던 것이다. 그래서 질문을 하려면 항상 어여쁘게 하라고, 그것이 바로 시라고, 점잖게 충고한 것이다.
시는 갈수록 짧아지고 있었다. 노승의 선시가 연상됐고 옛 시조 한 자락이 떠올랐다.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미지들의 범벅,/제유와 환유의 밀림에서/벗어나기로 했다.//…//말의/자발적 가난은/이제/시 이상이다'('가난'부분). 그러고 보니 시집에서 가장 자주 띄는 시어도 '시'다. 시인의 심기를 건드린 네티즌에게 던진 충고도 '시'고. '다른/할 일 없어서/쓴다.'('시 쓰는 새벽'부분)는 시인의 고백이 뜨겁다.
손민호 기자